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섭의 글로벌 전망대]
한-브라질 정상회담이 남긴 것
희토류 전략적 의미는 매장량 아닌 분리·정제 공정이 핵심
“물량 확보보다 ‘어떤 공정을 통제할 것인가’에 초점 둬야”
이재명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건배를 한 뒤 손을 잡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니켈도 상당히 많이 매장돼 있다. (중략) 핵심 광물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를 바라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월 23일 한·브라질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이날 정상회담의 핵심은 희토류 등 핵심광물에 대한 협력 강화였고, 이 부분에서 양국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 대통령은 “핵심 광물, 환경, 우주산업, 문화,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으로 양자 협력을 넓혀갈 것”이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 마련을 위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 4개년 행동계획’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양국이 희토류를 고리로 자원안보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이다.
희토류는 다루기 어려운 광물이다. 채굴 이후 복잡한 용매 추출과 화학적 분리 과정을 거쳐야 산업용 원소로 전환된다. 그래서 희토류의 진정한 전략적 의미는 매장량이 아니라 분리·정제 공정이라는 ‘병목’에 있다. 2010년 중·일 갈등 당시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은 이 병목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광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분리·정제를 통제하지 못하면 공급망 주도권은 확보할 수 없다. 희토류 경쟁은 결국 “누가 병목을 설계하고 통제하는가”의 경쟁이다.
전략자원 통제력이 ‘부국’ 기준 되다
이 병목의 문제는 희토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탄소중립 전환은 새로운 금속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전기차 한 대에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많은 구리와 니켈이 필요하고, 태양광·풍력 설비와 대규모 송전망, 데이터센터 증설은 구조적 금속 수요 증가를 동반한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산업 변화가 아니라, 원자재 지정학을 재편하는 동력이다.
이 과정에서 리튬·구리·니켈·망간이 집중된 중남미는 전략 지역으로 부상했다.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 등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물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국가들이다. 이 지역은 더는 주변부 자원 공급지가 아니다. 미래 산업의 출발점이자 금속 지정학의 핵심축이다.
동시에 중남미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교차점이 되고 있다. 중국은 광산 지분 확보와 인프라·제조 투자를 결합해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이어지는 수직 통합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반면 미국은 개발금융과 제도 설계를 통해 ‘우호국 공급망’을 형성하며 구조적 편입을 시도한다. 경쟁은 단순한 투자 유치가 아니라, 공급망의 방향을 둘러싼 구조 경쟁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자원 보유국들의 전략적 자각이다. 이들은 더는 원광을 수출하고 완제품을 수입하는 구조에 만족하지 않는다. 가공·정제·배터리 소재 산업 유치와 기술 이전을 요구하며, 공급망 내 지위를 상향 조정하려 한다. 희토류에서 드러난 병목의 정치경제학은 이제 리튬과 니켈, 구리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샤오미 전기차 슈퍼팩토리의 차체 조립 공정에서 로봇들이 자동으로 조립하고 있다. 전기차 한 대에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많은 구리와 니켈이 필요하다. [사진 샤오미]
결국 에너지 전환은 자원 시장을 ‘가격 경쟁’의 영역에서 ‘병목 통제’의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희토류가 보여준 교훈은 명확하다. 매장량이 아니라 공정, 생산량이 아니라 통제권이 전략을 좌우한다. 그리고 그 지정학적 무대의 한복판에 중남미가 서 있다.
브라질은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서 자원 보유국을 넘어 전략 설계자로 이동하고 있다. 철광석·망간·보크사이트 생산 강국인 브라질은 최근 리튬과 니켈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으며, 특히 미나스제라이스 일대는 ‘리튬 밸리’로 불리며 글로벌 배터리 산업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전략적 위상은 단순한 매장량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핵심은 자원을 산업화 전략과 연결하려는 정책적 방향성에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전력 구조를 활용해 친환경 가공 산업을 육성하고, 광물 채굴을 배터리 소재와 금속 가공 산업으로 연계하려는 구상이 병행되고 있다.
2026년 2월 방한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희토류와 니켈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이는 자원을 외교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산업 전략과 직접 결합하겠다는 메시지다. 브라질은 더는 원광을 판매하는 국가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함께 설계할 파트너를 선택하는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공급망 협상 설계자’ 브라질의 부상
에너지 전환이라는 장기적 구조 변화 역시 브라질의 협상력을 강화한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가 구조적 수요를 창출하는 한, 핵심 광물 공급국의 발언권은 지속된다.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동시에 진입하려는 상황은 오히려 브라질의 조건 협상 공간을 넓힌다. 자원 협상은 이제 가격 경쟁이 아니라 산업 구조 설계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브라질은 공급망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미·중 경쟁이 격화할수록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협상력이 확대되는 구조에 서 있다. 자원, 산업, 외교가 결합된 이 구조적 기반 위에서 브라질은 ‘공급자’가 아니라 ‘설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브라질과 중남미를 둘러싼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의 전략은 단순한 자원 확보를 넘어 구조 설계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자원 외교가 ‘얼마나 많은 물량을 확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의 전략은 ‘어떤 공정을 통제하고 어떤 산업과 연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둬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핵심은 광산이 아니라 병목이다.
