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서울문화투데이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김정인(화가) 인터뷰
-분노에서 시작된 저항, 정답 없는 ‘열린 회화’로 이어지다
-과거의 복기가 아닌 ‘현재의 재발명’, 픽셀로 직조한 기억의 파편들
-탈색된 풍경과 짓눌린 나무, 그 사각지대에서 포착한 우리 시대의 초상
-AI 권력 넘어서는 인간 직관, 권력에 맞서는 또 다른 길을 열 수 있어
-올해 대전시립미술관, 롯데 에비뉴엘 아트 페어, 라흰 갤러리 등 전시 이어져
한국 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정통 회화의 문법을 고수하면서도 끊임없이 실험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화가 김정인. 그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을 재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대상이 해체되고 파편화된 세계를 캔버스 위에 직조해왔다. 그의 화면은 마치 깨진 거울 조각들을 모아놓은 듯 불합리한 파편들이 결합하여 예상치 못한 미적 체험으로 관객을 이끈다. 청년 작가들이 디지털 미디어나 설치 미술로 경도되는 추세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평면이라는 전통 회화의 길을 걸으며 그 안에서 가장 치열한 실험 정신을 꽃피우고 있다.
▲제17회 서울문화투데이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미술 부문)을 수상한 김정인 작가. (사진=작가 제공)
작업실에서 마주한 김정인 작가는 그의 캔버스만큼이나 겹겹의 층위를 지닌 인물이었다. 조곤조곤 건네는 말투에는 차분함이 배어 있었다. 예술적 소신을 말할 때의 눈빛은 마치 정밀한 데생을 하듯 날카롭고 예리했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는 거창한 수식어에 가두기에는 거리를 두었다. 매일의 노동을 견디며 묵묵히 '그리는 화가'로 불리기를 원했다.
화려한 기법보다는 캔버스 위 물감의 질감과 붓질이라는 본질에 매달려온 시간이 그의 작업실 곳곳에서 묻어났다. 낮은 목소리 속에 단단한 주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오랜 시간 정형화된 미적 기준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길을 개척해올 수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정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분노’와 ‘저항’, ‘기억’이다. 작가는 이미지를 단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를 ‘권력의 시작’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풍부한 질문을 던지는 ‘열린 구조’를 지향한다. 이러한 예술적 태도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다. 군대와 학교라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에서 경험한 위계 구조에 대한 분노였다.
이는 이미지의 독점을 거부하고 해석의 권리를 관람객에게 분산시키려는 전략적 회화로 승화되었다. 그는 그림을 통해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그림 앞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각자의 기억을 투사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줄 뿐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파편화된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복기가 아니다. 디지털 픽셀처럼 조각난 기억의 잔상들은 현재의 감각과 충돌하며 캔버스 위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올해 1월 제17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미술부문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한 김정인 작가는 기쁨보다 ‘예술가’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와 책임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제 그 명칭을 시대의 사각지대를 예리하게 살피라는 엄중한 요구로 수용하겠다고 밝힌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휩쓸려 탈색되어가는 잉여 기물들과 짓눌린 나무들에 시선을 던지며, 보이지 않는 권력에 맞서 끊임없이 세상을 ‘꼬집어대는’ 문제적 화가로 남고 싶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그는 아주 소심하고 작은 저항일지라도, 작품을 통해 시대정신과 부조리에 대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너는 작품 팔 생각하지 마라.” 대학 시절, 상업 미술 시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주변의 편견을 무색하게 그는 30대에 이미 ‘완판 작가’라는 유쾌한 반전으로 세상의 우려를 뒤집었다. 현재 갤러리는 물론 공공 및 사립 미술관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비결 또한 그의 탄탄한 내공에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꿰뚫고 있으며, 이를 명료한 언어로 풀어낼 줄 아는 작가다. 끊임없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사유를 정리하고 내재화해 온 훈련이 빚어낸 결과일 터다.
이미지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유의 자유를 회복하려는 김정인의 조용한 회화적 응전은,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개별성과 주체성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묻게 한다. 그의 캔버스는 망각을 거부하는 기억의 전장이자, 타인의 시선에 길들지 않은 자아를 사수하려는 보루와 같다.
