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발길이 뚝 끊긴 용산의 한 전자상가. 보이는 이라곤 상점 관계자와 택배 직원뿐이다. 사진/송영규 기자
"DDR4 32기가 짜리가 지난해 추석 때와 비교하면 5~6배, SSD 가격도 이전에 비해 4배 이상 뛰었어요. 올라도 너무 올랐죠."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한 조립PC 상점을 찾아갔더니 사장은 부품 값이 오른 얘기만 20분 넘에 설명했다. D램 가격이 급등하면서 조립 PC 가격이 너무 크게 오르자 구매자에게 미리 일종의 충격 완화제를 주사한 것이다. "사실 우리도 가격을 말하기가 겁나는데 듣는 소비자들은 어떻겠습니까. 가격을 듣는 순간 바로 도망가지 않으면 다행이죠.."
그가 제시한 견적표를 보면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7만원 수준이었던 32기가 메모리(마이크론 DDR4-3200)는 39만4,200언, 10만원이 채 안됐던 1테라 바이트(1TB)짜리 SSD(SK하이닉스 플레티넘 P41)는 41만630원까지 뛰었다. 이것만 해도 70만원 이상 오른 셈이다. 각 부품의 가격 총합은 188만2240원. 여기에 공임 5만원까지 더해야 한다. 이전에 100만원이면 샀던 조립PC 한 대를 이제는 200만원 가까이 꺼내야 겨우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또다른 전자상가도 상황은 마찬가지. 예전에는 100만원 정도면 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PC들은 구경할 수 조차 없었다. 그 정도 가격이면 단순 문서 작성용 PC정도만 가능하다는 게 상점 사장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 사장은 "고급이 아닌 일반적인 사양의 조립 PC인데도 이제는 200만원 정도는 줘야 살 수 있어요. 고급 사양은 200만원대 중반 이상은 줘야 합니다."
조립PC의 가파른 가격 상승은 상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전자상가에는 구매자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실제로 두 전자상가를 1시간 정도씩 돌아다녔지만 컴퓨터를 사기 위해 온 소비자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단지 택배 직원이나 직원들만 상가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상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코로나19 시기 팔렸던 PC들의 업그레이드 수요가 있어야 마땅한 시기"라며 "하지만 지금은 하루 한대만 팔아도 감지덕지한 형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노트북 시장도 안좋기는 매한가지였다. 상가에 진열돼 있는 노트북은 중국산이거나 낮은 사양의 제품이 대부분으로 가격도 50만원대 미만이었다. 최신 제품이나 고사양의 노트북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한대라도 팔기 위해서는 구매자들의 발길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싼 제품이 필요했다. 전자상가에서 도드라지게 싼 노트북들이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상가 관계자는 "400만원, 500만원 하는 최신 노트북을 갖다 놓으면 어떤 구매자가 사려고 하겠는가"라며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려면 사양이 떨어지더라도, 구형 제품이라도 싼 제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항이 단기간내 해소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D램 부족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AI 수요의 확산으로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들이 기존에 계획하고 있었던 투자 규모를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AI 반도체는 수익성이 높다. 메모리 기업들이 HBM에 주력하는 이유다. 생산라인이 HBM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범용 D램 생산량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공급량 감소는 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나타났다. DDR5와 같은 범용 D램의 마진이 HBM3E를 넘어서는 의외의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자상가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가격 구조가 적어도 3~4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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