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9일, 미국과 이스라엘 간 이란 분쟁이 한창인 가운데 바레인 시트라 섬의 바프코 정유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양측의 갈등이 이어지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국제유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이 다시 이어질 수 있어서다.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이란 해상봉쇄 작전을 수행 중인 미군이 호르무즈해협에 진입하려던 이란 국적 화물선 투스카(TOUSKA)호를 포격해 확보했다고 밝혔다.
휴전 종료 시점을 앞두고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국제유가도 크게 출렁였다.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한때 7.9% 급등한 배럴당 97.50달러를 기록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도 6.7% 오른 배럴당 90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유럽 가스 가격 역시 11% 상승하며 에너지 시장 전반의 불안이 다시 커졌다.
◆국제유가 강세 장기화…정유사 손실 누적 우려
한국석유공사 서산 비축기지 전경. [출처=한국석유공사]
국내 정유업계는 유가 상승 자체를 마냥 반길 수 없는 분위기다. 통상 국제유가가 오르면 저가에 확보한 원유 재고 가치가 올라 재고평가이익이 발생한다. 그러나 최근처럼 급등락이 반복되는 장세에서는 정유사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정제마진은 원유 도입 가격과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판매 가격 차이를 뜻한다. 유가가 오르더라도 제품 수요가 둔화되면 판매 가격이 충분히 따라오지 못해 수익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정부의 최고가격제 시행 한 달이 지나면서 정유업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가격 상한으로 공급가를 억제할수록 국제유가와 국내 판매가격 간 격차가 벌어져 정유사 손실이 누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손실을 재정으로 보전하겠다며 추경에 관련 예산 약 5조원을 반영했다. 국제유가 강세가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이 정도 재원만으로는 늘어나는 손실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손실액 및 손실 보전액 산정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나오지 않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최고가격제 도입의 원취지인 민생안정과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적극공감하고 있어 정부정책에 최대한 협조할 예정이다"라도 전했다.
◆나프타 수급 비상…석화업계 공급망 방어 총력
국내 주요 석유화학 공장이 밀집된 여수 산업단지 전경. [출처=여수시]
석유화학업계의 부담은 더 직접적이다. 국내 NCC(나프타분해시설) 업체들은 주요 원료인 나프타 상당량을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나 해상 물류 차질이 발생하면 도입 일정이 곧바로 흔들릴 수 있다. 정유업계는 정부 비축유 방출로 단기 대응 여력이 있지만, 석화업계는 생산에 필요한 나프타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곧바로 공장 가동 차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프타는 반도체, 자동차 등 연관 산업에서 사용하는 석화 소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료다.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 비닐, 가전제품 케이스 외에도 자동차 타이어용 고무나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의 기초 원료로 쓰이기 때문에 석화 산업의 '쌀'이라고도 불린다. 나프타 부족은 합성섬유, 반도체, 자동차산업으로 연쇄적으로 번질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나프타 도입 확대를 위해 6744억원 규모의 수입비용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4월부터 6월까지 체결한 나프타 도입 계약 물량에 대해 전쟁 이전 가격과 실제 수입가격 간 차액의 50%를 지원한다. 또한, 나프타와 원유 수급 상황을 전방위로 점검하면서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유 추가 확보 예산도 반영했다.
LG화학 전남 여수 NCC(나프타분해시설) 공장 전경. [출처=LG화학]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이날 최근 중동 정세 불안에 대응해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석유화학업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우선 나프타 수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을 강화하고 원료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또 설비 가동률을 최대한 유지해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유분과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주요 제품의 내수 공급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를 통해 국내 공급망 안정을 뒷받침하고 국민 생활 필수소재의 원활한 공급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은 "이번 공동성명은 중동 전쟁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업계가 한목소리로 위기 대응 의지를 표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석유화학 산업은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며, 협회 또한 이를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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