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경쟁 끝···보험의 승부처는 '지급 통제'로 이동
사후 적발에서 사전 차단으로, 손해율 관리 패러다임 전환
AI, 심사를 넘어 '지급 구조 설계'까지 확장
이제 보험사는 '리스크를 설계하는 기업'으로 재정의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보험업계의 인공지능(AI) 경쟁이 본질적인 전환점에 들어섰다. 과거에는 판매 확대와 채널 경쟁이 성장의 핵심 축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정교하게 지급을 통제하느냐'가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차원보다는 보험금 지급 전 과정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지급 설계 능력 자체'가 보험사의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보험사기 규모가 3년 연속 1조원을 넘어서며 손해율 관리 부담이 구조적으로 확대된 점은 이 같은 변화를 가속화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기 적발액은 2022년 1조818억원, 2023년 1조1164억원, 2024년 약 1조1500억원 수준으로 매년 증가했다. 적발 인원 역시 10만명을 상회하는 등 보험사기는 더 이상 일부 일탈이 아닌 '구조적 비용'으로 자리 잡았다.
보험 구조상 부당 지급된 보험금은 결국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로 전가되는 만큼 보험사기 대응 역량은 곧 가격 경쟁력과 직결된다.
/ 사진=챗 GPT
이 같은 상황 속에서 AI는 보험사의 '지급 통제 인프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보험금 청구, 심사, 지급, 사후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을 선별하고 의사결정을 자동화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사람이 경험과 규칙 기반으로 판단하던 영역이 머신러닝 기반 확률 모델로 대체되면서 속도와 정확도가 동시에 개선되는 모습이다.
보험업계 AI 경쟁의 가장 큰 변화는 '사후 적발 중심'에서 '사전 차단 중심'으로의 이동이다. 기존에는 보험금 지급 이후 이상 거래를 적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지급 이전 단계에서 위험 신호를 탐지해 차단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
지급 이후 손실을 줄이는 산업'에서 '지급 이전에 손실을 설계하는 산업'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변화는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보험금 청구 단계에서 AI는 고객 정보, 사고 이력, 의료 및 정비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청구 건별 위험 점수를 산출한다. 고위험으로 분류된 건에 대해서는 심사 인력을 집중 투입하고 필요 시 조사 및 수사 의뢰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특히 네트워크 분석 기반 AI는 조직형 보험사기 대응에서 강점을 보인다. 단일 사고가 아닌 병원·정비업체·브로커 등이 연계된 구조를 시각화해 이상 패턴을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인력 중심 심사 체계로는 사실상 포착이 어려웠던 영역으로 AI 도입이 실질적인 손해율 개선으로 이어지는 핵심 이유로 꼽힌다.
실제 주요 보험사들은 AI 기반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FDS)을 고도화하며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IFDS)을 통해 사고 이력과 위험 지표를 기반으로 사기 가능성을 점수화하고 고위험 사고를 선별해 집중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머신러닝 기반 관계 분석을 통해 조직형·다발성 사기 패턴까지 탐지하며 지급 이전 단계에서 위험을 걸러내고 있다.
DB손해보험은 빅데이터 기반 'DB T-System'을 통해 혐의자 간 공모 관계를 분석하고, 자동차보험 고의사고나 병원·정비업체 연계 사기 구조를 식별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단순 개별 사고가 아닌 네트워크 단위의 이상 패턴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기존 시스템 대비 탐지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교보생명 역시 'K-FDS'를 통해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의 노하우를 AI 학습에 반영하고 유사 패턴을 자동 탐지하는 구조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더해 설계사·계약자·의료기관 간 데이터 연계를 강화해 반복 청구나 비정상 계약 패턴을 조기에 식별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 사진=챗GPT
보험 AI의 진화는 '지급 심사'를 넘어 '지급 설계'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급 설계란 보험금 지급 가능성과 규모를 사전에 예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험료·보장 구조·심사 기준을 최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더라이팅(보험 인수 심사) 영역에서 AI는 가입자의 건강 상태, 생활 습관, 의료 이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도를 정밀하게 평가하고, 이를 보험료 산정과 담보 구성에 반영한다. 일부 보험사는 상당수 계약을 자동 심사로 처리하며 가입 가능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표적으로 현대해상은 AI 기반 자동심사 시스템을 통해 간편한 계약 체결을 가능하게 했으며 삼성화재는 머신러닝 기반 언더라이팅 시스템으로 장기보험 자동심사 비중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AI 어시스턴트 시스템을 통해 보장 분석과 사전심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보험사는 건강검진 데이터, 웨어러블 기기 데이터 등 비정형 데이터를 언더라이팅에 반영하는 시도를 확대하고 있다.
생활습관 기반 위험도 평가를 통해 기존보다 정밀한 보험료 산정이 가능해지면서 동일 연령·직군 내에서도 개인별 리스크에 따른 차등화가 강화되는 흐름이다. 또한 자연어 처리 기반 AI를 활용해 상담 기록과 설계 이력을 분석하고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하는 등 계약 단계 리스크 관리도 고도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경쟁은 탐지 정확도, 운영 안정성, 모델 관리 능력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유지·개선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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