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다임의 쿼드레벨셀(QLC) 낸드플래시 기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D5-P5336’. 사진=솔리다임
[주간한국 이주선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낸드 플래시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현지 증시 입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이 돌면서 반도체업계와 주식 시장에 파장이 일고 있다. SK하이닉스 주주들은 솔리다임의 상장으로 기업 가치가 분산되는 것은 물론 성과를 외부 주주와 나눠야 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는 반면, 솔리다임이 별도 상장을 통해 기업 가치를 다시 인정받아 SK하이닉스가 투자 등의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실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거세게 충돌한 것이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도 가세해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국 부담을 느낀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을 전면 보류했다. 다만 인공지능(AI) 광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솔리다임 몸값을 한창 올릴 적기인 만큼 상장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상반된 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잠재우면서 솔리다임의 성장 동력까지 확보하는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최근 기업공개(IPO) 주관사를 선정하고 현지 대관 조직을 강화하는 등 미국 증시 상장 준비로 추정되는 움직임을 보였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을 IPO 대표 주관사로 선정한 데 이어 대관 담당 부사장직을 신설해 안드레스 카스트리욘 전 퀄컴 시니어 디렉터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브라이언 발라드가 이끄는 로비 업체 발라드파트너스와 계약했다.
솔리다임은 2021년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90억 달러(약 12조 2000억원)에 인수하며 출범했다. AI 데이터센터 서버에 들어가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후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SK그룹 계열사가 출자를 약정해 미국에 설립한 AI 솔루션 투자 자회사 ‘AI 컴퍼니’로 편입됐다.
시장은 솔리다임의 기업 가치가 상장 후 최대 1500억 달러(약 200조 6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SK하이닉스 주주 “내 몫 왜 나누나”…정치권·금융당국도 촉각
SK하이닉스 주주들은 대체로 솔리다임 상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솔리다임이 미국 증시에 상장할 경우 새로운 투자자가 유입돼 기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돌아올 이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솔리다임 상장설이 처음 보도된 지난 8월 6일 SK하이닉스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0%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더욱이 중복 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희석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AI 특수로 몸값이 뛴 솔리다임이 상장하면 SK하이닉스의 기업 가치를 갉아먹는 ‘더블 카운팅’(중복 상장 할인)이 발생할 수 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전체 기업 가치 가운데 솔리다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달한다.
현재 SK그룹 반도체 사업 부문 지배구조는 ‘SK㈜→SK스퀘어→SK하이닉스→AI컴퍼니→솔리다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SK㈜, SK스퀘어, SK하이닉스는 국내에 상장돼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미국 증시에도 상장돼 거래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솔리다임까지 상장할 경우 SK그룹은 하나의 사업을 두고 여러 계열사가 얽히고설킨 ‘5중 상장’이 된다. 이로 인해 주주가치가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SK하이닉스의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일제히 솔리다임 미국 증시 상장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공적 수단을 동원해 솔리다임 상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해외 중복 상장에도 모회사 주주 보호 원칙은 적용돼야 한다”며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상장의 필요성과 모회사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역시 솔리다임 상장이 중복 상장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기존 주주에게 미칠 영향 등을 검토하고 가능한 조치에 나서겠다고 했다.
다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 상장을 제한할 권한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솔리다임이 한국 증시에 상장하면 한국거래소(KRX)가 이를 심사해 상장을 불허할 수 있지만,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만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주주 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우리 금융당국이 제재를 가할 수 있다.
◇ 상장으로 투자 실탄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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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솔리다임 ‘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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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다임 상장이 반드시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외부에 내주는 지분보다 새로 유입되는 자금이 만들어낼 가치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금융 분석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지난 15일 솔리다임 상장 관련 보고서를 통해 IPO 조달 자금으로 생산 능력과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솔리다임의 이익이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지분율 하락에 따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SK하이닉스 역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등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솔리다임이 상장을 통해 스스로 외부 자본을 조달하면 HBM 등 핵심 사업에 활용할 재무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솔리다임의 기업 가치를 다시 평가받은 이후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 막대한 투자자금을 조달할 기회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솔리다임 역시 생산 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현재 솔리다임은 중국 다롄 공장을 유일한 생산 거점으로 두고 있다. 현재 글로벌 AI 광풍으로 낸드플래시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생산 능력 확대는 필수적이지만, 2022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로 핵심 생산기지인 다롄 공장에 새로운 첨단 장비를 들이는 등의 업그레이드 작업에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정치권과 정부, 기존 주주들의 반발로 솔리다임 상장 추진을 잠정 중단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3일 당사의 해외 종속회사인 솔리다임은 생산 능력 확대·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지만, 자본 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IPO 검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솔리다임의 나스닥 입성은 잠시 미뤄지게 됐지만 향후 상장 재추진 여부는 SK하이닉스가 기대 효과를 기존 주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솔리다임 IPO를 통한 성장 효과가 기존 SK하이닉스 주주의 지분 가치 희석 우려를 얼마나 상쇄할 수 있는지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외부 자금 유치로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가 오롯이 기존 주주에게도 돌아간다는 확신을 주면서 상장의 명분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선 기자 lee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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