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장악한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국내 방송광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AI와 데이터를 결합한 '퍼포먼스 TV'로 진화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방송사 간 경쟁을 넘어 통신사와 손잡는 전략적 연합이 생존의 조건이라는 제언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 미디어광고연구소 성윤택 수석연구위원이 18일 부산 부경대학교에서 열리는 한국방송학회 2026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퍼포먼스(Performance) TV 시대의 방송광고 고도화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생성형AI 제작
기획부터 송출까지, 생성형 AI가 바꾼 광고 제작의 풍경
성 수석연구위원은 글로벌 디지털 광고 시장이 2028년 96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7년 2430억 달러에서 10여 년 만에 네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특히 2019년을 기점으로 모바일이 데스크톱을 추월한 뒤 격차를 벌려왔고 2028년이면 모바일 비중이 7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국내 지상파 TV 광고비는 2020년 1190억원에서 2026년 827억원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제시했다.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광고 산업이 맞닥뜨린 첫 번째 변화로 생성형 AI의 전방위 침습을 꼽았다. 기획과 설계, 촬영과 편집, 송출에 이르는 제작 전 단계에 AI가 깊숙이 파고들면서 빠른 반복과 저렴한 비용으로 다수의 광고 버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KOBACO가 자체 개발한 'Aisac' 솔루션은 포털과 SNS, 영상 플랫폼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과 소비자 트렌드를 파악하고 광고 카피부터 스토리보드까지 제작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됐다.
해외에서는 프랑스 버거킹의 'a.i.lloween' 캠페인, 코카콜라의 'Create Real Magic' 등이 생성형 AI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로 거론된다.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 오디오,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창작 영역 전반에서 AI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평가다.
탑건에 포르쉐를 매칭하다, AI PPL과 영상 분석 기반 광고 매칭
성 수석연구위원이 특히 주목한 기술은 AI PPL과 영상 분석 기반 광고 매칭이다. AI 영상 가공 기술을 활용해 미디어 콘텐츠 안에 자연스럽게 제품과 서비스 이미지를 삽입하는 AI PPL은 영국 Mirriad의 해외 사례와 국내 tvN '미생', JTBC '서른아홉' 등에서 이미 실제 적용이 이뤄졌다.
더 진일보한 방식은 영상의 맥락을 AI가 분석해 가장 적합한 광고를 실시간으로 매칭하는 기술이다.
영화 '탑건: 매버릭'을 예시로 들었다. 다크스타 시험비행 장면에는 시골 바를 배경으로 한 블루문 맥주 광고, 아이스맨과 매버릭의 재회 장면에는 부상군인 지원 공익광고, 해변 풋볼 신에는 맥도날드 해변 광고, 해군 정복을 입고 항공모함에 오르는 장면에는 포르쉐와 탑건의 콜라보 광고가 지능적으로 매칭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SNS 데이터 분석을 결합하면 레이반 선글라스, 가와사키 모터사이클, 버드와이저 맥주, 언더아머 저지처럼 실제 작품 속에 노출된 바이럴 상품의 최적 광고 스팟까지 찾아낼 수 있다. 플랫폼사는 광고 상품성 제고로 수주와 매출을 늘리고 콘텐츠 소유자는 타 플랫폼 대비 차별화된 수익성을 확보하며, 광고주는 오디언스 타겟팅 정확성을 높여 ROAS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성 수석연구위원의 분석이다.
한편 방송 디바이스 자체의 진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과거 '바보상자'로 불리던 TV가 이제 온디바이스 AI를 탑재한 지능형 기기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당장 삼성TV는 2025년 10월 퍼플렉시티(Perplexity)를 탑재했고 KT는 구글 제미나이를 품은 '지니 TV탭 4'를 선보였다. SK브로드밴드의 AI 스피커형 셋톱박스, LG유플러스의 U+tv 사운드바 블랙 등 무선공유기와 인공지능 스피커, 사운드바에 이어 셋톱박스 자체가 AI 기능을 구현하는 만능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TV의 ACR(Automatic Content Recognition)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TV는 시청자와 상호작용하며 데이터를 생성하는 핵심 디바이스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성 수석연구위원의 설명이다.
퍼포먼스 TV, 방송광고의 파워와 디지털의 정밀함을 결합하다
변신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귀결점이 바로 '퍼포먼스(Performance) TV'라는 설명이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퍼포먼스 TV를 "TV 광고의 강력한 영향력과 디지털 마케팅의 정밀함을 결합한 것"으로 정의했다. 브랜드는 커넥티드 TV와 리니어 TV 광고 캠페인을 손쉽게 집행하면서 AI 기술로 최적화하고 실제 비즈니스 성과를 실시간 측정할 수 있게 된다.
