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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귀찮은 행복이다

일본 영화 ‘가족의 이야기’ 포스터 메인 카피는 “가족은 귀찮은 행복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처럼 가족을 잘 표현한 말도 드물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행복은 가족에게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고통이나 슬픔 등도 가족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가족은 귀찮은 행복이다

[목요사색] 정우천 흥덕문헌연구소장

일본 영화 ‘가족의 이야기’ 포스터 메인 카피는 “가족은 귀찮은 행복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처럼 가족을 잘 표현한 말도 드물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행복은 가족에게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고통이나 슬픔 등도 가족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처럼 가족은 행복도 주고 고통도 주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다.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유전자 전달 기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유전자 전달에 유리한 일은 기쁨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유전자 전달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고통과 불쾌감을 주도록 진화해 왔다고 한다. 유전자 전달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감정적 보상은 본능에 각인돼 인간의 행불행에 관여한다. 좋은 음식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영양상태가 좋아지면 이것이 생존과 후세 생산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식이 성공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등 다음 세대를 만들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는 것을 보면 이 또한 기쁨과 행복감을 준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엔 불쾌감과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유전자 전달은 자연스럽게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순리대로 전달돼 내려간다. 그래서 부모의 삶은 자신의 성취에 더해 낳고 기른 자식의 성취를 포함한 전부가 자신의 성취가 된다. 하지만 자식은 보통 부모의 성취는 빼고 자신의 성취만이 자신의 삶이 된다. 오히려 부모의 성취에 의한 기반 없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얻는다면 더 빛나는 성취가 된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 전달되는 유전자의 흐름은 내리사랑이란 말을 만들었고, 현실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크기는 거의 언제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크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의 강도에 다소 온도차가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타인의 성취를 진정으로 기뻐해 주는 경우는 거의 가족 간이 유일한 것 같다. 유전자로 묶여있는 관계란 그렇게나 끈끈한 것이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말이 동서양에 공존하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렇듯 가족 구성원 간에 행불행을 공감하고 희로애락을 내 일같이 느끼는 것은 본능적으로도 당연하고 사회적으로도 공감하는 일이다. 가족 성원의 기쁨이나 슬픔은 각 개인의 감정과 동조화될 만큼 강렬하다. 그러나 이런 일반론에 반해 가끔은 부모가 자식을 착취한다든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는 패륜의 일도 세상에는 왕왕 일어난다. 유명 연예인이 부모의 무임승차와 몰염치한 행위로 고통을 겪는 뉴스도 종종 나오곤 한다.

고전 음악의 대가인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부터 한 시대를 풍미한 마이클 잭슨도 그렇게 탐욕과 간섭으로 욕망하는 부모 때문에 고통받았다. 가족의 사랑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에너지가 되지만 한편으론 해결하고 정리하지 못할 족쇄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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