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AI 시대, 학교 교육 어떻게
과제·발표·검색…학생 일상 속으로 들어온 AI
“독도는 왜 한국 땅인가.” 한 중학교 역사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국과 일본 입장을 각각 반영한 챗봇을 만들어 토론했다. 챗봇의 반론에 맞서 근거를 찾고 논리를 다듬으며 반박했다. 이 수업을 했던 김지완 경기 고촌중학교 역사교사는 “단순히 정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질문을 구성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이었다”며 “교사가 설계한 수업의 목적과 흐름 안에서 활용되는 AI는 학습의 깊이를 확장시킨다. 반대로 말하면, 설계 없이 학생 손에만 쥐어지는 AI는 깊이 대신 편의만 남길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행평가나 과제 수행 시 AI를 사용하는 모습도 쉽게 발견된다. 서지예 부산 초연중학교 영어교사는 “(학생들이) 다양한 영어 코스웨어(Courseware)*로 작문하고 AI가 채점 및 피드백을 해주기도 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 때도 디지털 도구를 적극 활용한다”며 “PPT를 한 장씩 만드는 학생은 거의 없다. 대신 템플릿을 활용하거나 주제와 키워드를 입력해 슬라이드를 자동 생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발표 대본도 챗GPT로 정리한다. 구글 검색이 줄었다. 자료를 찾을 때 AI에게 바로 묻고, 출처 확인 없이 그 답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교사로서 가장 신경 쓰이는 지점”이라고 했다.
*교육과정(Course)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학습자에게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AI 기반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
이승주 서울 신도림초등학교 교사는 “가장 일상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검색 방식이다. 이제 구글이나 네이버 대신 챗GPT에 바로 물어보는 게 아이들에겐 자연스럽다”면서, “수업 전 ‘챗GPT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AI가 잘못된 정보를 내놓는 장면을 보여주며 팩트 체크의 필요성을 설명한다”고 밝혔다.
수업 설계 도구로 AI 활용
학생과 상호작용은 교사 몫
교사들도 AI를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수업 시작부터 반복 학습까지 수업 전반에 AI를 활용하고 있는 서지예 교사는 “수업 첫 5분에는 챗GPT로 워밍업 질문을 만들거나 이미지 생성 도구로 시각 자료를 띄운다”고 했다. 또 본문 학습 단계에서는 “같은 지문을 여러 난이도로 변형하거나 어휘 카드 등을 빠르게 만들어낸다”며 “활동지 제작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그만큼 학생 개별 피드백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송근상 충남 서천초등학교 교사는 “복잡한 공문을 요약하거나 수업 자료 초안을 기획할 때 AI를 활용하고 있고, 기계적인 업무 시간을 단축하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행정 업무 처리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다만 AI의 한계점도 짚었다. 송근상 교사는 “AI는 눈앞에 있는 학생들의 구체적인 맥락, 정서적 상태, 교실의 역동성을 전혀 알지 못한다”며 “학생과 관계를 맺고 동기를 부여하며 전인적인 성장을 이끄는 교육적 상호작용은 절대 대체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승주 교사는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그대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내 생각과 판단, 노력이 들어가야 비로소 쓸 만한 것이 나오기 때문”이라면서 “점점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AI 없이는 작업이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AI에 익숙해질수록
멀어지는 ‘생각하는 과정’
AI를 활용해 과제를 수행하거나 학습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현장 교사들의 고민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송근상 교사는 “AI를 잘 모르는 학생들은 활용도가 크지 않지만 한 번 노출돼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파급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교사의 태도가 학생들의 AI 활용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송근상 교사는 “교사가 AI를 맹신하거나 무비판적으로 평가하면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AI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서 “AI가 내놓는 정보의 편향성이나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이 가장 큰 문제인데, 연령이 어릴수록 이를 비판적으로 걸러내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김지완 교사 역시 현장에서 AI에 대한 맹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완 교사는 “AI가 잘못된 정보를 제시했는데, 학생이 그것을 근거로 ‘선생님 설명이 틀린 것 아니냐’고 되묻는 상황도 있었다”며 “중학생의 경우 AI를 ‘참고 자료’가 아닌 ‘정답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각보다 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자료를 읽고 이해하고 그 위에서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검색→질문→즉답’의 패턴이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긴 글 읽기, 스스로 질문 만들기, 사고를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회피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지예 교사는 학습 과정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 “예전엔 답을 적기 전에 ‘이게 맞나’ 하고 한 번 멈추는 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과정이 사라지고 있다”며 “자기 검열과 메타인지가 무너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무엇이든 물어보면 바로 해결되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생각의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며 “AI가 다듬어 준 결과물을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면서 학습의 출발점과 도착점이 흐려지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주 교사는 학생들의 사고력 저하, 디지털 과의존 등 문제의 배경에 스마트폰 중심의 학습 환경이 있다고 봤다. 이승주 교사는 “아이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서도 하루에 스마트폰은 몇 시간씩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AI가 만든 결과, 누구의 실력인가
AI를 활용한 과제가 늘면서 결과물이 학생의 역량인지 AI의 결과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송근상 교사는 “집에서 해오는 과제나 수행평가에서는 이것이 학생 본인의 역량인지 AI의 결과물인지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많은 교사가 결과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교실에서 직접 글을 쓰게 하거나 구술 평가를 도입하는 등 과정 중심의 대면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서지예 교사도 “구분이 어렵고, 그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결과물을 한 번 더 다듬어 제출하는 경우가 많아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지예 교사는 “우리가 지금 평가하고 있는 것이 학생의 역량인지, AI를 다루는 능력인지, 아니면 AI 결과물을 자기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능력인지 경계가 흐려졌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평가의 전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에는 결과물이 곧 학습 결과라는 전제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결과물≠학생의 역량’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김지완 교사는 말했다. 이에 따라 평가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김지완 교사는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 자체보다 문제 분석과 결과 도출 과정을 평가의 중심에 두고 있다고 했다. 또 AI 활용 과정 기록, 수업 중 수행평가 등을 통해 학생의 실제 이해 수준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시대, 학교는 무엇을 교육해야 하나
