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이후의 다음 컴퓨팅 기기 자리를 놓고 글로벌 빅테크의 전선이 빠르게 '얼굴과 손목' 위로 옮겨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너머 태블릿·PC·웨어러블까지 인공지능(AI) 기능을 확장하고 구글과 차세대 AI 운영체제(OS)를 공동 개발한다고 밝힌 데 이어, 메타·애플·오픈AI까지 'AI 안경'과 'AI 이어폰'을 차세대 하드웨어로 지목했다. 스마트폰 한 대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던 시대를 넘어, 카메라·마이크·디스플레이가 분산된 '몸에 걸치는 AI'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을지가 향후 3년의 관전 포인트다.
메타, 가장 먼저 1000만 대를 노린다
웨어러블 AI 시장에서 가장 앞서가는 진영은 메타다. 메타와 협업하는 안경 제조사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는 2025년 한 해에만 'AI 안경'을 700만 대 이상 팔았다고 밝혔다. 이는 2023~2024년 2년치 누적 판매량(약 200만 대)을 단숨에 뛰어넘은 수치다. 2025년 하반기 기준 메타는 전 세계 스마트글래스 시장의 약 82%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메타는 2026년 말까지 연간 10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잡았다가,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자 에실로룩소티카와 연 2000만 대까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저커버그가 메타버스를 접고 AI 안경에 올인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애플, 2027년 정조준 — '비전 프로'와는 다른 길
애플은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화려한 혼합현실(MR) 기기 비전 프로(Vision Pro) 대신, 일상에서 쓰는 가벼운 안경과 카메라를 단 에어팟을 준비 중이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애플은 아세테이트 소재의 스마트글래스 4종을 개발 중이며, 양산은 2026년 말~2027년 초에 들어간다. 안경에는 두 개의 카메라(촬영용 고해상도 카메라 + 손동작 인식용 광각 카메라)와 스피커·마이크가 들어가고, 시리(Siri)가 사용자가 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해석하는 '비주얼 AI' 기능을 지원한다.
함께 준비 중인 '카메라 에어팟'과 'AI 펜던트'까지 더하면, 애플은 안경·이어폰·목걸이라는 세 점을 동시에 띄워 아이폰이 만든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확장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픈AI, 화면 없는 AI 디바이스로 새 카테고리 만든다
오픈AI는 2025년 5월 전 애플 디자인 총괄 조니 아이브의 하드웨어 스타트업 'io 프로덕츠'를 약 65억 달러에 인수한 뒤, 2026년 하반기 첫 디바이스 공개를 예고했다. 자사 정책 책임자 크리스 르헤인은 최근 "올 하반기 공개 일정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확인했다.
알려진 형태는 화면이 거의 없는 '귀 뒤에 걸치는' 웨어러블(코드명 스위트피·Sweetpea)과 펜 형태(코드명 검드롭·Gumdrop) 두 가지다. 폭스콘이 4000만~5000만 대 규모 생산을 맡을 것으로 전해진다. 화면을 빼고 음성·환경 센서로 AI와 상시 대화하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겠다는 게 오픈AI의 그림이다.
삼성, 안경+링+갤럭시AI '3중 포위'
가장 다층적인 전략을 들고 나온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은 갤럭시 스마트폰의 AI 기능을 태블릿·PC·웨어러블로 확장하고, 구글과 함께 차세대 AI OS를 공동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스마트글래스 쪽에서도 움직임이 빠르다. 삼성은 유럽에서 안경 프레임에 스피커·배터리·광학장치·마이크·디스플레이·PCB를 통합하는 특허를 출원했고, 2026년 출시를 목표로 자체 스마트글래스를 준비 중이다. AR/VR을 모두 아우르는 'AI 기반 가상 UI'로 스마트폰·TV·게임기까지 한 안경으로 제어한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갤럭시 워치 시리즈, 이미 출시된 갤럭시 링(스마트 반지)까지 라인업에 묶여 있다. 다만 갤럭시 링2의 연내 출시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차세대 라인업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 표로 보는 글로벌 'AI 웨어러블' 경쟁 구도
기업
대표 제품
형태
출시 시점
핵심 무기
메타
Ray-Ban Meta AI Glasses
안경
이미 판매 중(연 1000만 대 목표)
시장 선점·82% 점유
애플
AI 스마트글래스, 카메라 에어팟, AI 펜던트
안경+이어폰+펜던트
2026년 말~2027년 초 양산
아이폰 생태계·비주얼 시리
OpenAI
Sweetpea(귀 뒤 웨어러블)·Gumdrop(펜)
화면 없는 신규 카테고리
2026년 하반기 공개
GPT 모델·조니 아이브 디자인
삼성전자
스마트글래스, 갤럭시 워치/링, 갤럭시 AI
안경+워치+링
2026년 내 스마트글래스 출시 목표
구글 협업 AI OS·디바이스 다양성
한국 생태계는 어디에 서 있나
글로벌 거인의 각축전 속에서 한국 스타트업 진영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AR 광학 분야에서는 레티널, 피앤씨솔루션 같은 국내 스마트글래스 광학 모듈 업체들이 미국·유럽 OEM 공급을 노리며 기술 검증을 받고 있다. 삼성이 자체 글래스를 출시하면 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마이크로LED 광원, 골전도 스피커, 초소형 배터리 등 부품 단에서 국내 협력사의 수혜폭이 결정될 전망이다.
다만 한국은 'AI 모델' 측면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의존도가 높다. 갤럭시 AI도 구글 제미나이(Gemini)와의 협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국내 AI 모델(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LG AI 엑사원 등)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직접 탑재되는 사례는 아직 드물다. 향후 AI 기본법 시행과 맞물려 '국산 AI를 탑재한 국산 웨어러블'이라는 정책적 수요가 어떻게 작동할지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누가 이길까 — 관전 포인트 세 가지
첫째,
하드웨어 폼팩터의 표준
이 안경으로 굳어질지, 오픈AI가 띄우는 '귀 뒤 디바이스' 같은 신형으로 갈라질지가 향후 1~2년 안에 결판난다.
둘째,
AI OS의 주도권
이다. 삼성-구글이 차세대 AI OS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점은, 안드로이드에서 그랬듯 모바일 시대 종료 후의 OS 패권을 다시 한 번 구글이 가져갈 수 있다는 신호다. 애플은 비전OS 계열을 자체적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셋째,
사생활·규제
변수다. 메타 Ray-Ban 사용자가 무단 촬영 논란에 휘말리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EU에 이어 한국도 AI 기본법 체제에서 카메라 내장 웨어러블에 별도 의무를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스마트폰이 손에서 사라지는 시대가 정말 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향후 18개월 안에 글로벌 빅테크 4곳이 모두 'AI 웨어러블 신제품 출시'라는 같은 깃발을 꽂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 IT 산업이 이 흐름에서 '부품 공급사'에 머물지, 직접 카테고리를 만드는 플레이어가 될지가 진짜 시험대다.
베타뉴스 이 직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