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집 손보고 꾸며 ‘서상카페’ 오픈
바리스타교육 받은 주민들이 운영
옛 중앙이용원은 ‘이발테마관’ 변신
의자·난로 등 추억 속 모습 그대로
연당지 복원…쉼터 역할 ‘톡톡’
경산시 서상동과 삼남동, 중방동 일대에 자리한 서상길청년문화마을 전경. 한때 경산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거치며 주민 공동공간과 카페 등이 들어선 마을로 변화했다. 김선국 사진작가
나지막한 주택들이 다닥다닥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담벼락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된 집과 가게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은 반듯하게 뻗은 큰길과는 또 다른 걷는 재미가 있다.
지금은 조용한 주택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경산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서상길 일대는 한때 경산의 중심지였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경산역이 들어선 데다 경산과 청도를 잇는 옛 국도 25호선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읍사무소와 등기소, 경찰서, 보건소, 농촌지도소 등 주요 관공서도 이 일대에 자리했다.
약 700m에 이르는 서상길은 경산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였을 만큼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요 관공서가 이전하고 서상길을 지나던 국도 25호선도 다른 길로 옮겨가면서 서상길 일대는 점차 활기를 잃었다.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는 빈집도 늘어났다.
마을 공동거점 시설인 서상길 어울림센터.
멈춰 있던 마을에 다시 변화가 시작된 것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추진되면서다. 2018년 서상길 일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청년문화마을 주민협의체가 중심이 되어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했다. 관에서 건물을 짓고 시설을 조성하는 데 그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마을에 필요한 공간과 사업을 고민하고 운영하는 주민 주도형 도시재생이었다.
옛집을 리모델링해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 카페 ‘서상카페’.
그 과정에서 옛 공간에도 새로운 역할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마을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서상카페’다. 새 건물을 짓는 대신 사람들이 생활했던 옛집의 구조와 흔적을 최대한 살려 카페로 꾸몄다.카페가 들어선 건물은 과거 경산 지역의 최고 부자로 알려진 ‘안부자’ 우석 안병규의 생가다. 한때 99칸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던 안부잣집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대문채와 안채, 사랑채, 창고 등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근대한옥은 전통 한옥이 근대 주택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2월 경상북도 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경산 삼남동 근대한옥’으로 등록된 이들 건물은 191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전통 한옥의 모습과 근대 건축 요소, 당시 유행했던 일본식 주거 양식의 특징 등을 함께 보여준다. 찬찬히 살펴보면 방과 방을 잇는 복도, 미닫이문, 다다미가 깔렸던 자리, 실내 목욕 공간 등 당시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집 한편에는 장독대가 자리하고 지붕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기와가 얹혀 있다. 카페 뒤편 돌담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상카페 입구
도시재생사업을 통한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원래 집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 오래된 건축물을 복원하기 위해 대목장과 소목장을 수소문해 작업을 진행했다.
카페를 운영할 사람도 마을 안에서 찾았다. 서상길 어울림센터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양성교육을 진행했다. 단순한 취미 수업이 아니라 교육을 받은 주민 가운데 실제 카페 운영에 참여할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주민들은 커피를 내리는 방법부터 카페 운영에 필요한 실무까지 익혔다.
서상카페 뒤편에 자리한 공유부엌 ‘서상부엌’.
카페 뒤편에는 공유부엌인 ‘서상부엌’이 있다. 조리시설을 갖춰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고기나 생선 등 냄새 때문에 집에서 조리하기 부담스러운 음식도 만들 수 있고, 와인 모임이나 요리·음료 관련 교육 장소 등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서상부엌은 카페에서 예약을 받아 시간제로 대여하고 있다.
카페를 나와 골목을 조금 더 걷다 보면 연당지가 나온다. 연당지는 과거 안부잣집 후원에 있던 연못이다. 남천에서 흘러나온 실개천은 주변 논밭과 과수원을 지나 삼남동 중심부를 관통해 연당에 잠시 머문 뒤, 서상동을 거쳐 다시 남천으로 이어졌다. 도시화 과정에서 옛 실개천은 대부분 복개돼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복원된 연당지에는 정자와 나무다리가 조성돼 아담한 정원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정자에는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쉬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956년 문을 열어 2014년까지 운영된 옛 이발소 ‘중앙이용원’.
옛 서상길의 모습을 간직한 또 하나의 공간은 ‘경산이발테마관’이다. 이곳은 1956년 문을 열어 2014년까지 실제 이발소로 운영됐던 ‘중앙이용원’을 보존해놓은 곳이다. 경산시는 원도심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중앙이용원과 인근 부지를 매입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 이발테마관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이발하는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았으며 폐업 당시 사용하던 이발 의자와 가위, 난로와 주전자, 장기판 등도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 담벼락을 따라 다양한 만화와 웹툰을 활용한 벽화들이 이어져 있다.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담벼락을 채운 벽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다양한 만화와 웹툰 작품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어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산 서상길 골목 담벼락을 따라 다양한 만화와 웹툰을 활용한 벽화들이 이어져 있다.
