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기자
떠들썩했다. 올해 1월6일 미국 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피지컬 인공지능(AI) 아틀라스를 공개한 뒤 한국 사회 반응이다. 대중은 손쉽게 러다이트운동을 소환했다. 아틀라스 도입에 반대하는 현대차 노동자들이 신기술 발전에 저항하는 무지몽매한 폭도라는 맥락에서다. 러다이트운동 당시 실제로는 숙련공과 지식인이 소외된 시민의 처우개선과 정당한 인권보장을 요구하며 앞장섰다는 역사적 사실은 의도적으로 표백했다. AI로 인해 콜센터 노동자가 일자리를 이미 잃었고 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여 ‘쉬었음 청년’이 더 늘 것이란 예상도 잘 언급되지 않았다.
원체 ‘빅마우스’로 유명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취지로 발화한 것도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 대통령의 발화조차 “노동자의 공포와 절박함에 공감한다”는 전반부는 잘라썼다. 대통령의 입을 빌어 “한 대도 들일 수 없다”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를 때리느라 요란했다. 굳이 러다이트운동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비한다면 1분기 내내 AI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반지성주의에 가까웠다. 손쉬운 전망, 편의적 비판, 혐오 표현은 반지성주의가 아니고 뭔가.
이제 한 두어 달이 지났으니 차분해지자. 물어야 할 것이 산더미다. 현재 AI는 어느 수준인지, 상용화 시점은 언제인지, 기술 도입에 따른 안전 문제는 없는지, 피지컬 AI를 도입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지, 도입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대목은 없는지. 그리고 피지컬 AI는 왜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여야 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도대체 누가 할 수 있는지. 믿기 어렵겠지만 1월6일 이후 석달간 그런 질문은 거의 없었다.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온 휴머노이드가 내 의자를 집어 던질 것 같은 막연한 예언인지 바람인지 모를 말만 가득했다. 도대체 “피지컬 AI 도입은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주장은 전망인가 호들갑인가.
봄날 외투를 하나 사도 따지고 잰다. 이 브랜드에서 저 브랜드로. 이 쇼핑몰에서, 저 쇼핑몰로. 발품 팔고 후기도 찾는다. 하물며 피지컬 AI다.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보다 빠른 연산속도와 단단한 금속 신체로 무장한 피지컬 AI다. 내 적이 될지 동료가 될지 모를 존재다.
부디 입을 닫고 펜을 들자. 말마따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그래서 잘 이용해야만 하는 가까이 다가온 미래다. 안 묻고 안 따지고 그저 결제만 하는 게 능사인가. 그 피지컬 AI 시대, 인간의 삶을 묻는 것을 시작해야 하지 않나.
▲ 생성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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