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위한 책을 추천해볼까요. 팟캐스트 피디님이 던진 이야깃거리에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추천자라니, 정말 잘 골라야 하겠는데. 복길의 K팝 에세이 <펑펑>을 녹음 직전까지 끼고 다니다가 막상 휴가에는 다른 책을 찾게 되었다.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읽어야겠다. 푹 빠져들 작품이면 좋겠다. 시대와 언어권이 먼 작가로, 회사 책은 제외하고. 얼마 전 친구가 추천한 미국 소설가가 떠올랐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문체의 작가인데 같은 이유에서 나도 좋아하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출간되어 있는 서너 종에서 여가와 어울려 보이는 <스포츠라이터>를 택했다.
과로했던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성인 독서율이 최저에 이른 가운데 강남 코엑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스터리다. 굿즈가 흥행을 이끌었다고 분석되지만 책도 많이 팔렸다. 도서전에서 사들인 책을 다들 쉬면서 읽으면 좋을 텐데.
출판에서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읽은 책’과 같은 추천 리스트는 없어졌다. 극장에서는 여전히 여름 대목을 노리고 블록버스터가 개봉한다. 온라인 쇼핑몰은 대대적으로 바캉스 룩을 제시한다. 화보에 꼭 외국 배경으로 외국 서적을 들고 있는 모델 컷이 있다. 유행하는 홀터넥 블라우스를 입고 한적한 호텔에서 책을 든 모습.
부산 바닷가는 해수욕하는 어린이를 돌보는 어른들, 친구를 던지고 노는 청년들, 바다 수영을 하는 중노년으로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다. 물이 찬 수역에서 펄떡 숭어가 뛰어올랐다. 나는 튜브를 타고 바다에 떠다녔다. 모래사장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물에 빠진 나방을 건져주고 온 동행은 철학책을 들고 졸다가 팔이 빨갛게 탔다.
리처드 포드의 1986년작 <스포츠라이터>는 이렇게 시작했다. “내 이름은 프랭크 배스컴, 직업은 스포츠 기자다.” 서른여덟의 배스컴은 소설 판권을 팔아서 뉴저지에 3층 저택을 세우고는 책을 더 쓰지 못하다가 스포츠 기자가 되었다. 스포츠의 매력에 통달한 유능한 기자로서 지금 직업에 만족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냉소에 빠져 있다. 느끼는 바와 다른 말을 하며,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본다. 첫째 아들이 죽고 이혼했으며 새로운 여자를 원하는 그가 정말로 작가 일을 포기했는가가 소설의 미스터리다.
마드라스 셔츠에 치노 바지를 입고 방황하는 이 남자는, 상대방은 1초 만에 파악하면서 자신에 관해서는 몽롱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화자에게 반발하고 공감하며 집에 돌아가는 기차에서 결말을 봤다.
부활절까지 사흘 동안 일어난 사건으로 파탄이 날 뻔하다가 배스컴은 약간 다른 사람이 된다. 인생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얇은 막이 있고, 어느 날 그 막에서 갑자기 빠져나오는 순간이 온다. 기분이 좋아진 그때 “당신은 이 빛나는 순간을, 이 차가운 공기를, 이 새로운 생활을, 이 행복한 느낌을 가능한 오래, 아니 영원히 간직하고자 한다”. 책에는 내가 휴가에서 겪은 일이 적혀 있었다. 새로운 생활의 예감이 휴가 뒤의 두려움을 걷어갔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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