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의 한 KB국민은행 모습. 연합뉴스
KB국민은행이 주택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3억 원으로 낮추면서 잔금을 앞둔 실수요자들의 자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계약금이나 약정금을 이미 지급한 매수자들은 부족해진 대출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혼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서울·수도권 규제지역에서는 토지거래허가 절차를 밟기 위해 건넨 약정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두고도 불안이 커지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은 10일부터 전국의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한도를 최대 3억 원으로 제한했다. 최근 대출을 활용해 내 집 마련에 적극 나섰던 맞벌이 고소득 30대 부부와 신혼부부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거래 현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서울과 수도권 중저가 주택 시장의 침체를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성북구와 강북구 일대 중개업소에는 KB국민은행의 대출 한도 축소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진 8일부터 이날까지 계약을 진행 중인 매수자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이들 지역에는 정부의 대출 총량 규제를 상대적으로 덜 받아 최대 6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15억 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가 많다. 최근에는 30대 직장인 실수요자의 매수 움직임도 활발했다.
현장에서는 매수자가 줄어든 대출 한도 탓에 잔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계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례가 많았다. 길음동 A중개업소 대표는 “전용 59㎡ 소형 아파트를 11억 원에 사기로 한 매수자가 약정금 5000만 원을 집주인에게 내고 토지거래허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대출이 축소되면 허가가 나와도 잔금이 모자란다며 해법을 물었다”며 “일단 최대한 다른 대출을 알아보는 중이지만 매수자 입장에서는 이대로 약정금까지 잃는 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근 B중개업소 대표도 “토지거래허가가 나와서 본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매수자가 대출 불안을 호소해 일단 계약을 며칠 미루기로 했다”며 “주담대는 통상 잔금 대출 1~2개월 전에 받는 경우가 많기에 계약은 하되 잔금 일정은 수개월 뒤로 미뤄놓았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사전 예고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미아동 C중개업소 대표는 “30대 신혼부부들이 통상 전세 얻을 돈 정도밖에 없지만 전세 물건은 없고 월세 가격도 오르니 차라리 집을 사고 대출 이자를 감당하겠다는 경우가 많았다”며 “전세 물건도 줄었는데 대출까지 조이니 ‘너무한다’는 원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금융권의 대출 축소는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과 신혼부부에게 특히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강북권에서도 10억 원을 넘는 상황에서 축적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30대는 금융권 대출 외에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할 수단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까지 막힌 가운데 30대가 주택을 살 때 조달하는 자금의 40%는 대출이 차지하고 있다. 노원구와 중랑구 등에서는 이 비중이 60%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기존에도 대출 총액 제한의 영향을 받던 강남3구 등 고가 주택 밀집 지역보다 최근 거래량이 늘었던 서울·수도권 중저가 지역에서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한도 제한에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도 포함된 데다 기존 주택을 처분한 뒤 새집을 사는 갈아타기 수요 역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거래 현장에서는 향후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로 가계약을 포기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계약을 유지하더라도 잔금일을 늦추거나 다른 금융회사의 대출 상품을 알아보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중도금·이주비·잔금 등 집단대출과 소득 요건이 적용되는 디딤돌대출 등 기금대출, 경락잔금대출은 이번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주택 수요가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를 덜 받는 청약시장이나 부동산 경매시장으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올여름 경기도에서만 신규 아파트 약 1만 9000가구가 분양될 예정인 만큼 대출 의존도가 높은 30대 실수요자가 기존 주택 매매보다 청약시장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담대 한도 축소가 주택 거래와 가격 상승세를 어느 정도 진정시킬지를 놓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대출 비중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거래량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시장에 남아 있는 유동성과 전월세 매물 부족이 매수 수요를 계속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대출 의존도가 높은 서울 중하위 지역과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거래가 둔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주식시장 호황 등으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과 전월세 매물 부족에 따른 매수 전환 움직임 등으로 거래 축소가 큰 폭의 거래 하락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고 짚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