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업체 넷플릭스가 한국 과세당국과 5년에 걸쳐 벌여온 법인세 다툼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나진이)는 28일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넷플릭스코리아)가 종로세무서장 등을 상대로 낸 법인세 등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부과된 762억원 가운데 687억원이 취소됐다.
소송은 2021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출발했다. 당시 약 800억원 규모의 세금이 부과됐고 조세심판원을 거치며 일부 줄었다. 넷플릭스는 2023년 11월 762억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쟁점은 "넷플릭스 한국 법인이 네덜란드 법인에 지급해온 거액의 수수료를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과세당국은 이를 '저작권 사용료'로 판단했다. 그리고 저작권 사용료로 본다면 사용료 소득에 해당해 한국에서 원천징수가 가능해진다. 반면 넷플릭스는 사업소득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과 네덜란드 간 조세조약에 따라 사업소득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과세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법원은 넷플릭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가 지급한 돈을 영상 콘텐츠의 저작권 사용 대가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국내 소비자에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콘텐츠의 저장과 전송 등 핵심 기능은 해외 법인이 통제하는 서비스 아키텍처를 통해 수행되고, 한국 법인은 국내에서 서비스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 운영과 광고 등 보조적·부수적 활동에 그친다는 판단이다.
수수료 산정 방식도 결정적 근거가 됐다. 넷플릭스코리아는 국내 구독료 수입에서 비용을 공제해 일정 영업이익을 보장하고 남은 금액을 네덜란드 법인에 지급해왔다. 영업이익률이 정상 비율에 미달할 경우 네덜란드 법인이 이를 보전해주는 구조다. 재판부는 "원고가 독립적으로 저작권을 수행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라기보다 플랫폼 운영, 마케팅, 이용자 관리 등에 대한 일정 수준의 영업 이익을 보장하는 구조"라고 봤다.
이어 "넷플릭스가 원고를 중간매개자로 해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 자체가 국내 조세를 감소시키려는 목적의 조세 회피 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국내 구독자를 통해 얻는 소득 등에 비춰 실현되는 과세소득이 낮아 불합리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처분이 적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캐시서버인 OCA(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에 대한 법인세 부과는 정당하다고 봤다. OCA는 넷플릭스가 국내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사) 망에 설치한 자체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다. 넷플릭스코리아는 이를 ISP에 무상양도했으니 자산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 사용 목적이 넷플릭스 서비스의 원활한 제공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현실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산"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 스트리밍 업체가 해외 계열사에 지급한 금원의 성격을 놓고 한국 법원이 내놓은 첫 본격 판단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조세 회피 논란이 국내외에서 거세지는 흐름과도 정면으로 맞물려 있어 민감한 부분이 많다.
살펴보자. 법원 판단의 핵심은 한국 법인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있다. 이 지점에서 콘텐츠 스트리밍의 서버 운영, 저작권 통제, 핵심 의사결정이 모두 해외 법인에 집중된 구조라면 한국 법인이 받는 수수료는 한국 영토에서 발생한 사업소득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글로벌 IT·OTT 기업이 채택해온 다국적 법인 분리 구조가 한국에서 법적 정당성을 얻은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국내 소비자가 지불한 구독료의 상당 부분이 한국 과세 그물망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재판부조차 "국내 구독자를 통해 얻는 소득 등에 비춰 실현되는 과세소득이 낮아 불합리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인정했지만 현행 조세조약 체계 안에서는 처분의 위법성을 막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입법의 공백을 사법부가 메울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국내 OTT 사업자들이 콘텐츠 투자세액공제 등 국내 세제 안에서 활동하는 것과 달리 글로벌 OTT는 조세조약 우산 아래서 세 부담 차이를 누리고 있다. 이번 판결로 그 격차가 다시 한번 또렷해진 셈이다.
한편 이번 판결은 OECD가 추진해온 글로벌 최저한세와 디지털세 합의에 대한 국내 도입 압력을 한층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당장 지금까지 구글·메타·아마존 등 다른 글로벌 빅테크들도 한국 매출 대비 법인세 부담이 적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그러나 넷플릭스 판결 이후 과세당국이 같은 방식의 원천징수 처분을 내릴 동력은 약해졌다.
당연히 빅테크들에게는 따사로운 햇살이다. 넷플릭스가 5년에 걸친 소송에서 핵심 쟁점을 지켜낸 만큼 다른 글로벌 사업자들도 비슷한 판례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OCA 부분 패소가 시사하듯 국내에 설치된 물리적 인프라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세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확인됐으나 물리적 요소가 거의 없는 이들 입장에서 크게 잃을 것은 없어 보인다.
국세청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최종 결론까지는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넷플릭스코리아 측은 선고 직후 "넷플릭스는 한국의 조세법 및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한국 콘텐츠와 관련 생태계에 장기 투자를 이어가며 당국에 협조하고 있다"며 "오늘 결정과 무관하게 넷플릭스는 앞으로도 한국 및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기여를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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