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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 시대, GPU보다 전기가 권력"… 가온전선·HD현대마솔, 美 데이터센터...

18일 업계에 따르면, 가온전선은 미국 자회사 LSCUS를 통해 미국 빅테크 기업 A사와 향후 5년간 버스덕트... 이번 계약의 핵심은 '전선 공급'이 아니라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의 내부 전력 설계에 한국 기업이 들어갔다는...

"AI 시대, GPU보다 전기가 권력"… 가온전선·HD현대마솔, 美 데이터센터...

-가온전선, 미 빅테크와 4조 버스덕트 장기계약… 전력 배전망 공급망 진입

-HD현대마솔 엔진 유지·보수까지 확보… AI 데이터센터 ‘운영권 경제’ 열려

가온전선 미국 생산 법인 LSCUS 전경 [사진=가온전선]

AI 산업의 병목은 전기였다. 미국 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누가 GPU를 더 많이 확보했는가”의 경쟁만이 아니다. GPU를 꽂을 랙을 얼마나 빨리 늘리느냐보다, 그 랙에 들어가는 전력을 끊기지 않게 밀어 넣고, 전압 변동 없이 버티게 하며, 장애가 나도 즉시 복구할 수 있는지가 더 큰 경쟁 조건으로 떠올랐다. AI 서버 한 랙이 과거 일반 데이터센터의 수 배에서 많게는 10배 안팎 전력을 요구하면서, 데이터센터는 서버 부동산이 아니라 전력 운영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전선회사와 조선 기자재 회사로 분류되던 한국 기업들이 최근 미국 시장에서 동시에 움직인 배경도 여기에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가온전선은 미국 자회사 LSCUS를 통해 미국 빅테크 기업 A사와 향후 5년간 버스덕트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약 500억원 규모 공급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누적 공급 규모는 최대 4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국내 전선·전력기기 업계를 통틀어 역대 최대 수준이다. 계약 기간을 단순 환산하면 연평균 최대 8000억원 안팎의 공급 여지가 열리는 구조다. 일반 케이블 납품이 아니라 매년 북미 AI 데이터센터 수십 곳에 대용량 배전 설비를 반복 공급하는 프레임 계약이라는 점에서, 한 번의 수주보다 공급망 편입의 의미가 더 크다.

같은 날 HD현대마린솔루션은 미국 에너지 인프라 기업 AEG와 데이터센터 전력용 엔진 유지·보수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미국 텍사스 데이터센터에 설치되는 684MW 규모 발전설비용 힘센 엔진 33기에 대해 장기 유지·보수와 운영·정비를 추진하는 내용이다. 684MW는 웬만한 복합화력 발전소 한 기에 맞먹는 규모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이제 자체 발전소를 품어야 할 만큼 전력 수요가 커졌고, 엔진을 공급한 뒤에도 정비·부품·운영 관리가 장기간 따라붙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두 계약은 산업 분류상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인다. 하나는 전력 배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발전엔진 애프터서비스다. 그러나 북미 AI 인프라 시장에서는 이 둘이 하나의 산업군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설비, 서버실 안으로 전력을 분산시키는 버스덕트, 장애를 막는 유지·보수 체계가 모두 데이터센터 가동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의 경쟁력은 이제 GPU 조달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기를 생산하고, 나르고, 배분하고, 고장 없이 유지하는 능력까지 포함한 ‘전력 지속성’이 새로운 진입장벽으로 올라서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이제 산업용 전력 소비 시설 수준을 넘어 ‘소형 도시’에 가까운 전력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엔비디아 GB200·B300 계열 GPU 서버가 본격 도입되면서 랙(Rack)당 전력 밀도는 과거 5~10킬로와트(kW) 수준에서 최근 80~120kW까지 치솟고 있다. 일부 초대형 AI 클러스터는 랙당 150kW 이상도 거론된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요구하는 전력 규모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이번에 공급하기로 한 684MW 규모 발전설비는 원전 1기 설비용량의 절반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차세대 AI 데이터센터가 1GW 이상 전력을 요구하는 사례도 빠르게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AI 연산 특성상 전력 품질(power quality)에 대한 민감도가 기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초거대 AI 모델 학습 과정에서는 수만 개 GPU가 동시에 병렬 연산을 수행하는데, 이때 순간적인 전압 강하(sag)나 주파수 변동만 발생해도 서버 클러스터 전체 동기화가 흔들릴 수 있다. 실제 북미 데이터센터 업계에서는 순간 전력 이상으로 GPU 클러스터 일부가 재부팅되면서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 단위 학습 작업을 다시 수행하는 사례도 거론된다. AI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발전설비·배전망·냉각·UPS(무정전전원장치)를 하나의 통합 전력 시스템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정비자재를 공급할 예정인 에콰도르 전력공사 산하 140MW급 하라미요(JARAMIJO) 화력발전소 전경 [사진=HD현대마린솔루션]

