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인텔, AI CPU 수요 증가에 1분기 깜짝 실적
세계 첫 D램, 50년 제국 건설 뒤 AI로 추락
트럼프 정부 최대주주 뒤 회생...소뱅도 투자
머스크 ‘테라팹’ 합류...아일랜드 팹도 재매입
올 주가 124% 급등...파운드리 재건 정조준
팻 겔싱어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 엔지니어 출신인 겔싱어 CEO는 인텔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2021년 2월 회사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가 파운드리 투자와 AI 전환 대응에 모두 실패했다는 혹평 속에 2024년 12월 사실상 경질됐다. 현 립부 탄 CEO는 이후 지난해 3월 내정됐다. EPA연합뉴스
한때 전 세계가 선망하는 최고 반도체 회사였다가 혁신의 실패로 존폐 위기까지 갔던 인텔이 자체 구조조정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주력 품목인 중앙처리장치(CPU) 판매에 호조를 보이는 것은 물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월가에서도 인텔에 대한 회의론이 조금씩 걷히는 분위기다. 인텔의 반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꾀하는 미국 반도체 업계 전반의 부흥을 상징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클 전망이다. 다만 아직 파운드리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한 데다 적자의 늪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만큼 아직은 이 회사를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게 나온다.
인텔, AI CPU 수요 증가로 1분기 ‘어닝서프라이즈’...부활 신호탄
인텔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인텔은 지난 23일(현시 지간) 장 마감 후 시장 기대를 웃도는 1분기 실적을 내놓으며 월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텔은 1분기 매출이 136억 달러(약 20조 10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문가 전망치보다 11% 많은 수준이었다. 인텔은 2분기 매출 예상치도 시장 전망치 130억 달러를 웃도는 138~148억 달러로 제시했다.
인텔의 실적을 견인한 것은 전통적인 주력 제품인 CPU였다. AI 에이전트와 거대 언어 모델(LLM)의 보급 덕분에 CPU의 수요가 확산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월가는 특히 인텔의 1분기 실적에서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이 51억 달러(약 7조 6000억 원)로 시장 전망치인 45억달러를 넘어선 부분에 주목했다. 데이터센터 서버 등에 쓰이는 기업용 CPU 수요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인텔의 핵심 매출원인 PC용 CPU가 최근 메모리반도체 가격 폭등 탓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데이터센터 수요가 이를 상쇄할 호재로 부각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은 여전히 적자를 유지했다. 시장은 인텔이 1분기에 250만 달러의 순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봤으나, 실제 성적표는 37억 달러 순손실이었다. 회사 측은 자율주행 기술 자회사인 ‘모빌아이’ 비용 처리, 미국 행정부가 보유한 지분 10%와 연계된 파생상품 결제 비용 등 일회성 비용에 따른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성명에서 “AI의 혁신 흐름은 파운데이션(기초) 모델에서 추론과 에이전트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런 패러다임 변화가 인텔의 CPU를 비롯해 웨이퍼와 첨단 패키징(후공정)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대폭 끌어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실적에 힘입어 인텔은 22일 하락장에서도 2.31% 상승하는 저력을 보였다. 인텔은 나아가 23일에도 무려 23.60%나 급등하며 뉴욕 증시 기술주 전반을 견인했다. 이날 인텔의 하루 주가 상승률은 2000년 이후 26년 만에 최대였다. AI CPU 수요 확대에 대한 기대가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옮겨붙으면서 엔비디아의 주가도 4.32% 치솟았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이날 5조 750만 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10월 29일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5조 달러 벽을 넘어섰다. 마이크로소프트(2.13%), 아마존(3.49%), 구글 모회사 알파벳(1.63%), 브로드컴(0.67%),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2.41%), 테슬라(0.69%), AMD(13.91%), 퀄컴(11.12%), 마이크론(3.11%) 등 다른 기술주들도 인텔 효과에 줄줄이 상승했다.