이런 고민은 AI 시대에 학교가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교사들은 AI 활용법 자체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김지완 교사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사고하는 힘”이라며 “기술 자체가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 판단하고 검증하는 능력,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AI는 틀릴 수 있고 편향될 수 있기 때문에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자료와 비교하며 일단 의심해 보는 태도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면서, “AI 시대에 학교가 가르쳐야 할 것은 AI를 잘 쓰는 법 자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법, 의심하는 법, 자기 생각을 만드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주 교사는 초등 단계에서 특히 독서 역량과 사회정서 역량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승주 교사는 “독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질문하는 힘, 공감하는 힘, 수많은 정보 중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힘까지 한 번에 길러준다”며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이런 힘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가 가르치는 건 지식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서로 부딪히고 맞춰가는 과정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몸으로 배운다”며 “그 경험은 AI가 절대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송근상 교사도 AI 시대에 역설적으로 공감 능력, 윤리의식, 비판적 사고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AI 교육이 단순 활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AI를 목적에 맞게 다루는 ‘활용’, AI의 작동 원리와 알고리즘의 편향성, 데이터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꿰뚫어 보는 ‘이해’, AI가 내 삶과 사회, 노동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윤리적으로 고민하는 ‘성찰’이 학교 교육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송근상 교사는 “현재 학교 교육은 태블릿을 나눠주고 앱을 실행해 보는 ‘활용’이라는 가장 얕은 단계에 정체돼 있다”며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와 성찰”이라고 강조했다.
서지예 교사는 AI 시대 학교 교육의 과제로 “실제로 만들어 보는 경험”을 제시했다. 서지예 교사는 헷갈리는 영어 문법을 알려주는 챗봇, 학교 급식 메뉴 알림 웹사이트 등을 만들어본 학생은 AI를 숙제를 대신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학생이 배우는 것은 코딩 문법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힘, 요구사항을 언어로 풀어내는 힘, 결과물을 평가하는 안목, 막혔을 때 다시 묻는 끈기”라고 말했다.
AI 언제, 왜,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AI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하나의 기준으로 정하기 어렵고, 학교급이나 교과·수업 목적에 따라 다르게 정해야 한다는 게 교사들의 생각이다. 이승주 교사는 “AI나 에듀테크는 얼마나 쓰느냐보다 언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이 활동에서 아이가 직접 해봐야 하는 핵심 경험이 무엇인가가 기준”이라고 말했다. 독서나 글쓰기처럼 사고력과 문해력을 기르는 활동에서는 AI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표현해 보는 경험이 충분히 쌓인 뒤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완 교사도 “학생의 사고를 확장시키는가, 아니면 대체하는가”를 기준으로 두고 AI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완 교사는 “역사 인물과의 인터뷰 챗봇, 서로 다른 입장을 비교하는 토론 활동처럼 AI가 더 많은 관점에 접근하게 하고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 때는 적극 활용할 수 있다”며 “반면 AI가 글을 대신 써주고 답을 대신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쓰일 때는 학생이 읽지도 생각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은 채 결과만 가져가게 된다”고 했다.
서지예 교사는 언어 교과에서는 표현 단계의 AI 사용을 신중히 다뤄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영어 글쓰기에서 초안은 학생이 직접 쓰고, AI는 피드백 단계에서만 활용하도록 안내한다고 했다. 반면 사회·과학 같은 탐구 교과에서는 자료 수집과 정리 단계에서 AI를 활용하되, 비판적 검토와 결과물을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학생 몫으로 남겨야 한다고 했다.
송근상 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처럼 인지·정서 발달과 사회성 형성이 중요한 단계에서는 AI와 디지털 기기 사용을 보수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중·고등학교에선 무조건 차단하기보다 비판적 수용과 윤리적 활용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 맡겨진 AI 교육
기준과 지원 필요
교사들이 고민하는 AI 관련 교육이 현재 개별 교사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뒷받침할 기준과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지예 교사는 “지금은 AI 활용의 허용 범위를 개별 교사가 각자 판단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같은 학교 안에서도 반마다 기준이 다르고,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학교 단위, 교과 단위의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AI·에듀테크 관련 연수의 한계도 짚었다. 서지예 교사는 해당 연수가 도구 기능 시연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정작 필요한 것은 이 도구를 교과의 어느 차시, 어느 단계에 어떻게 끼워 넣을 것인가”라고 했다. 교과별 수업 설계 연수와 평가 기준 보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송근상 교사는 현재 교육 정책이 “속도”에 치우쳐 있다며 “기기 조작법 같은 단순 연수보다 이 기술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통제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AI는 수단일 뿐,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다”며 “기술 도입 속도전에 떠밀려 학생과 교감하는 교육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현장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지점”이라고 했다.
AI 교육 논의가 “현장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김지완 교사는 “기술의 가능성 논의는 풍부하지만 실제 교실 안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적다”고 말했다. 이어 “AI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쓰게 할 것인가, 학생이 사고를 포기하지 않도록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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