이 흐름 속에서 버스덕트의 역할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과거 공장·플랜트 내부에서 전력을 분산시키는 보조 설비였다면, 지금은 AI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망의 ‘고속도로’ 역할을 맡고 있다. GPU 서버 밀도가 높아질수록 기존 케이블 방식은 발열과 공간 문제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대용량 전류가 집중되면 케이블 다발 내부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냉각 효율도 떨어진다. 반면 버스덕트는 알루미늄 또는 구리 도체를 금속 외함 안에 집적해 전력을 전달하는 구조여서 대전류 대응 능력이 높고 전력 손실률도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최근 북미 AI 데이터센터에서는 400V급 중심이던 기존 배전 구조를 넘어 800V 이상 고전압 직류(HVDC) 기반 내부 배전 구조까지 검토되고 있다. 전력 변환 단계를 줄여 GPU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버스덕트는 초고전력 GPU 서버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핵심 장비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시장이 앞으로 냉각·배전·발전·전력제어까지 포함한 거대한 독립 산업군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온전선 계약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전선 공급’이 아니라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의 내부 전력 설계에 한국 기업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착공 뒤에도 서버 증설, 랙 재배치, 전력 용량 확대가 반복된다. 처음 채택된 배전 설비와 공급사는 이후 증설 구간에서도 다시 불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5년 장기공급계약이 단기 매출보다 더 무겁게 읽히는 이유다.

공급망도 한 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초기 물량은 LS전선 구미 인동공장에서 나가고, 가온전선은 전주공장에 버스덕트 생산설비를 새로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6년 완공 예정인 LS전선 멕시코 생산법인까지 가동되면 한국에서 만들고 미국에 파는 방식에서, 북미 안에서 빠르게 대응하는 구조로 바뀐다. LS에코에너지가 말레이시아·베트남 데이터센터에 버스덕트와 케이블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까지 겹치면, LS그룹 전선 계열은 아시아 생산·북미 납품·현지 대응을 묶은 데이터센터 전력망 공급 체계를 갖추게 된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움직임도 같은 방향이다. 데이터센터 발전엔진 시장은 장비를 한 번 팔고 끝나는 시장이 아니다. 684MW 규모 발전설비가 들어가는 순간, 이후에는 정기점검, 부품 교체, 고장 대응, 운전 데이터 관리가 장기간 따라붙는다. 선박 엔진 애프터마켓에서 쌓은 정비 경험이 데이터센터 전력 운영 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유다.

특히 미국에서는 전력망 접속 지연과 송전 인허가 병목으로 데이터센터가 자체 발전설비를 사실상 보조 전원이 아닌 핵심 전원으로 활용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이 경우 엔진 유지·보수는 기계 정비가 아니라 데이터센터 가동률을 지키는 일이다. 전력 설비가 멈추면 서버가 멈추고, 서버가 멈추면 AI 연산도 멈춘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노리는 시장은 엔진 수리비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데이터센터’에 붙는 반복 수익이다.

변정일 LS전선 Busduct사업부장은 “LS전선의 글로벌 영업 역량과 가온전선 미국 법인의 현지 대응 역량이 결합된 성과”라며 “지난해 빅테크 B사와의 대규모 계약에 이어 이번 수주까지 확보하며 미국 AI 데이터센터 공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 관계자는 “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데이터센터 발전용 엔진에 대한 유지·보수 서비스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번 협력을 통해 HD현대마린솔루션의 AM 솔루션 역량을 증명하고, 북미 시장 내 데이터센터 관련 신규 수요를 선점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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