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문턱 높이자 인터넷은행으로 ‘풍선효과’
고신용자로 대출 쏠림 심화
부동산 잡으려다 ‘위험자산’으로 머니무브 가속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매물 안내문 모습.[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금융 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억제를 더 강화하면서 시중은행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1.5~2% 수준으로 예상했으나, 주요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과 관리 목표치를 1% 안팎으로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은행은 증가율을 0.7% 수준까지 낮추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 강화에 나선 명분은 부채 비율을 낮춰 국가 경제의 잠재적 위험을 차단하겠다는 것이지만, 핵심은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있다는 풀이가 지배적이다.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출을 조이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는 자금이 제한되고 집값 상승률을 끌어내릴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 금융 당국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을 0.7~1.5% 수준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치가 1% 안팎으로 확정될 경우 5대 은행은 정책대출을 제외하고 연간 약 6조4500억원가량의 가계대출만 새로 공급할 수 있다. 이는 월평균 5400억원 규모다. 은행 한 곳당 1000억원이 채 안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은행권의 대출 심사도 더욱 깐깐해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월 5대 은행이 신규 취급한 가계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46.8점으로 관련 통계가 공시된 2023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마이너스통장(자금 필요 시 은행 대출 한도 내에서 수시로 빌려 쓰고 갚는 대출) 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60점에 달했다. 사실상 초우량 차주 위주로만 자금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시중은행의 대출 압박이 가중되면서 대출 수요가 인터넷전문은행 3사(카카오·케이·토스뱅크)로 쏠리는 풍선효과도 뚜렷하다. 금융감독원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은행 3사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74조428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73조8729억원)보다 5551억원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1조9491억원 감소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시장 전체의 부채를 줄이기보다는 은행권 내에서 대출처를 이동시키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가계부채 흐름을 제한해 자금을 생산적 산업 분야로 유도하겠다는 전략이 역효과로 나타날수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이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것보다 개인이 부동산 대신 증시로 자금을 넣는 흐름이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머니무브’가 이를 방증한다.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 순유입된 자금은 지난 8일 기준 70조3100억원에 달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10대 증권사의 순이익은 총 8조9730억원으로 5대 은행의 순이익 증가세를 압도했다.
신용융자(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를 통한 주식 투자도 늘고 있다. 부동산에 비해 주식은 변동성이 큰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데, 자칫 주식시장이 충격을 받을 경우 투자자의 손실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집값이 하락해도 그대로 거주하면 되지만, 그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증시가 조정받으면 투자자는 원금 손실과 대출 이자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용융자를 이용한 투자가 늘어날수록 주가 하락 시기에 반대매매(증권사에서 빌린 돈으로 산 주식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하는 것)가 커져 주가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며 “대출 규제 정책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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