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공약 봇물…돈줄 죄는 금융권 “분양률부터 보여달라”
돈맥경화에 서울 핵심지만 각광...지방 개발사업 시계 제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발 공약은 쏟아지지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과 강화된 대출 규제로 자금이 서울 핵심지에만 몰리면서 지방 개발사업의 현실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 공약은 넘치는데…개발사업 돈줄 PF는 더 조인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 기초의원 후보들이 앞다퉈 개발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산업단지 조성, 역세권 복합개발, 1기 신도시 재정비, 지역 거점 도시 육성, 데이터센터 유치까지. 선거철 공약판은 '건설 공약의 홍수'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은 지난 19일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판교를 10개 만들겠다"는 구상을 꺼냈다. 8대 권역별로 산업 거점을 만들어 용인에는 반도체, 고양에는 콘텐츠, 시흥·안산에는 로봇·스마트제조, 남양주에는 바이오·헬스케어를 유치하겠다는 내용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도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잡았다. 한 의원은 "분당 이주 문제는 7700가구 규모의 이주단지를 확보해 해결하고, 일산은 용적률 상향과 역세권 복합개발을 통해 사업성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맹정호 전 서산시장은 2월 12일 6대 분야 20개 공약을 발표하면서 RE100 산업단지 조성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유치를 핵심 과제로 내걸었다.
맹 전 시장은 "선거용 구호보다 정책 내용으로 시민의 평가를 받는 선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2월 5일 공약개발본부 1차 회의를 열고 '경제·청년·인구·지역'을 핵심 키워드로 확정했다. 장동혁 대표는 "지역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충남 태안에서는 출마 예정자 대다수가 화력발전소 폐쇄 이후 대체 산업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해상풍력, RE100 산업단지, 수소·미래항공 관련 공약이 후보마다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공약에 따른 건물들이 실제로 땅 위에 세워지려면, 결국 PF라는 자금줄이 연결돼야 한다. PF는 쉽게 말해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은행이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금융 기법이다.
산업단지든 역세권 개발이든, 시행사가 땅을 사고 인허가를 받고 건물을 올리는 모든 과정에 PF가 들어간다. PF가 막히면 사업이 멈춘다. 그리고 지금 그 PF의 수도꼭지가 잠기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지난해 12월 발표에 따르면, 2025년 9월 말 기준 금융권 PF 관련 자금 규모는 177조9000억원이다. 전분기 대비 8조7000억원이 줄었다. PF 대출 연체율은 4.24%까지 올라갔다. 중소금융권의 토지담보대출 연체율은 32.43%를 기록했다. 10건 중 3건 이상이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금감원 표지석.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은 한시적으로 풀어놨던 PF 규제 완화 조치를 2026년 6월 말까지 연장하면서도, 2027년부터는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시행사가 직접 투자하는 돈의 비율)을 20%까지 올리도록 하는 제도 개편을 확정했다. 지금까지 시행사 자기자본비율은 평균 3% 안팎에 불과했다. 이 비율이 4년에 걸쳐 5%→10%→15%→20%로 올라간다. 자기 돈을 더 넣어야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은행도 PF 대출에 쓸 수 있는 돈의 한도가 정해진다. 은행은 PF 관련 자금을 전체 대출의 20% 안쪽으로 묶어야 한다. 같은 사업장에 빌려줄 수 있는 금액도 자기자본의 5%를 넘기면 전체 PF 대출 총액이 자기자본의 1배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된다.
금융당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새마을금고, 신협 등 상호금융권의 PF 대출 비중을 총대출의 20% 안쪽으로 제한하는 감독규정 개정안을 2026년 3월 입법 예고했다. 부동산·건설 관련 대출 전체도 총대출의 5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 살아난다던 지방 PF, 돈은 다시 서울로 몰린다
지방시장에 PF가 조금씩 살아나는 듯해도 돈의 흐름은 균등하지 않다. 서울과 수도권 핵심지에는 자금이 다시 붙지만, 지방은 여전히 PF 시장 밖에 서 있다. 시중은행들이 PF 대출을 다시 검토하고 있지만, 대상은 1군 건설사가 참여한 서울 대형 재정비 사업장 같은 초우량 사업지에 집중된다. 결국 PF 회복은 전면적 회복이 아니라 ‘서울 선별 회복’에 가깝다.
이런 흐름은 금융회사의 판단 기준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금융권은 지금 PF를 볼 때 “무엇을 짓느냐”보다 “분양이 되느냐, 돈을 회수할 수 있느냐”를 먼저 따지는 분위기다. 서울 핵심지는 고분양가 논란이 있더라도 수요층이 두텁고, 토지 가치와 담보력도 상대적으로 높다. 사업이 흔들리더라도 자산을 처분해 손실을 줄일 여지가 있다.
반면 지방 중소도시는 인구 감소, 산업 기반 약화, 미분양 누적이 겹치면서 사업성 자체를 입증하기가 훨씬 어렵다. 같은 개발계획서라도 서울에서는 ‘검토 대상’이 되지만, 지방에서는 ‘애초에 심사 문턱을 넘기기 어려운 안’이 되는 이유다.
CBRE코리아 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은 확인된다. 국내 금융기관의 62%가 올해보다 대출을 늘리겠다고 답했지만, 관심은 서울 오피스와 물류센터에 몰렸다. 우량 자산과 미래형 자산에는 돈이 가지만, 지방 중소도시 개발사업까지 온기가 번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센터나 물류시설처럼 임차 수요와 현금흐름을 비교적 예측할 수 있는 자산은 금융권 입장에서 리스크를 계산하기 쉽다. 반면 지방의 산업단지나 복합개발 사업은 분양률, 입주 수요, 주변 인프라, 지역 경기까지 여러 변수가 얽혀 있어 불확실성이 훨씬 크다. PF 시장이 살아난다고 해도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반면 지방은 미분양과 경기 부진이 겹쳐 있다. 전국 미분양 주택 6만6613호 가운데 75%가 지방에 몰려 있고, 준공 후 미분양은 2만7905호로 12년 4개월 만에 최대다. 건설투자는 줄었고, 주택업경기 전망지수도 다시 기준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지방은 분양 전망이 약하고, 분양이 약하니 PF도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악순환이 단순히 부동산 경기 부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PF가 막히면 착공이 미뤄지고, 착공이 미뤄지면 지역 내 일감과 고용도 줄어든다. 건설사뿐 아니라 자재, 설비, 운송, 하청업체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지방에서 개발사업 하나가 좌초될 때 타격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도권은 다른 수요와 사업으로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있지만, 지방은 몇 개 핵심 사업이 멈추는 것만으로도 지역 경기 전반이 얼어붙을 수 있다.
한강 주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 핵심지 대형 사업도 안심할 수 없다. 서울역 부근 A 재개발 사례처럼 상징성 큰 사업조차 본PF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한복판 대형 사업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데, 지방 중소도시 사업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시장은 회복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선별 지원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정치권은 공급과 개발을 말하지만, 금융권은 분양률과 회수 가능성, 보증 구조를 본다. 공급 부족 논리만으로는 자금이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입주 물량은 계속 줄고 있어 새 공급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돈은 사업성이 증명된 곳에만 간다. 금융당국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PF 위험가중치가 높아지고, 결국 이자 부담도 커진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 개발 공약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다”라며 “얼마나 크게 짓겠다는 약속보다, 실제로 누가 자금을 조달하고 금융권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비 조달 계획과 분양 수요 근거가 없는 개발 공약은 선거가 끝나면 공중에 뜬 약속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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