세계 최초 D램으로 시작해 50년 CPU 제국 건설...AI로 무너졌다가 트럼프 지분 인수로 회생
앤디 그로브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 연합뉴스
인텔에 대한 현 월가의 관심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1968년 7월 18일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설립한 인텔은 사업 초기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1970년에는 세계 최초로 D램을 상용화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인텔은 이를 발판으로 1970년대에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도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인텔은 각국의 기술자들이 우러러보는 글로벌 정보기술(IT) 혁신을 상징하는 회사였다. 인텔은 그러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일본 기업들의 가격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1985년 관련 사업에서 철수했다. 당시 앤디 그로브 최고경영자(CEO)는 메모리반도체를 포기하는 대신 PC용 CPU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꺼내들었고, 이는 인텔에 신의 한 수가 됐다.
CPU 시장에서 50년 가까이 시장을 지배하던 인텔은 모바일 시대를 맞아 주춤하기 시작했다. 이어 AI 시대가 대두하면서 시장을 엔비디아의 GPU에 대거 넘겨주게 됐다. 파운드리 부문은 대만의 TSMC에 완전히 밀렸다. 2023년 1분기 약 28억 달러라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본 인텔은 2024년과 지난해 내리 연간 순손실을 기록했다. 2년 동안 전 직원의 약 20%에 육박하는 2만 명가량의 인력을 해고했고,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회사로 전락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8월 바이든 전 행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으로 경영난에 빠진 인텔의 지분 9.9%를 사들여 직접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미국 상무부는 2024년 11월 인텔에 최대 78억 6500만 달러의 직접 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텔은 이를 포함해 상업·군사용 반도체 생산에 총 109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었다.
연방 정부의 인텔 지분 인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탄 CEO가 지난해 8월 11일 회동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 CEO를 만나기 전인 같은 달 7일까지만 해도 그가 중국과 연계됐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사임을 촉구했다가 11일에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탄 CEO를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함께 만났는데 매우 흥미로웠다”고 치켜세웠다.
고강도 구조조정 후 엔비디아·소뱅서 투자 유치...머스크 ‘테라팹’ 프로젝트도 합류
립부 탄(왼쪽) 인텔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인텔 X
트럼프 행정부의 품에 안긴 인텔은 지난해 하반기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대규모 감원과 사업부 매각 등 비용을 절감하고, 이후 엔비디아, 소프트뱅크 등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인텔은 자사의 부활을 반신반의하던 월가의 이목을 잇따라 집중시켰다. 인텔은 특히 이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AI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인 ‘테라팹(초대형 반도체 생산 시설)’에 합류하기로 하면서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인텔은 이달 7일 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스페이스X, xAI, 테슬라와 함께 ‘테라팹’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리콘 팹(반도체 생산공장) 기술을 리팩토링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탄 CEO와 머스크 CEO가 악수하는 사진을 게시하고 “지난 주말 인텔에서 머스크 CEO를 맞이하게 돼 즐거웠다”고 밝혔다. 리팩토링은 반도체의 성능이나 신뢰도를 높이는 개발 과정을 뜻한다.
인텔은 이어 “초고성능 반도체를 대규모로 설계, 제조, 패키징하는 인텔의 역량이 연간 1TW(테라와트)의 연산 능력을 생산해 AI와 로봇 공학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목표를 가속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 CEO도 자신의 X 계정에 글을 올리고 “머스크 CEO는 산업 전반을 새롭게 구상하는 검증된 실적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오늘날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것”이라며 “테라팹은 앞으로 실리콘 로직·메모리·패키징이 제조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테라팹은 머스크 CEO가 AI와 로봇공학, 우주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될 자체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추진하는 초대형 반도체 생산기지다. 머스크 CEO는 그간 반도체 생산량이 자사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며 테라팹 생산의 필요성을 수차례 역설했다. 지난달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첨단 기술 팹부터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머스크 CEO는 지난해 11월 테슬라 주주총회에서 테라팹 건설 계획을 처음 밝힌 바 있다. 머스크 CEO는 당시 “3년이 지난 뒤 나타날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우리가 기대한 칩이 도착하지 않을 위험이 항상 존재하고, 반도체 공급이 중단될 경우를 대비해 미국 내 생산 능력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스크 CEO가 구상하는 테라팹은 TSMC에 필적하는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테슬라의 AI 칩은
삼성전자(005930)
와 대만 TSMC 등이 나눠 생산하고 있다.