지난 7일 수상자 인터뷰를 위해 장충동에 위치한 작가의 화실을 찾았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치열한 예술적 기록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회화적 변주를 깊이 있게 담아보고자 한다. 그가 던지는 질문들이 우리 삶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날카로운 ‘꼬집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제17회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이 상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가.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 ‘화가’라고 불렀는데, ‘예술가’라는 말은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넘어 시대와 사회를 기록하고 더 진취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내가 본 것들을 그려내어 메시지를 던지는 일이기에 동일하게 다가왔고, 단어로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상을 받으면서 더 의미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앞으로는 더 전투적으로 작업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김정인, 되감기 2026-1(Rewind 2026-1),162.2x130.3cm,oiloncanvas,2026
수상 소감에서 예술가라는 명칭을 ‘부담’이 아닌 ‘책임’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작가가 사유하는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가.
처음에는 단순히 그림을 좋아해서 미대를 갔고, 내가 본 것들을 화면에 옮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군대와 학교에서 경험한 위계 구조가 나를 바꾸었다. 군대에서는 상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구조, 학교에서는 수직적인 규율이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를 보면서 ‘내가 문제인가, 세상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성 가슴 통증까지 겪었고, 그 경험이 오히려 생각을 더 키웠다. 결국 분노가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고, 예술가는 단순히 내면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을 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어떤 사안에 이런 것들이 표현되고 있는가.
과거 세대의 저항은 집단 이미지를 통해 연대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저항은 직접적이지 않고 은폐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저항은 숨어서 의견을 말하고 다시 감추는 방식이다. 촛불집회처럼 사람들이 모였다가 금세 흩어지는 움직임이 지금 시대의 저항이라고 본다. 그래서 내 그림도 직관적으로 바로 읽히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되새기게 구성한다. 과거에는 집단 이미지를 그렸지만 지금은 선택받지 못한 이미지들을 다시 불러들여 합쳐놓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한 이미지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이미지를 소거하고 기억 속 장면 및 추상성이 가미된 표현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소외를 시키는 것은 아닐까’라는 말이 재밌고 심오하다,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예민하고 비판적인 시선’이 최근 가장 깊게 머물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지점 혹은 사각지대는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예민하게 보는 시각은 어릴 때 겪었던 스트레스성 통증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때부터 모든 것들을 뾰족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도 사회를 볼 때 그런 예민함이 남아 있다. 지금 동시대의 소외는 개발 이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개발이 진행되면 원주민들이 밀려나고 외부 자본이 들어오며, 버려진 기물과 황무지 같은 풍경은 소외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이 변화가 적은 지역이라서 그런지 직·간접적으로 접한 변화가 더욱 크게 와 닿는다. 결국 소외는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층이나 취약가정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지고, 원주민은 사라지는 이런 경험들이 내가 사회의 소외를 바라보는 방식, 예민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비판적 시선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비판적 시선의 원동력은 결국 분노에서 출발했다. 개발 이슈나 이주 문제 같은 사회적 경험들과 그것과 맞닿아있는 개인적인 작은 경험들이 나를 자극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도 자주 얘기하는데, 우리는 공모를 통해 선택받아야 전시를 할 수 있는 구조 속에 있다. 그러다 보니 시대의 기호와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고민도 생긴다.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또 다른 연료가 되고,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뚫어볼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는다. 분노와 동료들과의 대화, 시대에 대한 의문들이 모여 비판적 시선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김정인, 사라진 나무(Vanished tree),193.9x130.3cm,oiloncanvas,2025
‘이미지의 권력화’를 경계하며 ‘열린 회화’를 지향한다고 했다.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가 관람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작업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장치’나 ‘비움’의 미학은 무엇인가.
나는 ‘열린 회화’라는 말을 후에 붙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지금은 실체를 감춘 권력에게 이해되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과거에는 권력이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스며들 듯 개개인 사이를 부유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해되는 순간 지배가 시작된다”라는 기조를 가지고 작업한다. 나는 이상적인 구도를 만드는 것보다 권력을 교란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관람객은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사유를 이어가게 되며, 권력은 의미 없는 구멍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결국 열린 회화는 관람객의 주체성과 개별성을 지키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파편화된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주되기 마련이다. 작가에게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복기인가, 아니면 현재의 감각을 통해 재발명되는 창조적 재료인가.
