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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李, 이제 만기친람보다 '시스템 고치는 대통령' 지향해야

최근 하정우 청와대 인공지능(AI)수석을 부산지역 보선에 차출하는 문제를 놓고 당과 다른 방향으로 언급한 것도 그렇다. 아무리 당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면 당청간 갈등이 커질...

李, 이제 만기친람보다 '시스템 고치는 대통령' 지향해야

컨트롤타워 역할 부각했지만 ‘과잉 책임’ 우려와 공직사회 수동성 키워

세계 10위 규모 경제대국, 대통령 개인기 아닌 시스템이 일하도록 해야

김대중의 ‘현안 챙기기’노·무현의 ‘거칠고 잦은 발언’ 반면교사 삼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초청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국정 운영이 계속되고 있다. 정책 현안을 거론하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재해나 산사태, 외국인 노동자 처우 등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깨알같이 지시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덕분에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고, 실행력 있는 대통령으로 각인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70%에 근접하는 것은 그 효과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만기친람은 그 어떤 전임자와도 비교할 수 없다. 분야에도 예외가 없고, 발언 수위도 차원이 다르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SPC 공장에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회의를 주재하고 기업 총수를 공개 질책했고, 포스코이앤씨 건설 현장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추가 사고 발생 시 건설면허 취소까지 경고했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강릉을 방문해서는 대책은커녕 문제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시장을 면전에서 질책했다. 부처별 업무보고에서도 복잡한 사안을 일일이 짚어가며 기관장들을 긴장시켰다.

대통령이 직접 물가와 금리, 기업 투자, 부동산 정책 방향을 상세히 언급하면서 시장에 신호를 보내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금융당국이 이자로 폭리를 취할 때 그 수장들을 불러 강하게 비판하면서 포용 금융을 주문했다. 부동산 메시지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최근에는 불필요한 기업 보유 부동산에 대한 경고로까지 이어졌다. 허황된 공약이라며 비판받던 ‘주가 5000시대’를 실현시킨 것은 누가 뭐래도 이 대통령의 업적이다. 보수층에서도 “일은 잘한다”고 평가들이 나온다.

하지만, 취임 1주년을 앞둔 지금 이런 국정운영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필자의 한 지인은 이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중앙과 지방의 공무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번갈아가며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서민을 보호하고 기업의 애로를 해소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는데, 공무원들이 책잡히지 않을까 두려워 과잉대응한다는 것이다. 선의로 내린 대통령의 지시가 하부에서는 민폐로 변질된 셈이다.

이 대통령이 특정 사안을 콕 집어 해결책을 제시하는 순간, 중간 단계의 정책 설계와 조정은 생략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자율적으로 정책을 제안할 이유가 없다. 그저 ‘VIP가 말씀하신 대로만’ 움직이는 관성이 형성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가장 자주 듣던 게 “정부 부처들이 온통 청와대만 쳐다본다”는 말이었다. 부처에서는 “DJ가 어련히 대책을 생각해 놨을 테니 기다리자”는 분위기가 굳어져 있었다. 대통령의 발언이 실시간으로 일선에 전달되는 지금 구조에서는 그 때보다 몇배나 이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적극적인 행정을 주문하고 있다. “수사와 감사로 공직사회를 위축시키지 말라”고 당부한 바 있고, 최근엔 공무원들을 향해  “안 된다”보다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현안에 대한 구체적 지시가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은 잊고 있다. 국무회의 생중계 장면을 보면 이 대통령 혼자만 빛난다. 이 대통령의 질문에 급습당한 장관들은 그 말에 맞춰 대답하기 급급하다. 박근혜 정부 때 장관들이 고개를 숙인 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수첩에 받아적던 모습과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래선 관료조직의 능동성이 발휘될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를 보유한 축구팀이라고 해도 미드필더와 수비수, 골키퍼 없이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공격수의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 팀워크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결국 골을 먹게 된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은 중대재해법 엄정 집행을 강조한 바로 다음날 기업인의 배임죄 폐지를 언급한 바 있다. 노동자 보호와 기업 책임 완화라는 정반대의 신호가 한꺼번에 뒤섞여 나온 것이다. 하도 많은 지시를 하다보니 메시지가 꼬인 것으로 읽혔다. 최근 하정우 청와대 인공지능(AI)수석을 부산지역 보선에 차출하는 문제를 놓고 당과 다른 방향으로 언급한 것도 그렇다. 아무리 당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면 당청간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정 방향은 옳았지만 과도하게 강한 언사로 인해 국정 동력을 떨어뜨렸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직접 악기를 연주해서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를 조율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시간과 에너지는 무한대로 있는 게 아니다. 박근혜와 윤석열 정권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못해서 문제가 되었지만, 이 대통령은 과잉 컨트롤이 우려된다. 만기친람식 국정운영은 언젠가 피로와 실수라는 이름으로 비용을 청구한다. 이재명 정부가 그 청구서를 마주하기 전에 이 대통령 스스로 멈춰야 한다. 이 대통령의 능력과 열의는 온 국민이 안다. 이젠 '일일이 나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스템을 고치는 대통령’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중근

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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