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 속에 시작된 대(對)이란 전쟁은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흐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5월 14·15일 중국 방문은 종전(終戰) 기대를 높이지만, 반복된 수사적(修辭的) 발언 등을 고려할 때 신뢰도는 미지수다. 이미 전쟁의 파장은 에너지 시장과 물가 및 산업 경쟁력 전반으로 확산돼 지역 분쟁을 넘어 실물경제를 압박하는 구조적 위기로 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이익을 보는 쪽은 미국이 견제해온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중국은 이란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에너지 안보 여유를 확보하고 거래 질서 다극화를 모색한다. 러시아는 제재 완화 가능성을 지렛대로 협상력을 강화하고, 북한은 이란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와 함께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600㎜ 방사포 등 전략무기 발사로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인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무력 충돌을 넘어 국제질서의 구조적 균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의 부담은 커지는 반면, 경쟁국들의 전략적 공간은 확대된다. 이란 사태는 뚜렷한 승자 없이 소강 국면이 될 가능성이 크며, 핵심 쟁점은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이후 형성될 질서다.
걸프 지역의 전후 복구와 미국의 군사력 소진은 결국 동맹국에 대한 ‘전략적 비용 청구’로 이어질 것이다. 이란 사태 종식 후 트럼프의 청구서 수위로 동맹국들의 안보 기여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원유 수혜국들의 군사적 기여 확보가 좌절된 상황에서,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온 만큼 더 직접적인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첫째, 선택적 관세 인상이다. 안보 기여도를 기준으로 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수출품에 대한 압박이 가중될 수 있다. 둘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 요구로, 확장억제 및 전략자산 운용 비용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부담 전가가 예상된다. 셋째, 핵추진잠수함(SSN) 건조 협상의 지연 또는 재조정이다. 이는 기술 이전과 군사력 증강을 협상 자산으로 활용하는 전형적 방식이다. 넷째,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서 미국의 미온적 자세 등으로 핵연료 활용과 기술 자율성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 같은 청구서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의 비용 분담 논리 결합의 구조적 산물이다. 한국이 유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은 점차 한계에 직면하고 있으며, 향후 더욱 직접적·구체적인 비용 요구로 현실화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단순한 비용 증가에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동맹의 성격이 ‘가치 기반’에서 ‘거래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동맹을 규정하는 규범과 운영 방식이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은, 국가안보 이익과 전략적 자율성을 기준으로 ‘어떤 역할을 수용하고 어떤 부담을 제한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책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적 과제다.
따라서 한국은 일방적 수용이 아닌 상호성에 기반한 동맹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즉,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을 수 있는’ 대칭적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 위협을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와 같은 협상 중심 지도부에 대해 무제한 양보성 접근은 국가 이익 훼손 가능성이 커지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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