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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거울 속 늙은 아이

새벽 다섯 시, 마구간 문을 열면 말들이 먼저 나를 맞는다. 건초 냄새와 말의 따뜻한 숨결이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공기를 채운다. 열두 마리 말에게 건초를 나누어 주고 물을 갈아 주고 마구간을 치우다 보면 어느새 아침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온다.

거울 속 늙은 아이

[충청논단] 최기영 시인

새벽 다섯 시, 마구간 문을 열면 말들이 먼저 나를 맞는다. 건초 냄새와 말의 따뜻한 숨결이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공기를 채운다. 열두 마리 말에게 건초를 나누어 주고 물을 갈아 주고 마구간을 치우다 보면 어느새 아침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온다. 그렇게 아침을 정리하고 나면 숨이 찬다. 건초 한 단을 들고도 허리를 한 번 펴야 하고, 말발굽을 살피려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설 때면 무릎이 먼저 신음을 낸다. 무릎에는 어느새 꽃이 피었다. 의사 선생님은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하지만 나는 세월이 피워 놓은 꽃이라고 부른다.

일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선다.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아이 하나가 아직도 작은 옥탑방에서 침낭 하나 덮고 별똥별을 주워 담으며 내일을 꿈꾸던 백발 가득한 아이가 나를 반긴다. 흰머리를 염색한다. 사람들은 백발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염색을 하는 것은 젊어서 열정을 버리지 못해서다. 그러나 몸은 솔직하다. 젊은 시절 근육은 사라졌고, 그 자리는 불룩한 배와 굽은 어깨가 대신하고 있다. 시선도 어느새 하늘보다 땅을 더 많이 바라본다. 아마도 사람은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을 찾는 것 같다.

공직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 퇴직했다. 일반 노동자보다 많은 연금을 받으면서도 놀면 뭐 하냐. 돈 버는 재미로 산다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 말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오랜 직장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무상으로 후대에 물려주면 안 될까? 굳이 경험을 무기로 직장을 구하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다. 나이 든 자의 탐욕이 젊은이들의 먹거리 하나를 빼앗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조금만 양보하면 그들에게 일자리 하나를 챙겨 줄 수 있는데 안타깝다.

나는 요즘 자주 말들을 바라본다. 젊은 말은 앞장서 달린다. 하지만 나이 든 말은 무리의 뒤를 지킨다. 어린 말이 겁을 먹으면 몸으로 막아 주고, 길을 잃으면 먼저 방향을 잡아 준다. 힘이 아니라 경험으로 무리를 이끄는 것이다. 말은 늙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흰 갈기가 바람에 날려도 감추지 않는다. 달릴 수 있을 만큼 달리고, 쉬어야 할 때는 조용히 쉰다. 세월과 싸우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끝까지 세월을 이기려 한다. 흰머리를 감추고, 주름을 감추고, 늙음을 감추려 한다. 어쩌면 늙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쓸모없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들은 내게 다른 삶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앞에 서기보다 곁에 서는 법을, 많이 갖기보다 많이 내어주는 법을.

이순을 넘긴 오늘까지도 달리고 싶어 하는 늙은 아이의 손을 잡는다. 우리 이제 천천히 걸어가자며 마구간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나를 반기는 맑은 눈동자들 앞에서 나이, 욕심, 허세를 내려놓는다. 곱게 늙는다는 것은 얼굴에 주름이 적은 사람이 아니다. 말의 눈처럼 맑은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는 사람이 되자며 거울 앞에 서서 말한다.

“이제 남은 생은 앞서 달리지 말자. 길을 비춰 주며 걷자. 걸어 온 길이 아름다웠듯이 남은 길도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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