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만 알았던 반도체산업이 사람의 생명을 꺼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19년 전 고 황유미씨를 통해 알려졌다. 그 이후 지금, 반도체산업을 묻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은 폐수처리시설 없이 몇 년간 공장을 운영했다. 대기오염 방지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오랜 기간 공장을 운영했다. 삼성처럼 이름난 기업이 그 거대한 공장을 지으면서 이처럼 기초적인 조치를 소홀히 했다니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삼성의 본사 환경안전보건센터 등 삼성 내부에서 작성한 문건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삼성에서 40년 넘게 근무했던 공익 제보자가 자신이 직접 작성했던 문건을 포함해 제보한 내용들이다. 반올림은 2024년 이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베트남의 젠더가족환경개발센터(CGFED), 국제유해물질추방운동네트워크(IPEN)와 함께 발표했다.
민원이 제기되고 문제가 되자 삼성은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개선하는 대신 도장·도금 등 유해물질을 취급하고 오염물질을 배출하던 공정을 협력업체로 외주화해 버렸다. 삼성 협력업체 주변에 먼짓덩어리들이 마치 눈처럼 떨어지는 영상, 인근 지역에 몇 년 사이 암 환자와 호흡기질환자가 크게 늘었다는 소식 등이 베트남 현지 언론에서 보도됐다. 삼성은 독성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외주화를 통해 더 많은 곳으로 문제를 확산한 것이다. 삼성의 1차 협력업체 안에서 일하던 2차 협력업체 노동자 37명이 메탄올에 중독되고 한 명이 사망하는 참사도 있었다.
지난해 9월30일, 유엔 특별보고관 여덟 명이 삼성 본사와 베트남 삼성, 한국과 베트남 정부에 각각 공동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삼성 베트남 공장에 만연한 인권 및 환경 문제들을 삼성이 자체 조사로 확인하고서도 바로잡는 데 실패했음을 지적했다.
삼성은 그해 11월27일자로 특별보고관들에게 답변서를 보내 그들이 지적한 문제들은 사실이 아니며 일부 문제는 사실이지만 즉시 시정했다고 변명했다. 현지 조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삼성의 내부 문건에서 지적된 문제들인데도 사실이 아니라니, 앞으로 대체 누가 삼성의 자료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현지에서는 여전히 협력업체 공장들에서 함부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눈과 코로 직접 확인되고 있는데도 문제가 즉시 시정됐다니, 너무도 무책임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두루뭉술하게 답하지 말고 무엇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즉시 시정’된 문제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
삼성의 답변을 믿고자 해도 아무 근거가 없다. 가령 삼성은 베트남 공장에서 오염공기와 폐수 처리에 대한 우려가 해소됐음을 입증할 만한 오염물질 배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달리 베트남에는 법이 없으니 하지 않는 것이다. 삼성이 해외공장을 운영하는 이유가 싼 임금만이 아니라 허술한 환경안전보건규제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삼성이 줄곧 주장해 왔던 원칙과 다르다. 삼성은 ‘현지 국가의 법과 국제기준이 상충할 경우 더 높은 기준을 따를 수 있도록 방법을 검토’한다고 ‘삼성전자 인권 기본원칙’ 등을 통해 밝혀 왔다. 삼성은 말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스스로 주장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며 함부로 침해당하면 안 되는 인권이다(2022년 유엔 총회). 또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은 중요한 노동기본권의 하나다(2022년 국제노동기구). 하지만 베트남 삼성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러한 국제 규범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베트남 삼성과 그 공급망에서 화학물질 관리를 소홀히 해 발생한 인권 침해는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모두의 문제다. 전자산업의 발전이 한국에 남긴 아픈 상처가 베트남에서건 그 어디에서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삼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권을 존중한다는 기업의 미사여구와 실제 그들의 행태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하곤 한다. 최고 경영진의 자발적 각성으로 이러한 간극을 메울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품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충분히 많은 상처를 경험했다. K-전자산업의 생산 거점이 해외로 이동하면서 K-직업병과 K-공해까지 옮겨 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공급망 책임법’ 등 해외 사업장에서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제도가 꼭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노동조합·시민사회·언론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한국 전자산업 직업병의 아픈 역사를 다른 나라에서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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