275팀·643명 도전, 지역 본선 거쳐 25팀 결선
대상은 '백자 잉어모양 연적' 전은슬씨…사전 관람 2000석 조기 마감
대한제국의 금빛 국새가 두 발로 걸어 나오더니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야 할 반가사유상은 무대 한가운데서 랩을 했고, 사람 키만 한 간돌검은 팔을 머리 위로 길게 뻗은 채 옆걸음질로 런웨이를 누볐다. 박물관 진열장 안에서 꼼짝 않던 유물들이 19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한꺼번에 '살아났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국중박 분장 놀이'결선 진출자 런웨이 행사에 참가자들이 '국세 제고지보'를 주제로 한 분장쇼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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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열린 '2026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편' 결선에는 약 3000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박물관이 선착순으로 받은 사전 관람 2000석은 일찌감치 동났고, 오후 2시를 넘어서면서 지하철 4호선 이촌역부터 가족과 연인, 친구 단위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열린마당 계단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도서관 앞까지 사람들이 늘어섰다. 에스컬레이터와 유리 난간 주변에도 인파가 몰리면서 직원들이 수시로 안전을 당부해야 했다.
런웨이에 오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저마다의 '최애 유물'이었다. '국새에 발이 달렸나' 팀은 1911년 일제에 반출됐다가 돌아온 대한제국 국새 '제고지보'의 여정을 퍼포먼스로 풀었다. '국중 밖은 위험해'라고 적은 팻말까지 들고 나와 아직 해외에 남아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떠올리게 했다. 웹툰 작가 닥터베르(이대양)는 국보 반가사유상이 된 채 스스로 발을 움직여 빙글빙글 돌았고, 또 다른 반가사유상 팀은 전문 코스프레의 움직임을 더했다.
향까지 피워 올린 청자 칠보무늬 향로, 두 사람이 몸으로 구조를 완성한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도 등장했다. '학교종이 에밀레' 팀은 성덕대왕신종을 몸 위에 옮겼고, 지난해 준우승팀은 가늘고 높은 청동 공양탑을 다시 무대에 세웠다. 경기 광주시 장애인거주시설 동산원 참가자들은 김홍도의 풍속도 화첩 가운데 '서당' 한 장면을 사람들의 몸짓으로 재현해 큰 박수를 받았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국중박 분장 놀이'결선 진출자 런웨이 행사에 참가자들이 '기마인물형토기'를 주제로 한 분장쇼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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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 출신 모델 이혜정은 청동기시대 '간돌검'이 됐다. 기다란 검 모양 의상 속에 몸을 넣고 두 팔을 머리 위로 붙인 채 옆으로 걸었다. 이씨는 자신과 닮은 유물을 찾다 길고 뾰족한 간돌검을 택했다며, 운동선수에서 모델로 전향하며 자신을 갈고닦았던 시간과 돌을 갈아 만드는 간돌검이 닮았다고 설명했다. 준비에만 약 두 달 반을 들였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유물은 거대한 금관도, 국새도 아니었다. 조선시대 선비가 벼루에 물을 따를 때 사용했던 작은 문방구, '백자 청화 잉어모양 연적'이었다. 대학생 전은슬(22)씨는 몸 전체를 잉어로 만들어 무대에 올랐고, 바닥에 드러누워 물 밖으로 나온 잉어가 펄떡이는 모습까지 연기했다. 심사위원 5명이 무대 표현과 창의성 등을 평가한 결과 전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인 대상을 받았다.
전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자신만의 흔적을 남겨보고 싶어 대회에 나왔다고 했다. 스스로 무엇을 잘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취업준비생에게 뜻밖의 1등은 자신감을 확인하는 순간이 됐다. 그는 수상 뒤 "이번 수상으로 용기를 얻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국중박 분장 놀이' 결선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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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회째인 국중박 분장놀이는 2024년 '국중박이 살아있다'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올해 처음 전국 단위로 확대하면서 참가 규모도 크게 뛰었다. 전국에서 275팀, 643명이 지원해 지난해 83팀의 세 배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50팀이 춘천·공주·대구·전주 네 곳의 본선에 올랐고 25팀이 서울 결선행 티켓을 얻었다. 네 차례 지역 본선에도 약 1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즐기는 방식도 달라졌다. 유물을 바라보고 설명문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은 3D 모델과 논문까지 뒤져 형태와 역사를 공부한 뒤 옷을 만들고 직접 그 유물이 됐다. 이름조차 몰랐던 지역 유물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전시장을 '보는 곳'에서 직접 해석하고 노는 공간으로 바꿔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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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날 행사를 두고 "전시장 안에 갇힌 유물이 현재에 살아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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