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전경. 김정효 선임기자 hyopd@hani.co.kr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국민연금공단이 의결권 행사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12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 상정된 정관 개정안 중 상법 개정 취지를 훼손하는 안건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할 것임을 밝혔다. 특히 국민연금이 지적한 여섯가지 사례 중 ‘이사 수 상한 신설 및 축소’는 일반주주 측 이사 후보의 선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의무화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의 효과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경제개혁연대 등으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아온 사안이다.
국민연금이 정기주총 직전에 특정 유형의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2019년부터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투자 기업에 대해 의결권 행사 방향과 사유를 사전에 공시해왔지만, 이번처럼 별도의 보도자료까지 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소신을 시장에 적극적으로 피력한 국민연금의 변화를 환영한다.
이러한 행보는 표결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9일 효성중공업 정기주총에서는 이사 정원을 축소하고, 이사 임기를 연장하며, 이사 자격 요건을 일반주주 추천 후보에게 불리하게 수정한 정관 개정안이 찬성률 58.8%로 가결 요건(3분의 2 이상)을 충족하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지배주주 측 이외에는 찬성한 주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발행주식 총수 대비 찬성률은 48.6%에 그쳐 지배주주 측 지분인 43.96%를 간신히 웃돌았다. 국민연금은 효성중공업 지분 10.26%를 보유하고 있다. 남은 주총 기간에도 이와 유사한 부결 사례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이사 임기를 3년으로 고정한 조문을 ‘3년을 초과할 수 없다’로 유연화하는 삼성전자 정관 개정안에 대해서는 이사 임기 만료 시기를 서로 다르게 분산시키는 시차임기제 도입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정작 이사 임기를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한화그룹 계열사 안건들에는 모두 찬성했기 때문이다. 임기 연장 역시 시차임기제와 마찬가지로 매년 선출하는 이사의 수를 줄여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을 반감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또한 이사회 운영의 안정성은 임기 늘리기보다 짧은 임기라도 성과에 기반한 연임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 기업 거버넌스 측면에서 더욱 바람직하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위탁운용 방식에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5일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에 따라, 국민연금은 기존의 투자 일임 방식 대신 단독 펀드 형태로 위탁하는 방안을 상반기 중 마련하기로 했다.
기존 투자 일임 방식에서는 자산 운용권만 운용사에 위임할 뿐, 주주권은 주식 소유 명의자인 국민연금이 그대로 갖는다. 이 때문에 운용사는 주주권을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 국민연금은 지분율이 10%를 넘는 회사를 다수 보유하게 된다. 또, 이들 회사에 대해서는 ‘경영참가 목적’의 주주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같은 회사 주식을 여러 운용사가 같은 명의로 매매하면 단기매매 차익(6개월 이내 매매로 얻은 이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자본시장법상 국민연금은 ‘경영참가 목적’의 주주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회사에 대한 단기매매차익 반환 의무가 면제된다.
국민연금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운용사가 펀드를 설정하고 국민연금이 이에 유일한 수익자로 참여하는 단독 펀드 방식을 검토 중이다. 이 방식으로 위탁하면 주식 소유 명의가 펀드로 넘어가 주주권이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지분율이 10%를 초과하는 종목도 대폭 줄어든다. 이뿐 아니라 해당 펀드의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으로 회사 가치가 제고되면 기금 전체의 수익률도 함께 높아지는 외부경제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운용사의 역량과 유인 체계가 문제다. 이번 단독 펀드 위탁의 중요 목적이 주주 제안 등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있는 만큼, 관련 활동 이력이 부족하거나 재계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운용사는 위탁 대상에서 엄격히 배제되어야 한다.
둘째는 비용의 현실화다. 실효성 있는 주주 관여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법률 자문 등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 그러나 현재 책임투자형 위탁 운용사에 지급되는 낮은 수수료로는 이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위탁 유형에 ‘주주관여활동형’을 신설하고, 활동에 걸맞은 수준으로 운용 수수료를 현실화하는 조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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