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의료·로봇·소프트웨어 역량과 경북의 반도체·철강·자동차·에너지 기반을 하나의 AI 네트워크로 연결한 미래 산업도시권 개념도. 생성형AI 생성 이미지.
증기기관은 인간의 근육을 기계로 대체하며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전기는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고, 인터넷은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였다. 인공지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AI는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식과 판단, 창작과 의사결정의 일부까지 기계에 맡기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이 공장을 바꾸고 정보혁명이 소통 방식을 바꾸었다면, AI혁명은 경제와 사회, 국가 운영의 원리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최근 AI는 질문에 답하고 글과 그림을 만드는 생성형 AI를 넘어, 업무를 스스로 계획하고 여러 도구를 활용해 결과까지 만들어 내는 ‘에이전트형 AI’로 발전하고 있다. 머지않아 AI는 인간에게 조언하는 보조수단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회계와 마케팅, 금융 거래와 고객관리, 공장의 생산계획과 물류까지 직접 수행하게 될 것이다. AI는 이제 하나의 기술이나 산업이 아니라 경제의 새로운 운영체제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AI 패권경쟁 중이다
오늘날 AI는 더 이상 기업 몇 곳의 기술 경쟁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AI를 경제력과 군사력, 외교력까지 결정하는 핵심 자산으로 보고 국가의 미래를 걸고 경쟁하고 있다.
미국의 강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 혁신 생태계다. NVIDIA가 첨단 AI 반도체를 공급하고, OpenAI·Google·Microsoft·Meta·Anthropic 등이 거대 AI 모델과 플랫폼을 개발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도 AI를 시장에만 맡기지는 않는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과 연구개발, 사이버안보를 국가전략 차원에서 지원한다.
중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국가가 산업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기업과 지방정부, 대학과 연구기관을 동원해 AI를 제조업과 행정, 교육, 의료, 도시운영에 빠르게 확산시킨다. 중국의 ‘AI 플러스’ 전략은 AI를 별도의 신산업으로 육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산업과 공공서비스 전반을 지능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에 대응해서도 자체 반도체와 연산체계, 개방형 AI 모델을 육성하며 기술자립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시장과 빅테크 중심의 혁신모델이라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산업확산 모델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한쪽도 그대로 따라갈 수 없다. 미국처럼 거대한 내수시장과 세계적 플랫폼을 보유하지 못했고, 중국처럼 국가가 경제 전체를 직접 지휘할 수도 없다. 한국은 민간의 혁신을 살리면서 국가가 인프라와 산업전환, 노동과 분배, 금융안정과 경제안보를 함께 설계하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美-中은 지금 AI 패권 경쟁 중
거대한 인프라 따라잡을 수 없어
한국에 맞는 ‘제3의 길’ 찾아야
◇AI가 경제를 어떻게 바꾸는가
AI는 무엇보다 생산성을 높인다. 제조업에서는 불량률을 예측하고 설비 고장을 사전에 발견하며, 의료에서는 질병 진단과 신약개발을 돕는다. 금융에서는 위험을 분석하고 행정에서는 반복적 민원과 서류업무를 자동화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노동력이 줄어드는 한국에 AI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이 국민 모두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의 핵심 생산요소인 데이터, 첨단 반도체와 연산 능력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많을수록 AI의 성능이 높아지며, 향상된 성능이 다시 이용자를 끌어모은다. 이러한 자기강화 구조는 소수 선두기업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도록 만든다.
노동시장도 크게 바뀐다. AI는 단순노동만이 아니라 회계, 번역, 문서작성, 법률·금융 보조업무 등 중간숙련 사무직까지 변화시킨다. 직업 전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더라도 청년들이 숙련자로 성장하기 위해 맡았던 초급업무와 입문 일자리가 먼저 줄어들 수 있다. 기업의 생산능력은 커지는데 노동소득과 소비능력이 약해진다면 경제는 ‘많이 만들 수 있지만 충분히 팔 수 없는’ 유효수요의 위기에 직면한다.
