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교수의 품위를 묻는다

AI 시대에 교수자의 지식 전달 기능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정보는 이미 넘쳐나고 교수의 지도 없이도 AI를 활용해 연구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인간 대 인간의 교감의 장이다. 이제...

교수의 품위를 묻는다

학생에게 비아냥과 폭언은 교수의 ‘갑질’

대학원은 교수 권력 행사하는 곳 아니다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그것밖에 못 하느냐”, “좋은 학점은 기대하지 마라”, “학위 따기는 글렀다.” 최근 대학원 학생을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괴팍하다고 소문이 난 교수의 필수 수업을 들으며 개인 면담을 하러 갔다가 이런 말들을 들었다고 했다. 울먹이며 고충을 호소하는 학생과 대화를 하며 대학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목도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에게 비아냥과 모욕에 가까운 질책, 성과를 빌미로 한 폭언에 가까운 압박은 교육이 아니다. 교수의 ‘갑질’이다. 진리를 탐구하고 자유롭게 소통해야 할 대학원 과정이 권위적이고 품위 없는 교수들로 인해 외려 반교육적인 장이 된 것은 아닌가?

대학원은 한 사람이 연구자로 성장하는 결정적 시기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는 단순한 교육자를 넘어 평생의 ‘사표(師表)’가 된다. 그러나 논문 지도와 학위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가 학생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점을 주고, 졸업 여부를 결정하고, 추천서를 쥐고 있는 교수의 위치는 대학원생들에게 절대적이다.

교수의 비인격적인 행태가 공공연해도 혹시나 문제를 제기하면 학위가 지연되거나 연구 기회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불이익을 우려해 학생들은 목소리를 삼킨다. 동료 교수들도 지도과정에서 생기는 마찰로 치부하거나 교수 사회의 카르텔 안에서 방관하였다. 결국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교수의 갑질 문제는 개인의 성격이나 스타일로 축소되고 아무런 제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갑질 문화가 대학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교수 사회의 상호 비호 문화에서 교수의 폭언 정도는 화려한 연구 실적 뒤에 면죄부가 되어 넘어간다. 매년 진행되는 교수 평가에서도 연구 지표는 교육자로서의 품격보다 우선시 된다.

그러나 학생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교수의 언행이 지도라는 명목으로 포장될 수는 없다.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대학의 영혼』에서 “배움의 공간은 참여자들을 반기고 환대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했다. 학문연구에서 필요한 엄격함과 함께 학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교수와의 생산적 대화가 가능하다. 학문공동체에서 교육자의 품성에 대한 검증이 중요한 이유다.

AI 시대에 교수자의 지식 전달 기능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정보는 이미 넘쳐나고 교수의 지도 없이도 AI를 활용해 연구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인간 대 인간의 교감의 장이다.

이제 대학원 교수에게 요구되는 기대는 기술적인 논문 지도를 넘어 학생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코치 역할이다. 학생의 잠재력을 믿어주며 연구자로서의 철학을 공유하는 평생 스승의 면모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다시 강조하건대, 대학원은 교수가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이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공간이다.

연구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교수는 교육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교수의 폭언과 오만한 태도는 학생에게 자괴감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학계 전체의 건강한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괴롭히는 자가 피해자에게 야기하는 절대적 무력감은, 결국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은 『품위 있는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모욕과 그러한 개인들이 관계하는 사회적 정의를 논한다.

학생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교수의 행태는 그간 대학 사회의 침묵 속에서 비가시화되었다. 이제라도 언어폭력을 하는 교수에게 교육자로서 품위를 엄정하게 묻는 대학 문화가 세워져야 한다.

이에 앞서 교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질문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존중과 신뢰로 학생을 이끄는 스승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혹여 지도하는 학생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예비 학자인 대학원생들이 수시로 무시되는 상황에서 대학의 미래를 말하는 건 공허하다. 대학 사회의 품위는 모든 구성원의 존엄을 지키는 데 존재한다.

신희선 편집위원

숙명여대 순헌칼리지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순헌칼리지 교수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