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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얼굴 그리고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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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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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14일부터 15일까지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했다. 사실 바티칸은 정치·문화·종교적으로 여러 얼굴을 가진 복합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바티칸’이라는 명칭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과거 필자는 동아시아 최초의 로타 로마나 변호사로서 가능한 한 바티칸을 옹호하고 방어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사제 신분을 내려놓은 지금은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며,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
그렇다면 바티칸은 어떤 곳인가?
바티칸 시국은 하나의 비정형 국가이다. 동서 최대 길이 1045m, 최소 너비 850m, 총면적 0.44㎢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다. 그러나 바티칸 시국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가톨릭의 정신적 상징이면서 동시에 영토, 인구, 독립적 권위, 국제법상 권한을 가진 독립 주권국가이다. 이러한 지위는 1929년 영국이 국제공동체의 일원으로 처음 인정하면서 국제적으로도 확인됐다.
바티칸은 흔히 ‘보편 교회’라 말하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위한 통치 행위와 전 인류를 목표로 하는 사목 활동에서 ‘사도좌’의 실질적이고도 가시적인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말한 ‘사도좌’란 통상 바티칸을 지칭하는 명칭으로서 ‘사도좌’와 ‘성좌’ 모두 교황청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가 비슷하나 대상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
‘사도좌(Apostolic See, Sede Apostolica)’는 국제법상의 주체로 국가나 국제 공동체를 상대로 그 수장인 교황을 대표로 하는 기관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반면 ‘성좌(Holy See, Santa Sede)’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대표해 각 지역 교회와 관계할 때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 두 용어는 오늘날 거의 의미 구분 없이 혼용되기도 한다.
가톨릭·문화유적 보고·외교 본산
보통 사람들은 바티칸의 얼굴 하면 ‘교황 선거’와 같은 종교적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작은 독립국가 안에도 일반 시민들이 살아간다. 이들은 다른 나라처럼 ‘출생지주의’나 ‘혈통주의’가 아닌 바티칸에서 부여한 직무를 통해 시민권을 획득한다. 그리고 우체국, 은행, 약국, 슈퍼마켓, 면세점, 주유소, 소방서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갖춘 국가 안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며 살아간다.
바티칸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종교적 공간이라기보다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더 가깝게 다가올지 모른다. 바티칸 광장과 성베드로 대성당은 물론 바티칸 박물관과 도서관은 전 세계 희귀자료의 보고로 인류 문화의 창고와 같다.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목판본처럼 연구자로서 가슴 설레게 하는 자료들이 많다. 사실상 바티칸 시국의 전 영토는 ‘문화 유적 중심지’이다. 1954년 5월14일 ‘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유네스코 협약’의 규정에 따라 ‘국제 문화재 특별보호등록사무소’에 등재되어 국제연합의 보호를 받는다. 바티칸 전체가 문화 유적 보호 구역으로 선언된 것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하지만 바티칸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올해는 성베드로 대성당 봉헌 4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바티칸은 현존하는 국가 가운데 가장 오래 외교를 해온 나라이자 국가 간의 갈등이나 분쟁에서 중재와 완충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온 외교의 본산이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2000년 넘게 외교를 이어온 바티칸을 ‘외교의 장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도 전 세계 184개국과 국제기구와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128개 교황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바티칸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강대국들 사이에서도 특정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를 바탕으로 평화와 인권을 외교의 중심으로 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레오 14세 교황과 면담하면서 교황의 북한 방문을 요청했을 것이다.
평화 향한 지속적 노력, 가장 큰 얼굴
라틴어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물방울은 힘이 아니라, 계속 떨어짐으로써 돌을 뚫는다.(Gutta cavat lapidem non vi, sed saepe cadendo.)”(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
바티칸에는 실로 여러 얼굴과 표정이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큰 얼굴을 꼽으라면, 앞서 살펴본 여러 특징과 함께 ‘지속의 힘’일 것이다. 물방울이 강한 이유는 한 번 떨어질 때의 세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떨어지는 지속성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평화를 향한 바티칸의 노력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한동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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