자본시장에서도 새로운 불균형이 발생한다. AI와 자동화는 생산비를 낮춰 상품가격을 안정시키지만, AI 기업에 집중된 이윤은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소비자물가는 안정되어 있는데 자산가격만 급등하는 이중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금리를 낮추면 실물투자보다 자산시장이 먼저 과열되고, 금리를 올리면 자금이 풍부한 빅테크보다 부채를 진 가계와 중소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 기존의 금리 중심 통화정책만으로 AI 경제를 관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한 번 배운 지식으로 평생 살아가는 시대는 끝나고 있다. 교육은 청년기에 마치는 과정이 아니라 생애 전체에 걸쳐 직업과 역량을 전환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대학 역시 학위 수여기관을 넘어 지역기업의 AI 전환과 재직자·중장년층의 재교육을 담당하는 평생학습 거점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안보의 개념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유와 철강이 전략자산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반도체, 데이터, 알고리즘과 전력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한다. AI 경쟁은 소프트웨어만의 경쟁이 아니라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공급망을 결합한 국가 시스템의 경쟁이다.
대구, 교육·의료·로봇·SW·서비스
경북, 반도체· 철강·이차전지 등
우수 인프라 잇는 광역경제권 필요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전략을 선택해야 하는가
AI를 하나의 유망산업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첫째, 중소기업과 대학도 활용할 수 있는 연산·데이터 인프라를 공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둘째,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바이오 등 한국의 전략산업에 AI를 수직적으로 결합해 생산성 혁명을 실물경제로 확산해야 한다.
셋째, 기존 일자리를 무조건 보존하기보다 노동자가 새로운 직무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재교육과 전환기 소득을 지원해야 한다. 넷째, AI 초과이윤과 데이터의 가치가 사회에 환류되도록 해 중산층과 소비 기반을 지켜야 한다. 다섯째, 자산시장과 금융 불안을 관리하고 자금이 투기보다 생산적 투자로 흐르게 해야 한다. 여섯째, 반도체·데이터·전력·공급망을 경제안보 차원에서 관리해 기술주권과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 AI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이 지역의 중소기업과 대학, 청년의 생산성과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돼야 한다. 수도권 대기업만 사용하는 AI 인프라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될 수 없다.
◇대구경북이 하나의 AI 산업도시권이 되려면
AI 시대의 경쟁 단위는 개별 행정구역이 아니라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과 생산기지, 교통과 에너지망을 함께 갖춘 광역도시권이다. 대구에는 대학·의료·로봇·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역량이 있고, 경북에는 전자·반도체, 철강·신소재, 이차전지, 자동차부품과 미래차, 원전과 에너지 기반이 있다. 이를 하나의 인재·데이터·생산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
대구경북이 참고할 첫 번째 모델은 미국의 피츠버그 도시권이다. 피츠버그는 철강산업의 쇠퇴로 위기를 겪었지만 카네기멜런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기업·정부가 협력해 로봇, 자율주행과 AI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기존 산업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산업도시의 인력과 현장 경험을 새로운 지능산업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두 번째 모델은 중국의 선전-둥관 제조권이다. 선전의 연구개발·창업·설계 능력이 둥관과 주변 지역의 부품·조립·공급망과 결합하면서 전자, 로봇, 드론, 전기차의 거대한 제조생태계를 형성했다. 한 도시의 성공이 아니라 광역경제권 전체가 연구개발과 생산을 분담한 결과다.
대구경북은 피츠버그의 대학 중심 산업전환과 선전-둥관의 연구개발·제조 연계 방식을 함께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대구의 의료·로봇·섬유·서비스와 경북의 전자·철강·자동차·에너지를 연결한 한국형 산업 AI 도시권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과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산·데이터 기반을 마련하고, 각 지역의 강점에 따라 산업 실증과 인재양성의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 대구경북신공항과 광역교통망도 첨단제조와 의료기기, 로봇과 부품의 수출을 지원하는 AI 물류·공급망 인프라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구와 경북이 별개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하나의 미래 산업권이라는 공동 인식을 갖는 일이다.
산업혁명은 영국의 맨체스터를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고, 정보혁명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세계 혁신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AI혁명은 또 다른 국가와 도시권을 새로운 승자로 탄생시키고 있다.
지역大·연구기관·기업·지방정부
공동 연산·데이터기반 구축하고
인재양성·산업실증 역할 나눠야
대한민국의 미래도, 대구·경북의 미래도 이미 결정된 운명이 아니다. AI를 수도권과 소수 대기업의 전유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지역의 공장과 병원, 대학과 시민 모두의 생산성과 기회로 확산시킬 것인가. 대구경북이 행정구역의 벽을 넘어 제조업과 의료, 로봇과 에너지, 대학과 연구기관을 하나의 AI 경제권으로 결합한다면, 이 지역은 산업화의 옛 영광을 회고하는 곳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능산업 시대를 여는 선도 도시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영세 미 펜실바니아대학교 경제학박사·전)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전)산업기술정보원 원장·전)산업연구원 부원장·‘AI경제와 국가전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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