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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IB탈탈털기] IBK, 벤처시장에 3.5조 투입…단비인가 정책자금 의존인가

중소기업 금융에 강점을 가진 기업은행이 스타트업 성장 단계별 금융지원 체계를 만들 수 있다면 정책적 의미도 있다. 다만 내부 플랫폼화는 늘 이해상충 질문을 동반한다. 자회사 운용 펀드 출자한도가 크게 늘어난...

[IB탈탈털기] IBK, 벤처시장에 3.5조 투입…단비인가 정책자금 의존인가

IBK기업은행이 모험자본 공급 목표를 3조5000억원으로 높이며 벤처투자 시장의 핵심 출자자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올해 간접투자에만 약 9000억원을 배정하고, IBK혁신펀드 출자사업도 기존보다 확대하는 방향이 거론된다. 펀드 결성난에 놓인 VC업계에는 분명 단비다. 그러나 돈이 풀린다고 시장이 곧바로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 회수시장이 막힌 상황에서 정책금융의 비중만 커질 경우, 벤처 생태계는 민간자본 회복보다 공공 출자 의존 구조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돈은 풀리는데, 회수시장은 여전히 막혀 있다

IBK기업은행은 앞으로 3년간 모험자본에 3조5000억원을 투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직전 3년 목표였던 2조5000억원보다 약 1조원 늘어난 규모다. 올해만 놓고 보면 약 9000억원이 VC 펀드 출자 등 간접투자에 활용되고, 별도 1000억원가량은 직접투자에 배정될 예정이다. 전체 구조는 간접투자 90%, 직접투자 10%에 가깝다.

VC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직접투자보다 출자사업이다. 은행이 개별 기업을 직접 고르는 방식보다, VC 펀드에 자금을 넣고 운용사가 기업을 선별하는 방식이 훨씬 큰 파급력을 갖기 때문이다. 한 곳의 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여러 운용사를 통해 수십, 수백 개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갈 수 있다. 특히 민간 LP가 보수적으로 돌아선 시기에는 앵커 LP의 존재가 펀드 결성의 출발점이 된다.

문제는 돈이 없어서만 시장이 얼어붙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벤처투자 시장의 병목은 신규 출자 부족과 함께 회수 부진에 있다. IPO 시장이 완전히 살아났다고 보기 어렵고, M&A를 통한 엑시트도 일부 대형 거래를 제외하면 제한적이다. 기존 펀드의 회수가 늦어지면 LP들은 신규 출자에 더 신중해진다. 이 구조가 풀리지 않으면 정책금융은 계속 빈자리를 메우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유동성 공급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민간자본의 판단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3조5000억원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면 마중물이 된다. 반대로 정책 목표에 맞춘 이름표만 붙은 펀드가 늘어나면, 돈은 풀렸지만 성과는 희미한 구조가 반복된다.

IBK

혁신펀드 확대, 운용사에는 기회지만 선별 부담도 커졌다

IBK기업은행은 한국성장금융과 함께 IBK혁신펀드를 운용하며 VC 출자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2024년과 2025년 각각 2000억원 규모의 출자사업을 진행했고, 총 14곳의 GP를 선정했다. 2024년에는 IBK혁신성장펀드 재원 1500억원과 기업은행 본계정 500억원이 더해졌다. 이와 별도로 685억원을 혁신성장 매칭 재원으로 투입했다. 2025년에도 IBK혁신펀드 규모는 2000억원으로 같았지만, 기업은행 본계정 부담은 1500억원으로 커졌다. 혁신성장 매칭사업에는 900억원, 별도 매칭 출자사업에는 285억원이 배정됐다.

이 흐름은 단순한 출자 확대가 아니다. 기업은행이 보조적 LP에서 앵커 LP로 이동했다는 신호다. VC 입장에서는 IBK 출자 여부가 후속 LP 모집의 설득 근거가 된다. 특히 펀드 결성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형 운용사에는 사실상 생존 변수에 가깝다. 출자액이 늘어난다고 모든 운용사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선정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2025년 IBK혁신펀드는 AI와 첨단산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총 2000억원을 출자해 5600억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하는 구조다. AI 분야에는 1200억원을 3개 운용사에, 첨단산업 분야에는 800억원을 4개 운용사에 출자하는 방식이다. 특히 첨단산업 분야는 운용 중인 자산규모(AUM) 8000억원 이하 운용사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고, 기업은행 출자 비율을 최대 50%까지 허용했다. 대형 운용사로의 자금 쏠림을 줄이고 강소 운용사를 키우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취지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선별은 더 어려워졌다. AI와 첨단산업은 정책적 명분이 강한 만큼 자금이 몰리기 쉬운 분야다. 기술 이름이 같다고 투자 매력도가 같은 것은 아니다. 매출이 없는 기술기업, 후속 투자 의존도가 높은 초기 기업, 산업 적용성이 검증된 성장기업은 같은 AI라는 이름 아래 묶이지만 위험 수준은 전혀 다르다. 운용사의 과거 수익률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딜 소싱 능력, 후속 투자 유치 경험, 회수 전략까지 봐야 한다. 출자사업이 커질수록 선정의 실패 비용도 커진다.

