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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감]‘빌려온 노스탤지어’라도 괜찮아

1990년대에 온 동네 먼지를 다 쓸고 다닌다며 어머니의 등짝스매싱을 유도했던 긴 통바지 유행이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스키니진이 천하를 평정한 뒤에야 태어난 젠Z 세대가 통바지 패션뿐 아니라 그 시절의 아날로그 감성까지 그리워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공감]‘빌려온 노스탤지어’라도 괜찮아

1990년대에 온 동네 먼지를 다 쓸고 다닌다며 어머니의 등짝스매싱을 유도했던 긴 통바지 유행이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스키니진이 천하를 평정한 뒤에야 태어난 젠Z 세대가 통바지 패션뿐 아니라 그 시절의 아날로그 감성까지 그리워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무려 ‘노스탤지어’를 느낀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젠Z의 노스탤지어”라고 설명하면서, 디지털 시대 이전의 단순한 삶과 Y2K 미학,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시대를 향한 ‘빌려온 향수’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라 했다.

젠Z의 노스탤지어 덕분에 새로 유행하는 트렌드로는 오프라인 서점과 종이책의 컴백, 베이킹과 도예, LP 음반 듣기, 뜨개질 같은 아날로그 취미가 자주 언급된다. 그중 뜨개질은, 최소한 내가 자란 곳에서는 힙한 취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코바늘, 영어로 ‘크로셰(crochet)’라는 단어는 발음하는 순간 ‘할머니 취미’ 장면이 연상된다. 알록달록한 꽃무늬 벽지 앞에는 묵직한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금박이 바랜 꽃무늬 찻잔이 코바늘로 뜬 하얀색 테이블 커버 위에 놓여 있을 것 같다. 그 옆에는 1980년대 특유의 색감이 밴 무릎담요를 덮은 뽀글머리 할머니가 다초점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뜬 채, 묵묵히 코를 세고 계실 것만 같다.

그러나 최근 몇년 동안 이 ‘할머니 취미’ 크로셰, 즉 코바늘은 젠Z 사이에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휴대폰과 SNS에 지친 이들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화면 속이 아닌 현실에 집중하고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sip and stitch’(한 잔 하면서 같이 뜨개질하기) 같은, 마치 이전 시대의 할머니들처럼 차를 마시며 뜨개질하는 오프라인 행사들도 곳곳에서 생겨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뜨개 공방이 늘고 관련 영상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등 뜨개질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테크 네이티브인 젠Z의 아날로그 취미에는 디지털 요소가 듬뿍 들어가 있다. 유튜브를 뒤져 뜨개 인플루언서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리뷰하는 털실을 온라인에서 주문한다. 아마추어 뜨개인들은 틱톡과 인스타에서 작업물을 공유하며 뜨개 동지를 찾아 교류하고, 에지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완성품을 판매한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할 때 저장된 영상을 재생하듯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매번 과거를 재구성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억은 조금씩 다르게 변질되어 저장된다. 내가 직접 살아온 삶의 기억도 그러할진대 직접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를 그리워하는 ‘빌려온 노스탤지어’는 실제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구성된 과거에 빠져들면서 우리가 찾는 것은 그 시절의 사람들이 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의 의미. 나와 비슷한 타인과의 깊은 연결. 무언가를 완성하면서 느끼는 성취감.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통제권을 찾기 등등 말이다.

20년 후, 젠Z 세대가 기억하는 크로셰는 더 이상 ‘할머니 취미’가 아닐 것이다. 그 시절 만난 이들 중에서 절친을 찾았을 수도, 주고받은 코바늘 인형이 평생 책상 한구석을 차지했을 수도 있겠다. 혹은 그저 한때 지나갔던 유행으로 남아, “그때 우리 그랬었지” 하며 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으니 성공적인 노스탤지어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 아닐까.

주한나 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데이터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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