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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B트렌드] 배터리 성장 축, 친환경에서 '안보'로… "데이터센터·전력난...

김 연구위원은 "미국 정부와 민간 자본이 반도체, 희토류, 리튬, 양자컴퓨팅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는 흐름도 결국 데이터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저장과 관리, 연산과...

[B트렌드] 배터리 성장 축, 친환경에서 '안보'로… "데이터센터·전력난...

[인더스트리뉴스 이건오 기자] 배터리 산업을 떠받쳐 온 핵심 서사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의 성장은 탄소중립과 탈탄소라는 친환경 담론 위에서 설명돼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논리만으로는 산업의 방향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4월 15일부터 이틀간, 서울 양재 엘타워 오르체홀에서 개최된 제9회 ‘NGBS 2026(Next Generation Battery Conference)’에서 ‘배터리 성장 축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하나증권 김현수 연구위원은 배터리의 성장 축이 친환경에서 안보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데이터가 국가 전략자산으로 부상하고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 경쟁이 격화되면서 전력 확보와 저장 능력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ESS는 더 이상 보조 설비가 아니라 안보 인프라의 일부로 재해석되고 있다.

NGBS 2026(Next Generation Battery Conference) 현장 [사진=인더스트리뉴스]

패권 경쟁 시대, 데이터가 새로운 ‘안보 자산’

김 연구위원은 먼저 기존의 친환경 서사가 갖는 한계를 짚었다. 2010년대 중반 파리협정 이후 배터리 산업은 지구온난화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대의 속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물가 상승과 전쟁, 공급망 충격, 패권 경쟁이 겹치며 각국 정책의 우선순위는 달라졌다.

친환경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지만 실존적 문제가 부각되는 국면에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고 실제 미국과 유럽 모두 최근 친환경 정책 강도를 낮추는 흐름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를 단순한 정권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 재편에 따른 구조적 변화로 해석했다.

그가 제시한 변화의 출발점은 세계 질서다.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약해지고 미·중·러가 각자의 국익을 앞세우는 다극 체제로 이동하면서 산업을 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는 기술 우위만이 아니라 전략물자 통제력과 공급망 장악력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과거 석유와 철강이 그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데이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 정부와 민간 자본이 반도체, 희토류, 리튬, 양자컴퓨팅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는 흐름도 결국 데이터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저장과 관리, 연산과 추론 능력이 패권의 기반이 되면서 배터리 역시 그 인프라를 떠받치는 전략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 논리는 데이터센터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AI 확산과 함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전력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발표에 따르면, 미국 전체 전력 소비에서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1.9%에서 2028년 최대 12%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유럽 역시 감소하던 전력 수요가 데이터센터 확대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신규 전력망 구축과 계통 연결에는 수년이 걸리지만 AI 인프라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설되고 있다. 이 간극을 메우는 현실적 대안으로 태양광과 ESS, 가스발전 조합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특히, 오프그리드 태양광 마이크로그리드와 ESS는 1~1.5년 내 전력 투입이 가능해\ 수년이 걸리는 계통 확장보다 훨씬 빠른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온사이트 발전 확산… 배터리 역할 구조적으로 확대

온사이트 발전과 GPU 부하 증가가 ESS 필요성을 더 키운다. 데이터센터가 자체 발전원을 구축하는 이른바 ‘Bring Your Own Power’ 방식이 확산되면, 발전소는 일정한 전력을 공급하는 반면 데이터센터 수요는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수요·공급 불일치를 조정할 저장장치가 필수다. 특히 AI 서버랙의 전력 밀도가 높아질수록 전력 변동 폭도 커진다.

김 연구위원은 이 때문에 온사이트 발전을 계획한 사업자 가운데 이미 절반이 배터리 기반 ESS에 투자했고, 투자 계획까지 포함하면 83%가 ESS 도입 의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배터리가 친환경 상징을 넘어 전력 안정성과 운영 연속성을 책임지는 장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지정학 리스크 역시 배터리와 ESS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는 기존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은 이동성에는 한계가 있지만 역으로 특정 해상 수송로와 해외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미국 보수 진영과 MAGA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도 태양광에 우호적인 발언이 늘고 있는 배경을 여기에 뒀다. 친환경이어서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와 ESS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태양광과 풍력 발전 확대 속도를 높였고 재생에너지는 지정학 리스크를 줄이는 수단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아닌 ‘에너지 확장’의 시대

이는 화석연료의 퇴장을 뜻하지는 않는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을 ‘에너지 트랜지션(Energy Transition)’이 아니라 ‘에너지 익스펜션(Energy Expansion)’의 시대로 규정했다. 재생에너지와 ESS가 빠르게 성장하겠지만 LNG와 원전, SMR도 함께 확대되는 복합 국면이라는 뜻이다.

결국 핵심은 어떤 전원이든 더 빨리,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배터리는 단순한 친환경 부품이 아니라 데이터와 전력을 지키는 안보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이 장기화할수록 이 흐름은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배터리 업계 역시 전기차 수요 둔화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ESS, 북미 공급망 재편이라는 새로운 축에서 기회를 읽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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