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환율·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3중고' 직면
정부 지원책 당근보다 '판매가격 억제' 채찍이 더 무서워
경기도 안양시의 한 전통시장. [사진=파이낸셜포스트DB]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 전쟁으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긴장 고조로 인한 국제 유가 상승이 3.0% 이상의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조원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하위 70% 대상 현금 지원 등 '고유가 3대 패키지'를 추진하면서, 연 2.3%대였던 물가 전망치를 2.6%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 파이낸셜포스트는 전세계적인 3.0% 인플레이션을 의미하는 '고유가 3.0' 시대를 맞아, 각 산업별로 연재 기사를 게재한다.
[고유가 3.0] 원자재값 급등, 절벽 앞에 선 식품업계
식품업계 맏형인 CJ제일제당을 비롯해 대상, 롯데웰푸드,롯데칠성음료 등 국내 식품업계 기업들은 최근 중동 사태 장기화로 인한 고유가·고환율·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3중고'에 직면해 있다.
특히 국제 유가 상승은 물류비뿐 아니라 포장재 원료인 나프타 가격까지 끌어올려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극대화하고 있다.
먼저 원자재와 포장재를 마련하는 것에 비상이 걸렸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석유화학 제품인 나프타 가격이 연초 대비 110% 가량 폭등하며, 원가의 15%를 차지하는 포장재 비용이 급증했다. 음료 포장 원재료인 알루미늄 가격도 지난 한달 간 15% 넘게 올랐다.
통상 식품기업들이 보유한 포장재 재고는 2개월치다. 당장 이달부터 포장재 재고난이 벌어질 전망이다.
물류비와 에너지 등 관련 비용 상승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고유가는 국내외 운송비와 공장 가동을 위한 에너지 비용을 인상시켜 식품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팜유와 대두 등 주요 식재료 선물 가격도 동반 상승 중이다. 지난 한 달 동안 국제 비료 가격이 30% 가까이 급등해, 전세계적으로 식품 원자재라고 할 수 있는 농산물의 생산이 감소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가격 인상 압박이 거세지만 정부의 규제가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식품업계의 원가 부담이 높지만, 정부의 강력한 물가 안정 기조와 소비자의 기존 눈높이 때문에 선뜻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다.
업계의 자구책은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대대적인 비용 절감 및 구조조정이다.
CJ제일제당은 재고관리단위(SKU)를 4000개 이상 축소하고 제품 라인업을 대폭 조정해 생산 라인의 고정비를 절감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팔리지 않거나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줄여, 재고 관리 비용을 낮추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건 기본이다.
또한 업계 전반에서 공장 통폐합, 조직 슬림화, 마케팅 및 연구개발비 축소 등 '허리띠 졸라매기'가 확산되고 있다.
레시피 최적화와 원료 대체도 자구책 중 하나다. 카카오 열매 등 원가가 급등한 특정 원재료의 사용 비중을 낮추거나 레시피를 조정해 원가 방어에 나서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도 업계에서 유의미한 선택지다. 각 기업별로 특정 국가나 지역에 편중된 원자재 수입선을 다변화하여 수급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책은 포장재 및 물류 지원에 쏠려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나프타 가격 급등에 대응해 친환경 포장재 전환을 지원하고,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물류 공동집하·배송시스템 도입을 확대하여 개별 기업의 운송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매출 4조원 이상 식품기업 중 지난해 영업이익이 늘어난 곳은 동원F&B 1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형 식품기업들의 이익은 일제히 감소한 바 있다.
문제는 정부다. 정부의 특정 가격 인하 압박이나 가격 유지 메시지에 식품업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원자재를 수입하느라 원가 부담이 커졌지만 제품 가격을 낮춘다면, 이익이 급속도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연쇄적인 물가 상승을 막으려는 정부의 압박으로 기업이 실적 한파를 고스란히 맞아내야 하는 지경이다. 정부의 대국민 '전시행정'으로 인해, 식품업계 전반에 '실적 악화'라는 골병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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