앵커 LP의 단비, 민간자본을 부를까 밀어낼까

IBK혁신펀드 확대는 VC 시장에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펀드 결성이 지연되던 운용사는 출자 확약을 바탕으로 민간 LP와 협상할 수 있다. 정책금융이 먼저 위험을 떠안으면 민간자본도 따라 들어올 여지가 생긴다. 이것이 정책성 앵커 LP의 본래 역할이다.

정리 뉴스워커 인사이트

그러나 이 구조가 반복되면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민간자본을 유인하는 것인가, 아니면 민간자본이 빠진 자리를 정책자금이 계속 메우는 것인가.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전자는 시장 회복의 촉매이고, 후자는 의존 구조의 고착이다.

특히 IBK기업은행은 국민성장펀드 등 다른 정책기관 출자를 받은 운용사와의 중복 매칭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치는 정책자금의 중복 투입을 막는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동시에 다른 정책 출자사업에서 선택받지 못한 운용사들이 IBK혁신펀드로 몰리는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출자사업이 많아질수록 운용사들은 투자 성과보다 어떤 정책자금 트랙에 맞출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는 시장 규율을 흐릴 수 있다.

벤처 생태계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자금 공급이 아니다. 좋은 기업을 고르고, 적정 가격에 투자하고, 성장 단계별로 후속 자금을 연결하고, 마지막에는 회수까지 완성하는 구조다. 정책금융은 그중 일부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단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민간 LP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정책 출자는 계속 더 커져야 한다. 그때부터는 지원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계열사 펀드 출자한도 1조1450억원, 내부 플랫폼화의 명암

기업은행의 모험자본 확대는 외부 VC 출자사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행은 자회사 운용 펀드에 대한 출자한도를 1조1450억원으로 설정했다. 지난해 6000억원과 비교하면 약 두 배 수준이다. IBK벤처투자, IBK자산운용 등 계열사를 통한 자금 공급 여지가 커진 셈이다.

특히 IBK자산운용의 역할 확대가 눈에 띈다. 장민영 신임 행장은 기업은행장 취임 전 IBK자산운용 대표를 맡았다. IBK자산운용은 과거 산업은행 혁신성장펀드 재정모펀드 공모에 지원하는 등 벤처 모펀드 운용에 관심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IBK금융그룹의 국민성장펀드 추진단에서도 주요 역할을 맡았다. 김병훈 IBK자산운용 대체투자본부장이 추진단장을 맡았고, IBK자산운용은 그룹사 지원을 총괄하는 분과의 간사 역할도 수행한다.

그룹 차원의 모험자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은행, 벤처투자, 자산운용이 따로 움직이는 것보다 자금 공급과 펀드 운용, 후속 금융지원을 연결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중소기업 금융에 강점을 가진 기업은행이 스타트업 성장 단계별 금융지원 체계를 만들 수 있다면 정책적 의미도 있다.

다만 내부 플랫폼화는 늘 이해상충 질문을 동반한다. 자회사 운용 펀드 출자한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시장은 자금 배분 기준을 보게 된다. 외부 VC와 계열 운용사 사이에 경쟁 조건이 공정한지, 정책금융 성격의 자금이 특정 그룹 내부로 과도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운용 성과에 대한 평가는 동일한 잣대로 이뤄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계열사 활용이 무조건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설명 가능성이다. 공적 성격이 강한 자금일수록 배분의 투명성이 낮아지는 순간 시장의 신뢰는 흔들린다.

생산적 금융이 남긴 질문, 출자액이 아니라 회수로 답해야 한다

IBK기업은행의 모험자본 확대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와 맞닿아 있다. 은행 자금이 부동산 담보대출과 안정적 이자수익에 머무르지 않고, 혁신기업과 미래산업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타당하다. 특히 중소기업 금융을 정체성으로 삼아온 기업은행이 벤처 생태계에서 더 큰 역할을 맡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생산적 금융은 집행액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2000억원을 출자해 5600억원 이상 펀드를 조성하는 것, 2024년 IBK혁신펀드가 목표치의 2.3배인 1조1638억원 규모로 결성된 것은 의미 있는 숫자다. 그러나 그 숫자는 출발점일 뿐이다. 실제로 어떤 기업에 투자됐는지, 후속 투자는 이어졌는지, 고용과 매출 성장이 발생했는지, 펀드 만기 때 LP에게 얼마나 돌려줬는지가 더 중요하다.

IBK기업은행은 벤처시장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동시에 그 영향력이 커진 만큼 더 많은 질문을 받게 됐다. 출자사업을 두 차례로 늘릴 경우 시장은 환영하겠지만, 환영만으로 평가는 끝나지 않는다. 결국 이 돈은 ‘누가 받느냐’에서 1차 평가가 갈리고, ‘어디에 투자했느냐’에서 2차 평가가 갈리며, ‘얼마나 회수했느냐’에서 최종 평가가 내려진다.

정책금융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위험 판단을 흐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IBK의 3조5000억원은 벤처 생태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금이 민간자본을 다시 불러오지 못한다면, 생산적 금융은 시장 회복의 증거가 아니라 정책자금 의존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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