야구만화 ‘독고탁’으로 잘 알려진 고 이상무 화백의 작품 속 인물을 그린 벽화도 눈길을 끈다. 마을의 옛 모습과 이야기를 웹툰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도 볼 수 있다.
웹툰 전시·교육·체험공간 경산웹툰창작소.
전시·작업실 갖춘 웹툰창작소 운영
골목 골목 벽화 보는 재미도 ‘쏠쏠’
17~18일엔 경산만화축제 개최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방문객 증가 따라 상권도 살아나
골목 한편에는 웹툰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경산웹툰창작소도 자리하고 있다. 서상길 청년문화마을 조성사업과 연계해 조성된 이곳은 2024년 11월 문을 열었다. 지상 3층 규모로 전시실과 작가 작업공간, 스튜디오, 교육실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직접 만화를 그려볼 수도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웹툰 교육부터 시민들이 참여하는 웹툰체험 프로그램, 어르신들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내는 시니어 웹툰 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서상길의 옛 모습부터 현재까지의 변화 과정을 담은 ‘웹툰으로 보는 서상길’
서상길에서는 만화를 주제로 한 축제도 열린다. 2024년 처음 시작된 ‘경산만화축제’는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오는 17~18일 열리는 축제에는 작가 토크콘서트와 팬사인회, 드로잉 퍼포먼스, 코스프레 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국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만화·웹툰 창작 경연대회도 열린다. 웹툰창작소와 함께 만화축제도 해마다 열리면서 서상길은 만화와 웹툰을 즐기고 체험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재생사업 이후 골목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주변 환경이 정비되면서 카페와 음식점, 미용실, 옷가게 등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서상길에는 오래된 것과 새로 생긴 것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옛집에는 다시 불이 켜지고 골목에는 새로운 활기가 더해지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이 직접 공간을 운영하고 가꿔가면서 마을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오랜 시간을 품은 서상길은 그렇게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주오·진소현기자
<우리 마을은>
이석규 운영위원장
이석규 운영위원장 “서상카페 운영 활성화…수익은 주민에 환원”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여기예요. 마을이 점점 쇠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죠. 다시 마을을 살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석규 서상길청년문화마을 운영위원장에게 서상길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이후 외지에서 생활하다 퇴직 무렵 고향의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꾸려가는 사업의 취지에 공감해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약 5년간 사업을 이끌었다.
이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커피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본업과 별개로 25~30년 전부터 취미로 커피를 즐기며 로스팅도 직접 공부했다. 커피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당시에는 일본 잡지를 구해 사전을 찾아가며 관련 글을 읽었다. 그렇게 쌓은 지식과 경험은 서상카페를 운영하는 데 쓰이게 됐다.
카페 운영을 준비하면서 주민들에게 직접 바리스타 교육도 했다. 별도의 강사료를 받지 않고 커피 내리는 법 등을 가르쳤다. 단순한 취미 교육보다는 실제 카페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양성하는 데 목적을 뒀다. 여러 차례 교육을 거쳐 현재는 주민 4명이 카페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서상카페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새로운 메뉴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계절에 맞는 메뉴를 선보이고 어르신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차부터 젊은 층이 선호하는 음료까지 선택의 폭도 넓혀가고 있다.
카페 운영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다시 마을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서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그 수익으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 이 위원장이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다. 고령층이 많은 서상길에는 어르신들이 골목을 오가다 잠시 앉아 쉴 만한 곳이 필요하다고 봤다. 편안하면서도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는 특색 있는 벤치를 만들어 골목 곳곳에 놓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도시재생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꾸준히 활용하는 한편 사람들이 서상길을 찾아올 이유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카페에 새로운 메뉴를 더하고 주민들이 쉴 공간을 마련하는 것처럼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주민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나가고자 한다.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가꾸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과정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진소현기자 sohyun@idaegu.co.kr
<가볼만한 곳>
남매지
◇남매지...
밤에도 아름다운 수변 산책명소
경산 도심에 자리한 남매지는 시민들이 산책과 휴식을 위해 즐겨 찾는 수변공간이다. 과거 농업용 저수지였던 남매지를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면서 지금은 경산을 대표하는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남매지 주변에는 저수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수변 산책로를 비롯해 운동시설과 자전거 트랙, 연꽃식물원, 관찰학습원, 수상광장 등이 조성돼 있다. 산책로가 비교적 평탄해 저수지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둘러보기 좋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도 남매지의 볼거리다. 봄에는 산책로 주변으로 벚꽃이 피고 여름이면 연꽃식물원 일대에 연꽃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상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연꽃과 다양한 수생식물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해가 진 뒤에는 음악분수가 남매지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된다. 음악과 조명에 맞춰 물줄기가 움직이는 분수쇼가 펼쳐지고 저수지 주변에도 불이 들어온다. 낮에는 수변을 따라 산책을 즐기고 밤에는 음악분수와 야경을 감상할 수 있어 가볍게 찾기 좋은 도심 속 산책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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