호주 라이너스 (Lynas)사가 마운트웰드 광산에서 생산한 희토류 광물이 담긴 병들. 희토류는 채굴 이후 복잡한 용매 추출과 화학적 분리 과정을 거쳐야 산업용 원소로 전환된다. [REUTERS=연합뉴스]
한국은 배터리, 전기차 부품, 조선, 방산, 반도체 장비 등 고부가가치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희토류 공급망의 결정적 병목인 분리·정제와 영구자석 공정에서는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일례로 전기차 모터에 사용되는 네오디뮴 자석은 한국 완성차 산업의 핵심 부품이지만, 그 이전 단계의 원소 분리와 금속화 공정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한국의 희토류 전략은 조달 전략이 아니라 국가 핵심 인프라 전략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이 전략은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첫째, 상류 단계에서의 전략적 참여다.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의 희토류·니켈 프로젝트에 대해 단순 구매 계약이 아니라 지분 투자와 장기 오프테이크(Off-take·생산물 우선 확보권) 계약을 결합한 구조로 참여해야 한다. 이는 가격 변동성에 대한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공급 우선권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컨소시엄 모델도 고려할 수 있다. 핵심은 ‘단기 스팟 구매’가 아니라 ‘구조적 연결’이다.
둘째, 분리·정제 병목에 대한 접근권 확보다. 브라질에서 원광을 확보하더라도 다시 중국으로 보내 정제한다면 공급망 다변화의 실질적 의미는 제한적이다. 동맹권 내 분리 설비와의 장기 계약을 통해 병목 접근권을 제도화하거나, 국내 분리 공정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모든 공정을 자급하겠다는 접근은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최소한 전략 산업에 필요한 물량에 대해서는 통제 가능한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 이는 ‘완전한 자립’이 아니라 ‘위기 시 선택 가능한 경로’를 만드는 전략이다.
셋째, 하류 단계의 산업 통합이다. 분리된 산화물을 금속화·합금화하고 영구자석으로 제조하는 역량을 국내에서 확대해 전기차·재생에너지·방산 산업과 직접 연결해야 한다. 예컨대 완성차 기업과 자석 제조 기업 간 장기 구매 계약을 체결하면 안정적 수요 기반이 형성되고, 설비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이는 소재·부품·완성품이 수직적으로 연결된 생태계 구축을 의미한다.
브라질과 기술·인력 교류도 필요해
이 세 축은 개별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상류·중류·하류가 통합된 패키지로 설계될 때 공급망의 질이 달라진다. 한국형 희토류 경제안보 패키지는 단순한 자원 투자 모델이 아니라, 자원·금융·기술·산업 정책을 결합한 복합 구조여야 한다. 또한 전략 실행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정부는 정책금융, 외교적 지원, 제도적 안전장치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기업은 기술 축적과 생산 효율화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희토류 전략은 단기간의 수익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 산업 기반 구축 사업이라는 점에서 공공성과 시장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브라질과의 협력은 이러한 전략을 시험해 볼 시범 모델이 될 수 있다. 브라질은 자원을 단순 판매하는 국가가 아니라 산업화를 지향하는 국가다. 한국이 일부 전처리 공정 기술이나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함께 제안한다면, 이는 단순 구매자가 아니라 산업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은 미국 시장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공급망 다변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결국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공급망의 말단 소비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병목을 설계하는 국가로 전환할 것인가. 희토류 전략은 광물 확보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재설계의 문제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이어지는 통합 전략을 구축할 때 비로소 경제안보는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된다.
중국 네이멍구 희토류 광산. 지금까지의 자원 외교가 ‘얼마나 많은 물량을 확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의 전략은 ‘어떤 공정을 통제하고 어떤 산업과 연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둬야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21세기 국제정치는 경제와 안보가 분리되지 않는 복합 경쟁의 시대다. 희토류는 작은 광물이지만 전기차·재생에너지·AI·방산을 동시에 지탱하는 전략 자산이다. 브라질은 미·중 경쟁을 지렛대로 삼아 협상력을 높이고 있고, 공급망은 점점 더 구조 설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의 과제는 명확하다. 광산을 더 많이 사는 것이 아니라, 병목을 설계하는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분리·정제 공정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고, 이를 산업 생태계와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공급망을 설계하는 국가는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린다. 병목을 통제하는 국가는 선택지를 가진다. 희토류 전략은 단순한 광물 정책이 아니라, 한국 경제안보의 방향을 가르는 구조적 선택이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 한국외대 중남미지역학(석사), 영국 버밍엄대학 국제정치경제(IPE 석사), 리버플대학 중남미지역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를 거쳐 현재 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에 재직 중이다. 역서 <양 떼의 재앙>, <중앙아메리카: 분열된 국가> 등과 공저 <라틴아메리카 생태 위기와 부엔 비비르>, <한-라틴아메리카 기후협력> 등을 펴냈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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