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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상 읽기]물대포가 사라진 자리

백남기 농민의 10주기를 맞았다. 최루액을 잔뜩 푼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외인사’가 분명했지만, 박근혜 정권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검경 합동으로 부검영장을 무려 여섯 번이나 들고 와 이를 막느라 41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세상 읽기]물대포가 사라진 자리

백남기 농민의 10주기를 맞았다. 최루액을 잔뜩 푼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외인사’가 분명했지만, 박근혜 정권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검경 합동으로 부검영장을 무려 여섯 번이나 들고 와 이를 막느라 41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칠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목숨을 잃었어도 경찰은 안타깝다는 말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심지어 진압의 총책임자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농협금융지주가 소유한 NH저축은행의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재주껏 경력 팔아 호의호식하더라도 ‘농(農)’이라는 그 한 글자는 피하고 살았어야 하지 않나.

백남기 농민이 외쳤던 ‘생명평화’의 세상은 여전히 요원하나, 고인의 희생으로 평화로운 집회가 보장되고 물대포에 생명을 잃을 두려움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포’의 위력에 가까운 물대포를 잘못 맞아 고막과 홍채가 찢어지고, 의식을 잃기도 하면서, 생명을 앗을 수 있는 살상무기에 가까워 오래도록 인권운동가들이 퇴출을 외쳐왔다. 2005년에는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외치던 홍덕표 농민이 경찰 방패에 맞아 사망했고, 진압 과정에서 쫓기던 전용철 농민이 뇌출혈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유족에게 직접 사과하고 경찰청장이 사직했다. 이후 직접적인 진압 방식 대신, 차벽과 살수차를 이용한 시위진압이 자주 동원됐다. 하지만 물대포는 차량 내부에서 모니터를 통해 방향과 강도를 조절하며 쏘기 때문에 직접 가해한다는 감각과 차단된다. 탱크 안에 들어가 포를 발사하고, 궤도차량에 신체가 짓이겨져도 살육감각이 없어 탱크가 현대 전쟁의 핵심 무기로 등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생명을 잃고 나서야 살수차는 일반 집회·시위 현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한국 한정판’일 뿐 여전히 해외에 ‘K치안’을 내세워 전 세계 35개국에 최루탄과 살수차, 진압기술을 풀패키지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 대상국 중 상당수는 시민을 억압하는 정부이고, 심지어 한국산 최루탄은 이스라엘로도 수출된다. 지난 10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시민운동가들이 한국산 최루탄이 인도네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무고한 시민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증언했다. 한국의 시위 현장에 촛불이 반짝거릴 때, 타국의 시민들은 한국산 진압무기에 떨고 있다.

한국도 안심할 수는 없다. 여전히 살수차는 소요사태가 발생하거나 국가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경우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남아 있다. 2023년 윤석열 정권에서는 건설노조 집회에 물대포 재배치를 검토했고, 실제로 최루액 분사기까지 동원됐다. 다행히 실제 사용하지 않았으나, 그 장면은 위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정권의 지팡이가 되어 최루액과 물대포를 난사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국제뉴스에 나오는 최근의 유럽 시위에 최루탄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장면을 보며 백남기 농민의 그날이 떠올랐다. 1960년에는 김주열 열사가, 1987년에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으로 생명을 잃었다. 너무 많은 생명이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죽고, 방패에 찍혀 죽은 뒤에야 얻은 평화다. 죽은 자가 겨우 구해낸 불완전한 지금의 평화를, 생명평화 일꾼 백남기 농민 10주기에 다시 생각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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