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한일합섬 기억 찾기-언니야 보고 싶다 (6) 이은경 언니야
제주 토박이 마산에서 일하며 돈 모아
적응은 어렵고 도둑으로 몰려 큰 상처 입어
그럼에도 유쾌한 성격 덕분에 즐거운 추억도 남겨
이은경언니야가 제주시 구좌읍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주성희 기자
기획 보도 ‘마산 한일합섬 기억 찾기-언니야 보고 싶다’는 한일합성섬유주식회사에서 일하고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서 공부한 이들을 찾고 그들의 10대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한일여자고등학교는 건실하게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지만, 8만 9000여 평을 채웠던 한일합섬은 이제 흔적조차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일하고 울고 웃었던 이들의 기억이라면 지역사, 노동사, 산업사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하는 풍부한 자원이 될 것이라 여겼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쁜 일만 겪지도 않았다. 이은경(56·제주시) 언니야도 한일합성섬유주식회사에서 일하고,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일을 당당하게 여기면서도, 무척 힘들었던 상황과 좋았던 일을 뒤섞어서 풀어놨다.
적응하기 어려웠던 학교 생활
은경언니야는 한일여실고 입학 통보를 받았는데 하루 이틀정도 늦게 마산으로 가는 바람에 1년 뒤에 다시 입학해야 했다. 다만 한일합섬은 1987년부터 일했다. 황당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경언니야는 1988년에 18세에 한일여실고 1학년생이 됐다. 입사한지는 2년차가 되는 해였다. 예전에는 이력서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부끄럽기도 했다.
함께 일하러 갔던 사촌은 일하기 쉬운 사무 부서로 갔는데, 은경언니야는 품질관리과로 갔다. 교정에서 바로 보이는 곳으로, 현재 한일아파트 1차 부근에 공장이 있었다. 언니는 가끔 마산으로 놀러오기도 해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잘 비교했다.
2학년 때까지 품질관리과에서 일했다. 1층에서 기계로 옷을 만들면 은경언니야 앞으로 도착한다. 상의 앞면, 뒷면을 연결하기 전에 검사를 한다. 품질관리과에서 실이 풀리진 않았는지, 치수는 정확한지 1차에서 3차까지 확인해 다음 공정으로 넘긴다. 품질이 좋은 앞면, 뒷면 생산물을 엮어서 상품으로 내보냈다. 은경언니야는 그중에서 1차 검사를 맡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적응을 못해 혼나기도 했다. 오류가 있는데 찾지 못하거나 치수를 잘못 재는 게 많이 하는 실수였다. 여름용 옷은 가벼운 반면, 겨울 옷은 두껍고 무거워서 다루기가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에게 참 어려운 일을 시키면서 책임을 물었던 것 같다.
와중에 직원인 기사들과 친해졌다. 제주에서 왔다니까 공정과 업무를 알려줄 때 친절하게 대해줬다. 언니가 3학년이었던 1990년 2학기 쯤에 그 공장이 없어졌다. 그때 그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다. 삼천포에서 왔다던 기사를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따랐다. 그 삼촌은 한일아파트가 세워지면서 경비 업무를 희망한 것 같더라는 소문을 들었다.
공장이 사라지고 은경언니야는 교대 근무를 하는 방적과로 가면서 기숙사와 정반대 방향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했다. 겨우 적응을 했더니, 새로운 과로 가야한다고 해서 한일합섬에 더 있기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을 많이 옮기기도 했다. 1학년 때는 주간반, 2학년 1학기 때 교대 근무로 바뀌었다가 다시 주간반으로 갔다. 3학년 2학기 때 또 교대반으로 지냈다. 그러니 적응도 어렵고, 3년 내내 붙어다니는 친구가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우애좋은 동창들을 보면 부러웠다.
아무리 유쾌하고 직원들하고 잘 지낸다고 해도 힘든 일이 수월해지지 않았다. 2학년 때가 힘들었다. 매일 아침마다 모아둔 10원짜리를 들고 공중전화로 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많이 울었다.
“엄마는 내가 고생할까봐 한일합섬 가지 말랬는데, 내가 집안에 보탬되겠다고 고집부려서 갔다. 그래놓고 힘들다며 우니까 엄마도 속상해하셨지. 하도 우니까 면회하러 오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 엄마가 허리 수술을 했는데 동생도 엄마도 은경언니야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땐 동생들도 중학교 2·3학년이었다. 집안에 큰일이 생겨도 언니한테 말하지 못하는 동생들이 가여워서 은경언니야는 제주로 돌아갔다.
이은경언니야가 기숙사 방에서 성탄절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당시에는 성탄절을 맞이해서 기숙사 방을 꾸미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이은경
도둑으로 오해받고 큰 상처 입어
언니는 항상 돈을 아끼고 모았다. 재형저축을 하면서도 따로 돈을 모은 건 명절에 비행기를 타고 고향 제주로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대한항공이 1990년에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항공권을 3만 원에 내놓았다. 김해에서 제주는 2만 원 가량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추석 후 설은 빨리도 찾아왔다. 그러니 항상 돈을 모아두고 있어야 했다.
