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선생, 말총모자로 특허 취득
사업 성공 넘어 독립운동 자금 지원
선조의 뜻, 각자의 자리서 이어가야
▲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최근 한 연예인이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언급하여 증조부의 친일 행적에 관한 논란이 일었다. 그에 관한 옳고 그름을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니다. 다만 광복절을 맞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지식 등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한 번 되짚어보는 시간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혹독한 시대적 혼란 속을 살아내었을 것으로 감히 상상해본다. 당시의 수많은 사람이 구국의 마음을 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직접 총칼을 들고 나서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당시 각자의 자리에서 나라를 구하는 데 일조한 선조들도 많았는데, 이승훈, 최현배, 조만식, 윤동주 등 교육·문화·경제를 비롯한 각분야의 영역에서 구국에 힘을 보탠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작은 지면에 몇 분만 언급하여 죄송할 따름이다.
이제 많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독 우리 변리사들에게 눈에 띄는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보고자 한다. 말총모자를 발명하여 한국인 제1호 특허(1909년 통감부 특허국 특허 제133호)를 받았던 발명가 정인호 선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본에 의해 시행된 1908년 한국특허령에 따른 등록으로, 이후 한국특허령은 경술국치 후에 폐지되었다.
선생은 1869년생으로 궁내부 감중관과 청도군수를 지내다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군수직을 사직했다. 이후 초등대한역사, 최신초등소학 등 여러 교과서를 저술하여 민족교육에 힘썼다. 발명, 디자인과 사업에 수완을 발휘하여 우리나라에서 1909년 말총모자 특허등록 후 일본에도 특허를 출원해 등록받았다. 말총모자 외에도 말총으로 만든 핸드백, 토수(방한용 토시), 셔츠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였고 일본, 중국 등지에 수출까지 하여 상당한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마련한 자산을 독립운동의 자금으로 지원하고, 비밀결사단체인 대한독립구국단을 조직해 단장을 맡아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을 했고, 이로 인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나이가 든 후에도 제품개발과 사업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다. 1937년 동양특산양행을 창업한 후 이듬해 말총으로 만든 모자. 핸드백, 쿠션 등 30여 상품을 조선미술전 공예부문에 출품하여 당시 71세의 고령으로 공예부문 특선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선생을 소개할 때 발명가, 디자이너, 사업가, 저술가, 행정가 내지는 독립운동가라고 해야 할 것인데, 한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으로는 너무 다양하여 놀라울 따름이다. 사견으로는 ‘발명가이자 독립운동가’라고 칭하고 싶다. 선생은 아쉽게도 1945년 1월21일 사망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을 마주하지는 못했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의 공훈을 인정하여 건국포장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했다.
광복 후에 대한민국 특허 제1호가 1948년에 등록된 이후 78년만인 2026년 7월, 우리나라 등록특허는 마침내 제300만호(지식재산정보 검색 서비스 사이트, 키프리스)에 이르렀다. 한국인 제1호 특허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사실에서 좋은 기운을 물려받은 덕인지 우리나라는 당당한 독립국으로서 이제 IP5(지식재산강국 5개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 8월15일은 제81주년 광복절이었다. 이름이 역사에 크게 남지는 않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우리말을 쓰고 아이를 교육하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등 자신의 생업을 영위하여 고난의 시대를 견뎌내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 역시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기여를 하였던 수많은 그 시대의 선조들에게까지도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8월 한 달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광복된 지 81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법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발명가 정인호 선생이 자신의 일의 결과물인 말총모자로 독립에 기여했듯이 언젠가는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이 만들어낸 제2, 제3의 말총모자가 우리나라 나아가 인류의 평화증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과연 제2, 제3의 말총모자는 어떤 모습일까.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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