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여름, 다른 더위
김해연 동신대 도시계획학과 4학년
2026년 09월 14일(월) 22:00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더웠다. 밖을 걷다 보면 조금이라도 그늘이 있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횡단보도에서는 작은 그늘막 아래 사람들이 모여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제 여름철 폭염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같은 날, 같은 기온 속에서도 우리가 경험하는 더위는 모두 같지 않다. 누군가는 에어컨이 켜진 실내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누군가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일을 해야 한다. 더위를 피해 언제든 실내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생계를 위해 가장 더운 시간에도 야외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35℃의 하루라도 누군가에게는 단지 불편한 하루이고, 누군가에게는 건강과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하루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더위를 많이 타고 적게 타는 개인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집에서 생활하는지, 주변에 더위를 피할 공간이 있는지, 냉방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폭염을 견딜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자와 야외근로자, 농업인처럼 폭염에 장시간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더위는 더욱 직접적인 위험이 된다. 반대로 냉방이 가능한 실내에서 생활하고 필요할 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에게 폭염은 상대적으로 견딜 수 있는 문제가 된다.
결국 기후위기는 자연현상이지만 그 피해의 크기까지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차이도 더해진다. 나무와 녹지가 충분하고 그늘진 보행로가 이어진 동네와 건물과 아스팔트가 밀집하고 그늘을 찾기 어려운 동네에서 경험하는 여름이 같을 수는 없다. 가까운 곳에 공원이나 쉼터가 있는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햇볕을 피할 수 있는지처럼 평소에는 사소하게 보였던 도시 환경의 차이가 폭염 속에서는 생활의 차이로 이어진다.
도시계획과 산림조경을 공부하면서 나는 이 부분을 이전보다 더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됐다. 도시의 공간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누리는 환경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공원과 녹지, 가로수와 그늘, 쉼터와 보행환경은 도시를 보기 좋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폭염 속에서는 시민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계획 역시 단순히 공원을 몇 곳 더 만들고 나무를 몇 그루 더 심는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어디가 가장 더운가’와 함께 ‘누가 그 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되고 있는가’이다.
예를 들어 하루 대부분을 야외에서 보내는 사람이 많은 곳, 고령자가 많이 생활하는 지역,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오랜 시간 걷거나 기다려야 하는 공간이라면 그늘과 휴식 공간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같은 시설이라도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혜택을 받는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공평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나무 한 그루를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공평한 것은 아니다. 더위에 더 많이 노출되는 사람과 지역에 더 많은 보호가 필요할 수도 있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사람과 공간을 먼저 찾아내고 그곳에 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인 대응에 가까울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폭염 문제는 단순히 기온을 낮추는 문제를 넘어선다. 어떤 지역에 녹지가 부족한지, 어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기 어려운지, 누구에게 냉방과 휴식 공간이 필요한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기후정책과 도시정책이 결국 사람의 생활을 중심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폭염이 찾아올 때마다 숫자를 확인한다. 오늘 최고기온이 몇 도인지, 폭염특보가 내려졌는지, 지난해보다 얼마나 더운지를 이야기한다. 물론 이러한 숫자도 중요하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이까지 보여주지 못한다.
이제는 기온을 묻는 것과 함께 다른 질문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도시에서 가장 더운 사람은 누구인가.” 기후 위기는 모두에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 피해까지 모두에게 같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기후위기 대응은 도시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 것만큼 피해의 차이를 줄이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더운 곳을 찾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누구에게 더 많은 그늘과 쉼터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환경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출발이다.
어쩌면 기후위기에 강한 도시란 가장 시원한 도시가 아니라, 폭염으로 인해 누군가가 더 큰 위험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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