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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대권의 시시각각] 삼성전자 노사갈등, 결국 '거버넌스' 문제다

국내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IT 기업 대비 큰 폭의 디스카운트를 받는 핵심 원인 중 하나가 해외 투자자 접근성이다. 지난달 필자에게 이스라엘의 해외 고객이 다급히 연락해 왔다. 뉴욕에서도 런던에서도 삼성전자 주식을...

[강대권의 시시각각] 삼성전자 노사갈등, 결국 '거버넌스' 문제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전자 파업 관련 대국민 담화를 위해 브리핑룸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김민석 국무총리,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2026.5.17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위협이 ‘귀족 노조 vs 국가의 보물기업’ 구도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 사옥 앞에서는 주주들이 파업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노조를 향한 국민 여론이 곱지 못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노조의 이기심이 아니라 수년간 누적돼온 삼성전자의 거버넌스와 경영의 실패라는 생각이다.

필자 역시 삼성전자 덕분에 올해 적지 않은 수익을 거뒀고 지금도 높은 비중으로 보유 중인 주주의 입장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조의 요구는 상당 부분 타당하다. 삼성전자에는 노조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할 만한 명분이 없다.

삼성전자가 누적해 온 의사결정의 오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때 HBM2 양산을 주도했음에도 후속 로드맵에 게을렀던 결과, 초기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SK하이닉스에 통째로 내줬다. 1a·1b 같은 DRAM 선단 공정에선 EUV 선점만 믿고 무리한 램프업을 강행하다가 수율과 성능 모두에서 참혹한 결과를 냈고, 불과 1년 전만 해도 메모리 사업부 전체가 적자 위기에 몰렸었다. 경영판단의 헛발질 중에 핵심 인재의 이탈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SK하이닉스만이 아니다. 마이크론의 오하이오 공장에 가보면 삼성전자 출신 연구 인력이 즐비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업지원 TF라는 애매한 컨트롤타워 중심의 무리한 의사결정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조직 신뢰는 무너졌고 인재는 빠져나갔다. 결국 최악의 위기에 몰렸던 삼성전자가 에이전트 AI 시대 추론 수요 폭증이라는 외생적 호재를 만나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객관적 현실이다. 천우신조의 턴어라운드일 뿐, 경영의 승리는 아니다.

요즘은 구사일생의 삼성전자가 한국 전체를 먹여 살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누적된 경영 실패를 돌이켜 보면 이번 노사 갈등은 자업자득에 가깝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PS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했고, 기본급 1000% 상한선까지 폐지하며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내부 신뢰가 훼손된 삼성전자 노조가 그 이상의 이익 배분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경쟁사의 변화에 복지부동하던 경영진의 주저가 만든 또 한 번의 실패인 것이다.

문제는 협상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 근본 원인 역시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 자체에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부품(반도체)과 완성품(스마트폰·가전)을 한 법인 안에서 영위한다. 수직계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를 한 집에 묶어 둔 형국이다. 메모리 가격이 올라 반도체가 호황일 때 메모리를 비싸게 사 와야 하는 스마트폰 사업부는 마진이 위축된다. 한 회사 안에서 사업분야별 실적이 정반대로 움직이는 셈이다. 실적 연동 보상이 원칙이라면 무선사업부 직원들은 호황기에 소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부 사정을 따져 보면 그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반도체 부진기에 막대한 투자를 지탱했던 캐시플로우는 스마트폰 사업이 만들어 준 것이다. 따라서 반도체가 호황일 때 무선사업부에 일정한 보상이 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이클이 다른 사업을 한 바구니에 무리하게 담아 둔 모순이 노사 협상 테이블에 그대로 쌓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조의 중심인 반도체 사업부 내부에도 갈등의 씨앗이 있다. 사측은 메모리 600%, 파운드리 100%의 차등 인센티브를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인력 이동이 빈번한 사업부다. 2024년 반도체 위기 국면에서 전영현 부회장 복귀 이후 파운드리 인력 상당수가 메모리로 재배치됐다. 그때그때 회사 사정에 따라 옮겨 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갈렸을 뿐이다. 파운드리에 남은 인력의 희생이 향후 파운드리 정상화의 자산이 될 텐데, 단기 실적만 보고 메모리에만 보상을 몰아주면 갈등은 사업부 간으로 번진다.

결국 사이클이 다른 사업을 한데 묶어 둔 구조적 결함과, 경쟁사의 변화에 미리 대응하지 못한 경영의 실패가 한꺼번에 청구서로 돌아온 것이 오늘의 파업 위기다. 이재용 회장이 뒤늦게 사과하는 감성적 제스처로 봉합될 사안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위기는 다시 거버넌스로 돌아간다. 그간 숙의되어 온 삼성전자 분할 논의를 재조명할 때다. 지난해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적분할을 통해 순수 제조 회사와 신약 개발 지주회사 삼성에피스홀딩스로 갈라졌다. 그때 그룹이 공시에서 밝힌 명분이 “고객사와 경쟁하는 구조 해소”였다. 그 논리는 삼성전자에 더 정확히 들어맞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서 애플·구글에 부품을 공급하면서 스마트폰·가전으로 같은 고객과 정면 경쟁한다. 사업 간 이해 상충에 노사 간 이해 상충까지 같은 뿌리에서 자라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에 비해 뒤처진 것은 HBM 기술이나 이익 공유 제도만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ADR 발행을 추진 중이며 올해 6~7월 상장을 목표로 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IT 기업 대비 큰 폭의 디스카운트를 받는 핵심 원인 중 하나가 해외 투자자 접근성이다. 지난달 필자에게 이스라엘의 해외 고객이 다급히 연락해 왔다. 뉴욕에서도 런던에서도 삼성전자 주식을 살 수 없는데 왜 ADR을 발행하지 않느냐는 항의다.

답은 알지만 말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미국 SEC 공시 기준은 엄격하다. 삼성전자가 제대로 된 ADR을 발행하려면 내부 거래, 반도체 사업부가 무선 사업부에 납품하는 메모리 가격을 공시해야 한다. 현재의 사업 구조 안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노사 갈등을 만들어 낸 바로 그 구조가 주주환원의 제약까지 만들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노사 문제도, 귀족 노조의 이기적 요구도 아니다. 누적된 재벌경영의 모순 속에 이종 사이클 사업의 어색한 결합, 그리고 그것을 방치해 온 경영의 미스가 한꺼번에 청구서로 돌아온 것이다. 노조와 주주의 갈등은 여론의 호도다.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와,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만큼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버넌스의 문제다. 노조와 주주는 같은 문제의 두 얼굴을 보고 있을 뿐이다. 사업 구조 개편이라는 정공법 없이 이번 갈등은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돼 나타날 것이다. 삼성전자는 더 이상 숙제를 미루지 않아야 한다.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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