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민생 중심 62.8조 편성…예타 완화로 지방 SOC 숨통
노후 대응 강화됐지만 미래형 인프라 투자 비중은 여전히 과제
단기 경기대응 넘어 AI·에너지·교통 연계한 국가경쟁력형 SOC 필요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2026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찬성 248인, 반대 8인, 기권 6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기범 기자] 정부가 2026년 국토교통부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늘리고 SOC 예타 제도까지 손질했지만, 시장에서는 단기 대응을 넘어 중장기 투자 방향까지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후 대응 강화됐지만…국가경쟁력형 투자 더 키워야
2026년 국토부 예산은 국민안전, 건설경기 회복, 민생안정, 균형성장, 미래산업 육성 등 5대 분야를 중심으로 62조8000억원 규모로 확정됐다. 정부안보다 3000억원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안전 인프라 강화에 무게를 두고 공항시설 개선과 관제탑 건설, 국도 안전 유지, 위험도로·병목지점 개선, 싱크홀 대응 예산을 반영했다. 철도 55개 사업에 4조6000억원, 도로 201개 사업에 3조5000억원을 투입하고, 지방 준공 후 미분양주택 5000호 매입 예산 4950억원도 편성했다.
공적주택 19만4000호 공급, K-패스 확대, AI 시범도시와 국토교통 R&D, 그린리모델링, 해외건설 지원 예산도 포함됐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투자 방향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산 한국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총지출 확대는 건설시장 회복과 경기 대응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SOC 예산 21조원 가운데 약 12조원이 안전 강화에 집중돼 있어 신규 인프라 확충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최 부연구위원은 노후 인프라 대응 예산 확대는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인프라와 간선 교통망, 지역 산업기반 인프라 같은 미래 대응형 투자 비중을 더 키워야 한다고 봤다. AI·데이터 기반 국토관리, 스마트 교통체계, 지역 산업거점 인프라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분야인 만큼 예산의 전략적 재배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출퇴근 시간 단축, 교통 접근성, 의료·교육 인프라, 기후재난 대응 역량은 모두 SOC를 통해 구현되는 구조적 복지 영역”이라며 “복지예산 확대와 함께 체감형 인프라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은 현금성 지원보다 교통망과 생활 SOC, 의료·교육 인프라 확충이 인구 유출 방지와 지역 활력 회복에 더 직접적이라는 분석이다.
예타 완화로 지방사업 숨통…공사비·집행력은 숙제
정부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SOC 예비타당성조사 개편안은 지방 인프라 사업의 문턱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구감소지역은 지역균형 가중치를 5%포인트 높이고, 예타 대상 기준도 총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 국비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상향했다.
지역특수성과 미래 성장잠재력 같은 정성 평가항목도 새로 반영한다. 1999년 도입된 예타 제도는 1064개 사업을 심사해 382개, 209조3000억원 규모의 저효율 사업을 걸러냈지만, 조사에 1~2년이 걸리고 경제성 평가 비중이 커 적기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개편에는 노후 시스템 재구축 사업 예타 면제, 공사비 단가 현실화, 컨설팅 기능 신설, AI 정보화 사업 평가기간 단축 등도 담겼다
건설업계는 이번 개편이 공공 SOC 발주 회복과 지방 사업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최 부연구위원은 “예타 기준 상향은 중소 규모 도로와 철도 연계시설, 항만 보강, 생활 SOC 추진을 촉진할 수 있다”며 “지방 건설시장에서는 소규모·중규모 인프라 사업의 조기 집행이 수주 기반을 넓히고 공공 물량 공급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구감소지역에서 경제성 비중을 낮추고 지역균형 비중을 높인 것은 낮은 B/C로 반복 탈락했던 지방 도로망, 접근교통, 산업단지 연계 인프라, 관광·문화 기반 SOC의 문턱을 낮추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제도 완화만으로 사업 집행이 곧바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예타 이후에도 예산 편성, 총사업비 협의, 설계, 인허가, 지방비 매칭, 보상 등 후속 절차가 남아 있어서다.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재정투자와 지방정부의 집행 역량이 함께 뒷받침돼야 실제 발주와 착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사비 현실화 역시 세부 체계가 중요하다. 자재비와 노무비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예타 단계 공사비 기준이 현실과 어긋나면 사업성이 과소평가되고, 이후 총사업비 증가와 설계 변경이 반복될 수 있다. 최 부연구위원은 공사비 단가의 주기적 갱신과 공종별 세분화, 물가 변동을 반영하는 조정 체계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봤다.
정성평가 확대에 따른 과제도 남아 있다. 지역특수성과 미래 성장잠재력을 반영하는 방향은 지방에 유리하지만, 기준이 불명확하면 정치적 재량이나 선심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평가 매뉴얼과 사후 성과점검 체계를 함께 마련하고, 컨설팅단도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지방의 프로젝트 개발 역량을 키우는 제도로 안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년 국토교통부 예산이 안전·민생 지원에 무게를 둔 가운데, 미래형 SOC 투자 확대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단기 경기대응 넘어…국가경쟁력형 SOC로 전환해야
최산 한국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6년 예산 확대와 SOC 예타 제도 개편이 건설경기 회복과 사업 추진에 도움이 되지만, 여전히 단기 경기 대응과 절차 개선에 무게가 실렸다고 봤다. 그는 이제는 경기 부양을 넘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SOC 투자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부연구위원은 글로벌 주요국이 SOC를 단순한 경기부양 수단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산업구조 전환, 기술 패권 확보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미국은 인프라투자 및 일자리법을 바탕으로 1조20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며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고, 최근에는 AI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에너지 공급망 등 미래 산업 기반 인프라 투자 비중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노후 도로·교량·전력망·수자원 인프라의 회복력을 높이는 동시에 AI 인프라, 스마트그리드, 디지털 교통체계 같은 차세대 산업 기반까지 함께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초당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권 교체와 무관한 중장기 투자 지속성도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회복력 중심 투자 방향은 유사하지만, 미래산업 혁신 인프라와 안정적 투자체계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봤다. 2026년 국토부 예산도 노후 인프라 유지보수와 안전 투자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AI·데이터·에너지·스마트 인프라 등 미래산업과 직결되는 SOC 투자 비중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최 부연구위원은 디지털 인프라 투자가 개별 사업 단위로 분산돼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과 투자 집중도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AI 기반 국토관리,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 연계 투자, 스마트 교통·도시 운영 시스템 같은 산업·인프라 결합형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한국의 SOC 투자가 연도별 예산 편성과 경기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큰 구조라는 점도 한계로 꼽았다. 디지털·에너지·AI 인프라 중심의 중장기 SOC 투자 로드맵을 마련하고, 정권이나 경기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투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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