기억은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과거로의 복귀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 재창조되는 재료이기도 하다. 작업 과정에서 이미지를 소거하고 기억에 의존해 그리는데, 기억은 뚜렷하지 않고 흐릿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정확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기억은 오류를 낳고, 나는 그 오류를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권력은 잘못된 답을 듣고 이해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틀린 기억일 수 있다. 나는 또 다른 오류를 전달해 권력이 끝내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기억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현재의 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변주되고 재발명되는 창조적 재료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AI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미래는 AI가 하나의 권력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AI의 권력에 대해 늘 생각한다. AI는 실수를 해도 매끈하게 포장해 사람들을 속인다. 미디어 아트 공간에 들어가면 환영이 가득해 감각이 마비되고 단순히 기술의 화려함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날로그 회화를 고수한다. 매끈한 디지털 이미지와 반대되는 방식으로, 인간만이 즉각적 판단으로 작업을 콘트롤 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가 아무리 발전해도 개인의 감각을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다. 사진 발명 이후에도 회화가 새로운 길을 찾았듯, AI가 권력으로 자리 잡는 시대일수록 회화는 반대편에서 또 다른 길을 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불안과 의문 속에서도 강하게 생각하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도 회화적 실천은 여전히 의미를 가질 것이라 본다. 결국 아날로그 회화는 권력에 맞서는 또 다른 길을 열 수 있다고 믿는다.
공간 구성에 따라 작품의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최근 전시에서 관람객의 동선이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시도한 공간적 변주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최근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작품을 정면에서만 보지 않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동선을 일부러 꼬아 측면이나 후면에서 혹은 세우거나 눕힌 작품을 바라보게 했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시각적 경험이 드러났다. 나는 관람객이 작품 속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는 과정을 통해 사유를 이어가길 바랐다.
▲김정인, 되감기2025-3(Rewind2025-3),162.2x130.3cm,oiloncanvas,2025
뒤로 보이는 작품은 마치 신경고리들이 연결돼 더 넓은 바다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작업은 주차장 뚜껑에서 출발했다. 파란색 아크릴 덮개 위에 비가 오고 난 뒤 먼지가 바뀌고 또 다른 흐름이 생기는 모습이 하나의 운율처럼 다가왔다. 그 과정이 매번 달라지는 것을 보며 기억해내는 과정과 닿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미지를 차감하고 창작을 가미해 화면에 담았다. 선과 면, 덩어리들이 모여드는 방식은 결국 기억의 단편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리와인드(Rewind)’로, 기억의 단편들이 다시 모여드는 과정을 담았다.
그동안 해온 작업시리즈들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나의 그림은 실체 감춘 진보한 권력에 응전하기 위한 회화적 전술 고찰에서 출발해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목적까지를 아우른다. 2015~2017년 작업은 <바람 속 두 남자>(2017), <바람에 저항하는 사람들>(2017) 등 제목이 암시하듯 복제된 캐릭터로써 실체 감춘 권력에게 저항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되었고, 2018~2020년 작업은 버려졌음에도 치워지지 않는 잉여 기물과 뒷골목 배회를 하며 마주하는 면면을 관찰하고 내면과 버무려 낸 <불안한 풍경>(2019), <급류가 지나간 자리>(2020)와 같은 재-표현된 붓질에 집중됐다. 이후 2021년부터 2023년에는 단일한 이미지를 하나의 조각 이미지화시켜 화면 위 연대/화합의 장을 만들어내는 <견고한 이미지 관계망>(2022) 시리즈 제작에 집중했고, 그 시점에 이미지를 선택하고 탈락시키는 것에서 모종의 부담을 느끼게 되면서 이미지보다는 기억이라는 키워드와 맞닿아있는 저항으로서 교란 표현을 그려냈다. 이는 이미지적 단편들을 끌어모으는 행위와 덧붙여지는 기억을 픽셀로 연결 지어 본 <픽셀 메모리>(2023) 시리즈와 기존보다 다소 추상성이 가미된 <되감기>(2025-2026) 시리즈로 뻗어가게 됐다. 나는 궁극적으로 그림을 통한 미끄러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어 권력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구멍을, 관람객에게는 넓고 길어지는 사유의 장을 경험케 하고 싶다.
