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일석 작가)는 1980년대 초반 르포라이터(르포작가)로 활약했었다. 그때, 일부 일간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 또는 정경문화 등 월간잡지 등에 기고했다. 주 기고처는 여성중앙 등 월간 여성지 였다. 서울신문에서 발행했던 주간잡지였던 선데이서울에도 장기간 연재했었다. 이런 기고문들을 모아 ‘이색지대’라는 책을 발간했었다.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1980년 5.18 전후의 사회적인 격변 속 민중(民衆)들의 애환이 기록됐다. 필자는 당시 많은 제비님들과 꽃뱀님들을 마주했다. 제비님-꽃뱀님이라는 존칭을 쓰는 이유는, 그들은 나와 다를바 없는, 아주 가난했던 민중(民衆)들-서민(庶民)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6.25 전쟁, 베트남전 참전, 중동개발 참여 등으로 많은 남성들이 사망, 또는 해외 취업 등으로 성비(性比)가 심각하게 파괴됐다. 남자의 수가 여성에 비해 현저하게 적어졌다. 반면에 여성 수가 많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유흥업 속 등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상대로 돈을 갈취하는, 일명 ‘제비들’이 많았다. 사회학적으로 이런 시대, 성비(性比)의 파괴로 남성들이 여성을 상대로 접대하고 수익을 챙기는, 소위 돈을 벌어들이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시대, 제비(남자들)들의 역할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6.25 전쟁, 베트남전 참전, 중동 건설 붐 등은 남성 인구의 유출과 사망을 유발하여 특정 시기 물리적·사회적 성비(性比) 불균형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었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와 급격한 경제 성장기 속에서 등장한 소위 ‘제비’라 불리는 남성 접대 문화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당대의 사회 구조적 모순과 가치관의 혼란을 투영하는 사회학적 현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들의 사회학적 역할과 의미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전쟁과 해외 근로로 인해 수많은 가정에서 남성 가장이 부재하거나 유명을 달리했다. 이로 인해 경제적·심리적 중압감을 홀로 짊어지게 된 여성들이 늘어났다. 가부장적 가치관이 지배적이던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위로해 줄 정서적 지지 기반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 시기 유흥업소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남성들은 전통적인 성역할이 공백 상태에 놓인 여성들에게 일시적인 정서적 유대감과 위안을 제공하는 대리자 역할을 하며 시장을 형성했다.
전통 사회에서 유흥과 유희의 주체는 주로 남성이었고, 여성은 소비의 대상에 머물렀다. 그러나 남성 인구의 감소와 중동 개발 등으로 인한 민간 자본의 유입은 일부 여성들에게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 주었으며, 이는 유흥 문화의 주 소비자로 여성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남성이 여성을 접대하고 재화(돈)를 얻는 구조는 기존의 강고했던 남성 중심적 지배 구조와 성역할을 표면적으로 뒤집는 현상이었다. 다만, 이는 건강한 여성 해방이나 성적 주체성의 확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퇴폐적인 유흥 자본주의 안에서 왜곡된 형태로 발현되었다는 한계를 닌다.
급격한 산업화와 개발 시기는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물질만능주의를 낳았다. 땀 흘려 일하기보다 신체적 매력과 감정 노동을 통해 손쉽게 부를 착취하려는 남성들의 등장은 사회의 급격한 가치관 붕괴(아노미 상태)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이들은 여성의 자금을 갈취하거나 사기를 치는 등 범죄적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이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제한적이었던 사회에서 기형적인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 했던 시대적 어두운 이면을 반영했다.
이 시기 '제비'로 대변되는 남성 접대업의 확산은 인구학적 성비 파괴가 가져온 정서적 공백, 급격한 경제 성장이 낳은 물질주의, 그리고 과도기적 성역할의 혼란이 맞물려 나타난 시대적 병리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1980-90년대 경제적으로 급성장, 졸부(猝富)들이 많아졌다. 졸부들의 탄생으로 유흥가에서는 졸부들의 돈을 챙기려는 일명 꽃뱀(돈을 밝히는 여성 접대부) 들이 설쳤다. 한국은 1980-90년대 경제적으로 급성장, 졸부(猝富)들이 많아졌다. 졸부들의 탄생으로 유흥가에서는 졸부들의 돈을 챙기려는 일명 꽃뱀(돈을 밝히는 여성 접대부) 들이 설쳤다.
1980~1990년대 한국 사회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전무후무한 압축 성장을 겪으며 부동산 폭등과 주식 시장 호황으로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졸부(猝富)' 계층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의 무분별한 과시욕과 물질만능주의는 유흥 산업의 기형적인 팽창을 불러왔고, 이를 노린 '꽃뱀' 사기 등 다양한 범죄와 부작용을 낳으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당시 이 현상이 내포했던 주요 사회적 갈등과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황금만능주의와 도덕적 해이정당한 노동이나 기술 개발이 아닌, 부동산 투기나 정경유착성 이권 개입으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늘어났다. 이는 사회 전반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황금만능주의(물질만능주의)를 확산시켰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도덕성과 윤리 의식보다 금전적 성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왜곡된 가치관이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졸부들의 주된 부의 과시 수단은 향락과 소비였다. 룸살롱, 고급 요정, 심야 디스코텍 등 퇴폐 유흥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의 유흥 자금을 노린 조직폭력배와 사기 집단이 결탁했다. 졸부들의 허영심, 성적 욕구, 그리고 사회적 체면을 약점으로 잡고 접근하여 거액의 돈을 갈취하는 혼인빙자사기, 공갈협박 사건이 언론을 자주 장식했다.
유흥가로 유입된 일부 여성 접대부들 역시 노동을 통한 정상적인 소득 창출보다는, 졸부들과의 관계를 통해 단기간에 신분 상승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시대적 병리 현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됐다. 평범한 직장인과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사기 힘든 현실 속에서, 유흥가에서 하룻밤에 수백만 원을 탕진하는 졸부들의 행태를 보며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이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의 근성의욕을 꺾고, 사회 지도층과 부유층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낳아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오렌지족', '야타족' 등 졸부 2세들의 분별없는 과소비와 일탈을 연일 비판했다. 외제차를 몰며 유흥가를 누비는 이들의 모습은 공동체적 연대감을 깨뜨렸다. 이러한 무절제한 소비 행태와 거품 경제는 결국 1997년 외환위기(IMF)라는 국가적 재앙을 맞이하는 내적 취약점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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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문일석. 시인. 신문사(본지) 발행인. AI협업-칼럼니스트(본 칼럼 가운데 일부는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내용이 담겨있음을 밝힌다.). '비록 중앙정보부(전3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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