머스크 CEO는 올 1월 28일 테슬라 실적발표회에서도 “최상의 시나리오로 주요 공급업체들의 생산량을 살펴보고 삼성전자와 TSMC, 마이크론 같은 전략적 협력사를 넘어선 공급망까지 고려해도 그들이 생산할 수 있는 양으로는 부족하다”며 “향후 3∼4년 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제약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테슬라 테라 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스크 CEO는 또 이달 22일 테슬라 실적발표회에서 “테라팹에 인텔의 첨단 공정인 ‘14A’를 활용할 계획”이라며 “아직 완전히 완성된 상태는 아니지만 테라팹이 본격적으로 확장될 시점에는 14A가 충분히 성숙하거나 실전 투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14A는 인텔이 내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1.4나노미터(㎚)급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이다.
아일랜드 팹 되사고 구글과도 손잡고...올 주가 124% 상승 속 파운드리 재건 속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인텔은 나아가 9일 구글 클라우드 서버에 자사의 최신 CPU ‘제온6’를 비롯한 핵심 반도체를 공급하는 다년 계약을 맺었다고 공표했다. 구글은 이전에도 인텔 칩을 사용했는데 계약을 연장한 것이다. 인텔은 또 구글과 맞춤형 인프라처리장치(IPU) 공동 개발 관련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IPU는 데이터센터의 효율을 높여주는 칩으로 내부 통신, 정보 저장, 보안 등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업무를 IPU가 전담하면 CPU는 본연의 데이터 처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 탄 CEO는 “AI를 확장하려면 가속기뿐 아니라 균형 잡힌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CPU와 IPU는 현대 AI 수요의 성능과 효율성, 유연성을 제공하는 중심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인텔이 이달 1일 아일랜드의 반도체 제조 공장 관련 합작법인(JV) 지분을 2년 만에 재매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월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내용이었다. 해당 합작법인은 팹34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웨이퍼의 권리를 갖는 회사다. 팹34는 인텔의 주요 CPU 제품군인 ‘인텔 코어 울트라’와 ‘인텔 제온6’ 등의 공정 제품을 생산하는 핵심 시설로 꼽힌다. 인텔은 자금난을 겪던 2024년 팹34의 지분 49%를 대체투자 운용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에 112억 달러에 팔았다. 인텔이 이 지분을 되사는 비용은 142억 달러로 책정됐다. 지분 재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보유 현금과 약 65억 달러 규모의 신규 부채로 조달하기로 했다. 당시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현재 우리는 더욱 견고해진 재무구조와 개선된 재무 건전성, 발전된 사업 전략을 갖추게 됐다”고 자평했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는 15일에는 한승훈(숀 한) 삼성전자 부사장을 다음달부터 파운드리 부문 수석부사장 겸 총괄 매니저로 영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파운드리 사업의 재건에도 가속 페달을 밟는 셈이다. 인텔은 2012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한 뒤 막대한 투자를 쏟았지만 사업 부진으로 6년 만에 철수했다. 이후 2021년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이미 경쟁사들과는 격차가 많이 벌어진 상태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파운드리 시장의 지난해 연간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9.9%, 삼성전자가 7.2%다.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세계 10위권에도 못 들고 있다.
GPU가 독주하던 AI 시대에서 CPU의 중요성이 재조명됨에 따라 인텔은 생존을 걱정하던 시기는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AI 시장이 에이전트 경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인텔의 사업 기회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곳곳에서 나온다. 지난해 말 36.90달러에 불과했던 인텔 주가도 올 들어 24일까지 123.69%나 폭등하며 82.54달러로 올랐다.
모건스탠리도 19일 보고서를 내고 AI가 CPU에 대한 수요를 늘리면서 투자 영역을 기존 GPU에서 한 단계 더 확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는 “AI가 생성 단계에서 자율적 행동 단계로 전환됨에 따라 컴퓨팅 병목이 CPU와 메모리반도체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AI 에이전트가 2030년까지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던 데이터센터 CPU 시장 규모를 325억~600억 달러(약 48조~88조원)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인텔의 진격이 어디까지 갈지는 AI 산업의 진화 형태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한물 간 기술로 평가받던 CPU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여기서 확보한 현금을 기반으로 파운드리 등 종합 반도체 사업으로 영역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자국의 반도체 사업을 되살리겠다는 미국 정·재계의 합심이 인텔의 최대 우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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