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짓밟는 ‘정치입법’
정병호 정치부 기자
2026년 10월 11일(일) 21:30
최근 정치권에서 5·18민주화운동이 또다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에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법을 고치겠다는 어거지까지 등장했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최근 내놓은 5·18 관련 법률 개정안들을 보고 드는 의문은 하나다. 법안의 골자는 5·18 관련자 인정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 법을 적용하려면 개정의 필요를 인정하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발견됐느냐 여부다.
결론적으로 그런 것은 없다. 5·18은 진상규명과 사법적 판단,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국가폭력의 실체를 확인해온 역사다. 남은 진실을 밝히는 것과 확인된 역사의 토대를 흔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들 법안은 그동안 이 의원이 보여준 행보와 뗄 수 없다. 그가 지난 8월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는 5·18을 ‘소요’와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그가 5·18의 인정 기준을 다시 손대는 법안을 내놨다. 5월을 ‘정치 입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여기에 영화 ‘암살자(들)’ 논란까지 겹쳤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당시 공식 발표의 빈틈을 좇으며 다른 가능성을 묻는 작품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역사 왜곡’으로 규정했다. 상영 중단 주장까지 나왔다. 이 의원도 “5·18에 대해선 성역이라며 건들지 말라는 좌파 진영이 지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한다”고 가세했다.
두 사안을 같은 ‘역사 해석의 자유’라는 저울에 올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극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문제와, 국가와 사법부가 판단해온 5·18의 역사적 성격을 다시 축소하려는 입법을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더구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영화에는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5·18 논란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자가당착이다.
이런 주장을 하기에 앞서 역사를 정쟁의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소환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에는 ‘역사왜곡’을 외치고 5·18에서는 ‘성역화’를 문제 삼으면 진영 간 경계는 선명해질 것이다. 그 끝에는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퇴행 정치가 있다.
역사를 연구하고 질문하는 것과 정치적 필요에 맞춰 역사의 경계를 다시 긋는 것은 다르다. 그 선을 법률로 그으려 한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치가 5·18을 다시 보수와 진보의 전선으로 끌어내는 순간 사라지는 것은 진실에 대한 질문이다.
5·18을 축소하는 데 반드시 5·18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 ‘어디까지가 5·18인가’를 계속 묻고 인정의 경계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5·18을 다시 광주 안으로, 특정 피해자 안으로 좁혀 넣으려는 시도는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렵게 넓혀온 기억의 영토를 다시 줄이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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