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도전 DNA, 다음 30년 먹거리로
1984년 3월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 출범 사진. 왼쪽부터 초대 유영린 사장, 한국통신 이우재 사장./SKT
창립 73주년을 맞은 SK그룹이 창업·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되새기며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나선 가운데, SK텔레콤의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 30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로 한국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성장의 토대를 닦은 SK텔레콤이 이제는 ‘통신 고속도로’를 넘어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잇는 ‘AI 고속도로’ 구축을 다음 과제로 제시하고 나섰다.
SK텔레콤은 9일 CDMA 상용화 30년의 의미를 조명하며 향후 30년 국가 경쟁력을 위한 AI 인프라 구축 비전을 내놨다. SK그룹이 전날 서울 종로구 선혜원에서 고(故) 최종건 창업회장과 고 최종현 선대회장을 기리는 비공개 ‘메모리얼 데이’를 열고 경영의 기본 원칙을 되짚은 데 이어서다.
SK 안팎에서는 창업기의 도전 정신과 통신 산업에서의 선도 경험이 현재의 AI 전환 구상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CDMA 상용화는 한국 이동통신 산업의 구조를 바꾼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1996년 1월 3일 오전 9시 1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남인천영업소에서 개통한 세계 1호 CDMA 고객은 첫 통화 뒤 “일반 유선전화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감도가 깨끗하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CDMA는 상용화 사례가 없는 미지의 기술이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TDMA(시분할다중접속) 방식이 사실상 2세대 이동통신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한국은 검증된 길 대신 더 높은 수용 용량과 기술 자립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CDMA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는 정부와 연구기관, 기업이 함께한 민관 협력이 있었다. 정부는 CDMA 단일 표준을 선언했고,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이동통신 등이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특히 한국이동통신은 네트워크 구축과 상용화를 맡아 기술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했다.
1994년 공개 입찰을 통해 선경(현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현재의 SK텔레콤이 출범한 것도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통신 산업 내 경쟁 체제 도입과 민영화가 CDMA 상용화를 앞당기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후 삼성전자가 CDMA폰 ‘SCH-100’을 출시하고, 한국이동통신이 1996년 4월 12일 서울과 수도권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한국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이동통신을 상용화한 국가가 됐다. 9개월 만에 전국망이 구축되면서 이동통신은 빠르게 전 국민 인프라로 확산했다. 이동통신 가입자는 1998년 1천만명을 넘어섰고, 1999년에는 유선전화 가입자를 추월했다.
전국 단위 통신망 확산은 단순히 통화 품질 개선에 그치지 않았다. 휴대전화와 스마트폰, 반도체, 핵심 부품, 모바일 서비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떠받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실제 정보통신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내 부가가치 비중은 1996년 2.2%에서 2025년 13.1%로 확대됐다.
규모로는 17조8천억원에서 304조원으로 늘었다. 반도체와 단말기 등을 포함한 IT 산업 수출도 같은 기간 412억달러에서 2천643억달러로 6.4배 증가했다. 전체 수출에서 30% 이상을 꾸준히 차지하며 한국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CDMA 상용화의 산업 파급효과도 적지 않았다. ETRI가 2002년 발간한 ‘CDMA 기술개발 및 산업 성공요인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CDMA 이동통신 산업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연평균 37.2% 성장해 누적 생산액 42조원을 기록했다.
생산유발 효과는 125조원, 고용유발 효과는 142만명에 달했다. 부품 국산화율도 70% 수준까지 높아지며 국내 통신 산업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성과는 2024년 IEEE(국제전기전자공학협회) ‘IEEE 마일스톤’ 등재로도 이어졌다.
이동통신은 이후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키웠다. 3G(3세대) 시대에는 무선인터넷과 음악 스트리밍, 동영상 서비스가 본격화하며 모바일 콘텐츠 산업이 성장했다.
4G LTE(롱텀에볼루션) 시대에는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모바일 메신저, 배달 애플리케이션, 간편결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빠르게 확산하며 플랫폼 경제가 커졌다. 2019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G는 스마트팩토리, 원격 장비 제어, 무인 물류 등 산업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뒷받침하는 인프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이런 흐름 위에서 이제 AI 인프라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회사는 30년 전 CDMA를 통해 전국을 연결하는 통신 고속도로를 구축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와 AI를 실어 나르는 AI 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초고속·초저지연 네트워크에 데이터센터, AI 모델, 서비스 역량이 결합된 인프라가 제조·물류·의료·금융 등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혁신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SK텔레콤이 2022년 AI 서비스 ‘에이닷(A.)’을 선보이고 AI 데이터센터(AI DC), 모델, 서비스 등 전방위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것도 같은 흐름으로 읽힌다.
다만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AI 인프라는 통신망보다 훨씬 많은 전력과 투자비를 필요로 한다. 데이터센터 확충 과정에서 전력 수급과 냉각 효율, 입지 확보 문제가 함께 풀려야 한다. 인프라만 구축한다고 경쟁력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글로벌 빅테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한국형 AI 모델과 서비스 생태계를 키우지 못하면, 국내 기업이 인프라 투자만 떠안고 실질적 수익은 해외 사업자가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 통신에서 AI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수익모델을 어떻게 구체화할지도 숙제다.
규제와 제도 정비도 과제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제도적 불확실성이 이어질 경우 인프라 구축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과거 CDMA 상용화 때처럼 민관 협력과 정책적 지원이 다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I 인프라 경쟁이 단순한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 문제로 연결되는 만큼, 기술 개발과 투자, 제도 정비가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SKT의 CDMA가 한국을 ICT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끌어올린 계기였다면, AI 고속도로는 그 성과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다음 과제가 될 전망이다.
1995년 6월 12일 ’정보통신 전시관 행사’에서 경상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CDMA 시험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SKT
1996년 4월 1일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개시식에서 시험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SKT.
1996년 10월부터 지하철 2호선 4개 역사와 지하상가 등 전파 음영지역에 순차적으로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고객이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SKT
1997년 3월 24일, SK텔레콤으로의 사명 변경 및 신 CI 선포식을 진행하는 모습./SKT
/S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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