휴일에 놀러간 일도 많지 않다. 일을 끝내거나 하교 후에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이 맛있다는 걸 알아도 참았다. 식권을 안 쓰고 월급을 쪼개 모은 돈으로는 제주에 사는 식구들이 입을 옷을 샀다. 한일합섬에서 만든 옷이 유명 메이커라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 은경언니야를 오해하는 시선도 있었다. 어느 날은 기숙사 동을 총괄하는 동장 언니가 은경언니야를 동장실로 불렀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고발한 사람 말만 듣고 은경언니야를 도둑으로 몰아세웠다. 꽤 긴 시간 취조를 했다. 증거가 없지 않냐고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동장실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느낀 수치심은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한일합섬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나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보면 따돌림같다. 동장실에서 나오면서 마주친 언니, 친구,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도 떠오른다. 나를 고발했던 2명이 누군지 기억한다. 그들한테 물어보고 싶다. 왜 거짓으로 나를 도둑이라고 고발했는지 말이다.”
기숙사에는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기둥이 있었다. 어느 날 언니 한 명이 기둥 꼭대기로 올라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 언니도 도둑으로 몰려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억울해보였다. 일이 힘들고, 의지할 데가 없었다면 암담한 마음이 더 컸겠지.”
은경언니야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다음부턴 억울하지 않으려고 경찰이랑 결혼했잖아.” 은경언니야 말에 숙연하고 긴장감있던 대화가 갑자기 시원하게 풀려버렸다.
나 덕분에 남 덕분에 즐겁기도 했지
한일여실고 운동장에서 열렸던 체육대회에서 언니야들이 점심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은경 언니야는 이때 한일합섬에서 같이 일하고 한일여실고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다고 했다. /이은경
은경언니야는 재치있고 유쾌했다. 코미디언을 꿈꿀 정도였다. 소풍 가기 전 장기자랑을 준비할 때 은경언니야 반은 유독 조용했다. 3학년 1학기 때 담임을 맡았던 정이화 선생님이 “장기자랑 해볼 사람 없니?”라고 하자 손을 들었다. 친하게 지낸 은숙이, 은정이를 모아서 연극을 만들었다. 작품 제목은 <불량학생>이었다. 비록 상은 못 받았지만 정 선생님이 좋아하셨다. 정 선생님과는 최근까지 연락했다. 재작년에 정년퇴직을 한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보면 선생님들하고 학생들하고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도 않았어. 언니랑 동생 사이 같기도 했지.”
옆에 있던 언니야들 덕분에 좋은 추억이 쌓였다.
모두가 야외로 놀러가는 주말에 돈 아끼겠다고 외출도 하지 않는 은경언니야를 부른 미향언니가 떠오른다. 나이는 같지만 한 학년 위였던 미향언니랑 또 다른 언니와 버스를 타고 간 포도밭에선 1박 2일 소개팅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 보는 남자애랑 뭘해. 멀뚱멀뚱 모닥불만 보고 나왔지”하면서 은경언니야는 깔깔 웃었다.
미향언니처럼 이성에 빨리 눈을 뜬 언니들이 많았는지 금요일이 되면 기숙사 정문에는 남학생들, 창원 공단에서 일하는 또래 남성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좋아하는 친구, 여자친구를 보러 온 것이었다. 면회 신청이 들어오면 기숙사 방송으로 이름이 크게 불렸다. 면회 나가지 않는 언니야들은 기숙사 창문에 매달려서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금요일마다 펼쳐지는 진풍경이었단다.
한일합섬·한일여실고 기숙사에서는 방 대항 대회가 열렸다. 기숙사 방마다 성탄절을 앞두고 방을 꾸미는 건 오랜 전통이었다. 은경 언니야가 기숙사에 살았을 때는 에어로빅 대회도 있었다. 에어로빅 동작이나 어느 방이 우승했는지 전혀 기억 나지 않고, 함께 웃고 떠들었던 언니들만 떠오른다.
40년이 지나도 언니야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그들 덕분에 어려운 환경을 버텨낸 것 같아 고마워서다.
은경 언니야는 정이 많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 언니야들도 많다. 제주 토박이인 은경언니야는 마산에서 4년 동안 일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와서도 마산에서 만난 언니야들을 그리워했다. 이들을 찾으려고 방송에도 나가보고, 수소문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제주에서도 동창생들이 제법 있어서 모임을 열기도 했는데, 지금은 일련의 사건으로 와해됐다.
이은경 언니야는 한일여실고·한일합섬 출신인 언니야들이 세상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미향언니, 아버지가 금은방하던 미자언니, 연극을 같이 했던 은숙·은정언니도 보고 싶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곳이다. 우리가 한 일이 자랑스럽고 당당하다. 13회 졸업생들 한 명 한 명 좋은 친구들이었다. 외롭지 않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다. 꼭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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