앞으로도 작품에서 어떤 변화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가.
이미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기존에는 구상적인 요소들을 화면에 담아왔지만 최근에는 그것들을 소거하며 추상성에 가까운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단순히 이미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각을 통해 재구성하는 과정을 실험하는 중이다. 앞으로 이 과정을 지속하면서 충분히 소화되었다고 느껴지면 새로운 장면을 파생시킬 것이다. 결국 내 작업은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며 기억과 감각을 기반으로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상업갤러리에서 ‘완판 작가’도 되고, 서울시립미술관과 성곡미술관 등에서 선택받고 전시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학 시절, 교수님과 주변 친구들이 “너는 작품 팔 생각하지 마라.”라고 했다. 내 작품이 상업 미술 시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거였다. 그런데 아트페어에서 완판을 하기도 했다.(웃음) 나는 가끔 '왜 나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젊은 작가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초이스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변별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요인은 면접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판매 가능성보다는 내가 말하는 생각과 작업의 맥락에 초점을 두었고, 그것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심사위원 구성도 영향을 주었는데, 화가나 예술 종사자가 함께 있을 때 내 작업의 흥미로운 지점을 인정해 주었다. 결국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내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 점이 선택의 이유였다고 본다.
▲김정인, 흐릿한 것에서 선명한 것으로(From blur to clarity),130.3x162.2cm,oiloncanvas,2025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세마(sema, 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 개인전이다. 불광동에 있는 그 공간은 원래 시약 창고로 쓰였던 곳으로, 슬레이트 판과 벽돌 구조가 남아 있었다. 화이트 큐브 공간을 사용했지만 창고의 흔적이 함께 드러나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당시 곧 사용이 중단될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라지는 공간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 내 생각과도 연결되었고, 공간의 역사성과 운명이 작업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금도 그 근처를 갈 때면 그곳의 존재가 떠올라 일부러 그 곳을 지나게 된다. 현재는 전시장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서울혁신파크 부지로 운영되는 듯해 보였다.
작가가 되길 참 잘했다고 느낀 보람의 순간은 언제였는가.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람을 느꼈다. 그림을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자신들이 힘들었던 경험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자기 경험과 닿아 있다고 느끼며 경계 없이 이야기를 해줄 때, 나는 작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내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동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하루에 작업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강의가 있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하루 종일 작업한다. 회사원보다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 을 먹고 글을 정리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작업은 보통 새벽 2시까지 이어지고, 바쁠 때는 3~4시까지 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도 바로 잠들지 않고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거나 다시 작업에 매달리며 하루가 이어진다. 현재는 월요일과 수요일만 수업이 있어 그 외에는 주말까지도 작업을 계속한다. 생활은 거의 작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전시에 대해 알려달라.
현재 몇 가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아직 날짜가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전시립미술관 넥스트 코드 청년 공모전으로, 큰 공간이 주어져 구상적 이미지와 추상성이 가미된 이미지를 나누어 구성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롯데 에비뉴엘 아트 페어로, 조선일보 문화사업단기획으로 진행되며 유영국 작가의 그림과 함께 중간 세대 작가들이 그룹으로 참여한다. 세 번째는 용산구 소재 라흰 갤러리에서의 2인전으로, 조각 단조 작업을 하는 친구와 함께 “변화의 물살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준비 중이다. 각자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와 당위를 글로 남기며 흐름과는 조금 비껴 보일 수 있지만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는 취지를 담아낼 계획이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계속 꼬집어대는 문제적 작가’가 되고 싶다. 시대의 문제와 사회의 부조리를 놓치지 않고 작품으로 드러내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단순히 아무거나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를 떠올릴 때 “그때 이런 문제를 꾸준히 지적했던 작가가 있었다”라고 회상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소심하게 숨어서라도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의 불편함을 작품 속에 담아 시대와 대화하는 화가로 남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는 작가가 아니라, 미술사적 관점에서 다시 재조명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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