핵심은 갖고 있는 데이터의 활용이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멀티커런시(Multi-Currency)의 출현과 IPTV 셋톱박스(STB) 데이터의 가치에 주목했다. 전국 IPTV 가입자를 대상으로 편집 규칙을 적용해 4시간 이상 과다 시청을 제외하고 분 단위 평균 시청자 수와 프로그램 시청자 수 등을 측정하면, 기존 패널 조사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미시적 시청 행태까지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로 제시된 STB 데이터 분석에서는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났다. 프로야구 중계 시청률에서 한화와 키움 경기는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롯데와 기아전은 광주광역시와 부산광역시에서, 키움과 LG전은 서울특별시에서 높게 나타났다. 서울 지역 채널별 분석에서도 골프 채널은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강남 3구에서, 드라마 채널은 노원구와 은평구 등 강북 지역에서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지역과 콘텐츠의 상관관계가 데이터로 가시화되는 셈이다.
실시간 채널 광고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상당 부분 진척됐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2024년 8월 KT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IPTV 3사가 통합광고플랫폼 구축을 완료해 현재 상용화 중이라고 밝혔다. 가입자 2100만 명 규모의 커버리지 통합도 이미 완료됐다는 설명이다.
광고 집행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은 광고 송출 플랫폼, 광고를 시청할 고객(커버리지), 광고 노출 자원(인벤토리)이다. IPTV 3사는 광고 플랫폼과 커버리지를 확보했지만 인벤토리가 부족하고, 반대로 방송사는 인벤토리는 풍부하지만 디지털 광고 플랫폼과 전국 단위 커버리지가 취약하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IPTV와 방송사가 상호 결함을 보완하는 얼라이언스를 구축하면 광고 플랫폼과 커버리지, 인벤토리를 모두 갖춘 완성형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한편 국내 방송 광고 생태계가 참고해야 할 모델로 성 수석연구위원이 제시한 사례는 영국 CFlight와 BARB Ads Hub다. 개별 사업자의 단독 대응으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통합 광고 솔루션에 맞서기 어렵고, 광고주는 크로스플랫폼 통합 측정을 요구하는데 각 방송사가 자체 데이터만 제공하면 TV 광고 전체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연합이다. 파편화된 측정은 디지털과의 격차를 벌리고 광고주 이탈을 가속화할 뿐이라는 경고도 담겨 있다.
CFlight는 2018년 미국 NBCU가 개발한 One Platform 측정 방식이 모태다. 컴캐스트의 Sky 인수를 계기로 2019년 영국 Sky Media에 적용됐고, 2022년에는 Sky와 ITV, Channel 4가 주도한 베타 버전이 런칭됐다. 이후 UKTV, STV, Channel 5, Discovery, TNT Sports 등 경쟁 방송사들이 차례로 합류하며 영국 방송사 연합 체제로 확장됐다. 2024년 1월에는 영국 공동산업위원회(JIC) BARB가 CFlight의 거버넌스를 전면 인수해 공신력을 확보했고, 2026년 1월 BARB Ad Hubs가 공식 출시되면서 사전 기획과 사후 분석의 완전 통합 단계에 이르렀다.
운영 방식은 5100가구 패널 규모의 BARB 패널 데이터라는 '골드 스탠다드'와 방송사 1st-Party 데이터인 BVOD 광고 서버의 디바이스 레벨 노출 데이터를 결합하는 구조다. 그 결과 중복 제거 도달률(Reach)과 빈도(Frequency), 14개 거래 오디언스 측정 지표가 산출된다. 리니어 TV와 BVOD를 아우르는 공동 캠페인 측정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성 수석연구위원은 수용자 측정의 역사적 맥락에서도 현재의 변화를 짚었다. 1920년 이전 신문과 잡지의 부수 감사에서 출발한 수용자 측정은 1940년대 TV 오디미터 도입, 1980년대 피플미터, 1990년대 인터넷 측정, 2000년대 패시브 측정과 GPS 미터를 거쳐 2010년대 크로스플랫폼 측정으로 진화해왔다. 현재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플랫폼에서든 측정 가능한 'Audience Measurement 5.0'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 성 수석연구위원의 진단이다.
"귤화위지 되지 않으려면", 기술과 사회적 수용성 사이
성 수석연구위원은 마지막으로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를 인용했다. 강남의 귤이 강북에서는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해외에서 성공한 모델이 국내 환경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다. 세계 최초로 '손 안의 TV' DMB를 상용화했지만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했던 경험, 국내 통신사향 OTT였던 POOQ와 옥수수가 글로벌 플랫폼의 공세 속에서 독자 생존에 어려움을 겪었던 역사가 이러한 우려의 배경이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기술적 가능성(technical feasibility)과 사회적 수용성(social acceptability)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와 초개인화가 방송광고의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해관계 조정과 재원 마련 같은 현실적 과제를 함께 풀어야 공동산업위원회 모델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디어 진화의 큰 흐름도 함께 제시했다. 비주얼캐피털리스트가 정리한 '미디어 진화 3단계'에 따르면 인쇄술로 시작된 아날로그·초기 디지털 미디어(Wave 1), 웹 2.0과 스마트폰이 만든 커넥티드 미디어(Wave 2)를 거쳐 현재는 데이터 미디어(Wave 3)로 접어들었다. 데이터 미디어의 성공 조건은 투명성(Transparency), 검증 가능성과 신뢰(Verifiability and Trust), 글로벌 데이터 표준(Global Data Standards)이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지금도 늦었지만,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된다"며 국내 방송사와 통신사가 생존을 위해 데이터 기반의 통합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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