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현장
숫자에도 정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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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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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면 내년의 운명이 정해진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이야기다. 매해 7월마다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다음해 수급비를 결정짓는 기준중위소득을 발표한다. 기준중위소득은 생계·의료급여를 정하는 기준이 되고, 나아가 각종 복지제도의 바탕이 되는 숫자다.
이 숫자는 어떻게 정해질까. 안타깝게도 어떤 근거로 기준중위소득이 결정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중생보위는 방청은커녕 회의록조차 공개하지 않는 폐쇄적인 운영을 고집해왔다. 노사위원이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최저임금위원회와 달리 중생보위는 비민주적인 운영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아 왔다. 수급권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결과만 통보받을 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부는 다른 숫자에는 훨씬 친절하다. 코스피가 몇 포인트 올랐는지, 자본시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매일같이 이야기하니 말이다. 경제 뉴스는 실시간으로 시장의 움직임을 중계한다.
그렇게 투자 이야기가 모두의 일상을 채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증거에 가깝다. 노후와 주거, 돌봄의 책임이 개인에게 떠넘겨진 사회일수록 그렇다. 시장의 숫자가 오른다고 모두의 삶이 나아지진 않는다.
실제로 주식 자산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주가가 오를수록 큰 이익을 얻는 사람들 역시 이미 상당한 금융자산을 보유해온 이들이다. 반면 월세와 공과금을 걱정하는 사람들, 생계급여와 장애인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 일자리를 잃으면 곧바로 생존이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주식시장의 상승은 좀처럼 체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고 사회보장을 강화하기보다 주식시장 활성화를 앞세운다. 정부가 시민을 권리의 주체보다 투자자의 모습으로 불러내는 만큼, 가난은 함께 해결할 사회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된다.
이러한 우선순위는 중생보위에서도 엿보인다. 기준중위소득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결정하는 숫자이지만 실제 사회적 필요보다 ‘재정건전성’과 ‘예산 방어’가 우선된다. 수급권자의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기준으로 사회보장을 설계하기보다 정해진 예산안에서 가난을 관리하는 것이다. 투자자를 위한 정책은 넘쳐나지만 수급권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회의장 밖에 서 있다. 숫자의 정치는 결국 지금의 국가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보여준다.
기준중위소득은 단순한 통계값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 숫자 앞에서 자녀에게 먹일 수박을 살까 말까 고민한다. 누군가는 인슐린 주사기를 포기하고, 누군가는 고기 대신 번데기 통조림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기준중위소득은 그렇게 누군가의 식탁과 건강, 하루하루의 삶으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투자 기회가 아니다. 누구도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공공성과 사회보장이다. 불평등에 각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허약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응의 기술이 아니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상상력과 연대일지도 모른다.
생존의 숫자를 둘러싼 논의가 소수의 회의실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의 불안과 가난한 삶을 공공연히 말하자. 그러니 먼저, 중생보위의 닫힌 문을 열자.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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