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미·중 빠진 탈탄소, 파리협정의 의미를 다시 묻다' 세션에 참여한 패널들이 발언하고 있다. /박상현 기자
한해 전 세계가 내뿜는 탄소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 인도는 2015년 맺은 파리협정을 탈퇴하거나 파리협정에서 약속한 ‘2050년’이라는 기한을 무시한 채 독자적 탈(脫)탄소 시점을 설정하는 식으로 여전히 많은 양의 탄소를 뿜어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의 탄소를 줄이는 공격적인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 인구 140만명의 에스토니아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화석연료 의존도를 30~40% 수준으로 줄이고, SMR(소형 모듈 원자로)를 도입해 에너지를 무탄소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다 배출국의 탈탄소 참여가 요원한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상대적 저(低)배출국들이 노력이 무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2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선 ‘미·중 빠진 탈탄소, 파리협정의 의미를 다시 묻다’라는 주제로, 미국과 중국의 이탈로 탈탄소 동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앞으로 펼쳐질 기후변화 대응 양상과 녹색 전환의 미래에 대해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20일 ALC '미·중 빠진 탈탄소, 파리협정의 의미를 묻다' 세션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는 이회성 IPCC 전 의장. 이 전 의장은 "전기의 탈탄소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산업 소재의 탈탄소가 이뤄져야만 진정한 '경제의 탄소중립'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현 기자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의장으로 제6차 평가 보고서 발간을 이끈 이회성 전 의장은 재작년 전 지구 온도가 1.55도 상승을 기록, 한 차례 목표치 위로 올라간 것을 지적하며 “이런 일시적 ‘오버 슈트’(목표치 이탈)가 수차례 이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화 될 것”이라며 “파리협정의 목표는 2100년까지 길게 보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이것을 실패로 단정지을 순 없다”고 했다.
이 전 의장은 “문제는 오히려 ‘왜 이렇게 더뎠느냐’에 있다”면서 “파리협정은 세계 195국(國)의 약속이고, 이것은 결국 ‘정부 실패’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국 정부는 파리협정 이슈를 소환해 탈탄소의 책임을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 NGO, 시민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분산시켰다”며 “이렇게 되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의장은 ‘RE100(재생에너지 100%)’ 등 유럽 NGO를 중심으로 일었던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흐름에 대해 지적하면서 “진정한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마음에 드는 기술 하나를 골라 놓고 그것이 무조건 정답인 것처럼 강요하는 ‘기술 교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적(敵)은 ‘탄소’이지, ‘화석연료’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에 강점을 가진) 유럽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다른 나라도 채택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독단이며 이것이 탈탄소의 진짜 적”이라고 했다.
20일 ALC '미·중 빠진 탈탄소, 파리협정의 의미를 묻다' 세션에서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 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그는 "녹색 전환은 단순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경쟁력, 에너지 안보 등이 걸린 한 국가의 생존 싸움"이라고 했다. /박상현 기자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 대사는 탈탄소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대응 흐름에 대해 “EU 안에서 강력한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것은 탈탄소가 단순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경쟁력, 에너지 안보, 그리고 기술 주권의 문제라는 것”이라고 했다.독일·프랑스 같은 큰 국가 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를 포함한 EU의 ‘작은 국가’도 탈탄소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트3국이 천연가스 수입에 문제를 겪었던 것을 짚으면서, “에스토니아는 에너지를 100% 화석연료에 의존해왔고, 모든 걸 수입하고 있었다”며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와 독립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느끼게 됐다”고 했다. 이어 “녹색 전환은 곧 화석연료 일변도로 인한 우리의 취약성과 연관된 문제”라며 “이것은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라고 했다.
그는 녹색 전환에 있어 에스토니아와 한국의 협력도 강조했다. 그는 “에스토니아의 강점은 유연한 비즈니스 환경으로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이 많이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은 에스토니아를 통해 기술 실현과 테스트 베드 확보를, 에스토니아는 한국을 통해 산업적 확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일 ALC '미·중 빠진 탈탄소, 파리협정의 의미를 묻다' 세션에 참가한 이미선 기상청장은 “우리 기술로 대기, 해양, 지표면, 해빙에 걸친 물리적 변화 과정을 통합해 재난 관리, 농업,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박상현 기자
이미선 기상청장은 실제 직면한 기후 위기의 위협과 대응책에 대해 설명했다. 이 청장은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 위협이 됐기 때문에, 세계기상기구(WMO)에선 재해 경감과 조기 경보를 위한 기후 모니터링, 기술 협력에 주력하고 있다”며 “특히 지구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심각한 기상 현상에 대비해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이 청장은 “WMO에선 ‘통합 관측 시스템’을 통해 관측 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한 국제적 틀을 강화중”이라며 “날씨와 기후는 국경을 넘어 확장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관측 공백은 전 세계적인 예측 정확도를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후 문제에 대한 과학적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온실가스 감시 체계’(G3W)로 불리는 프레임 워크를 강화하고 있다”며 “이 체계를 통해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배출량이 산출될 수 있다”고 했다.
기상 분야에서 한국의 강점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국가 기후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 기술로 대기, 해양, 지표면, 해빙에 걸친 물리적 변화 과정을 통합해 10년 단위 기후 예측 정보 뿐만 아니라 재난 관리, 농업,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술 역량 강화를 통해 단기적으론 국가 정책 수립, 장기적으론 세부적인 국가 표준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만들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20일 ALC '미·중 빠진 탈탄소, 파리협정의 의미를 묻다' 세션에서 좌장을 맡은 박형건 캡처6 부사장. 그는 "탈탄소가 병목 현상을 겪고 있지만, 녹색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각자의 역할을 다한다면 파리협정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상현 기자
이날 좌장을 맡은 박형건 캡처6 부사장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이 적극적 탄소 저감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탄소 최다 배출국들이 저감 의지 대신 배출을 더 늘리겠다고 선포하면서 파리협정 이행이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며 “하지만 녹색 전환이라는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점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면 파리협정의 목표에 결국 다다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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