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상한선 충돌 '보상 구조 재설계 요구' 확산
EVA냐 영업이익이냐, 성과 기준 둘러싼 근본 논쟁
노조 "5월 파업" 압박 vs 사측 "법과 절차에 따라 대응"
경영 불확실성 대비와 보상 체계 개편의 사이의 딜레마
사진 제공= 삼성전자
[오피니언뉴스=박정훈 기자] 삼성전자 노조는 '5월 파업'을 예고하며 사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성과급 체계 개편과 임금 인상을 둘러싼 수차례 협상이 결렬되면서 노사 간 긴장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사측은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존 제안 범위 내에서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양측은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원칙은 유지하고 있지만, 핵심 쟁점에서는 물러서지 않으면서 대치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갈등의 핵심 '성과급 상한선'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중심에는 성과급 구조가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초과이익성과급(OPI)에 연봉의 50% 상한을 두고 있다. 노조는 이 제한이 "성과 보상의 취지를 훼손한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경쟁사와의 비교에서 힘을 얻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성과급 상한선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하자, 삼성전자 노조 역시 유사한 기준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성과가 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보상 체계의 한계는 곧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반영돼 있다.
이와 함께 노조는 기존 EVA(경제적 부가가치·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을 차감한 값) 기준의 성과급 산정 방식도 문제 삼고 있다. EVA는 투자 효율성을 반영하는 지표로 기업 입장에서는 유용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실제 성과 대비 보상이 줄어드는 구조라는 인식이 강하다. 영업이익이 아닌 EVA를 기준으로 삼는 현재 방식이 개인과 조직의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임금 인상률 역시 주요 쟁점이다. 노조는 당초 6.5% 수준의 인상을 요구했고, 협상 과정에서 일부 조정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사측 제시안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급휴가 확대와 성과급 산정 기준 공개 등 요구도 함께 제시했다. 핵심은 금액 자체보다 '납득 가능한 기준'이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쟁 결의대회. 사진= 연합뉴스
사측은 이에 대해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미 결정된 5.1% 임금 인상안(기본 3.0% + 성과 2.1%)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성과급 제도 역시 즉각적인 구조 변경보다는 점진적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파업으로 인한 생산라인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측은 조건부 절충안도 제시했다. DS(반도체) 사업부문이 국내 업계 1위를 달성할 경우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기존 상한선(연봉 50%)을 넘는 ‘특별 포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조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상한선 자체를 유지한 채 예외를 두는 방식으로는 보상 체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쟁점은 '얼마를 주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줄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노조는 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사측은 안정성을 앞세우며 맞서고 있다.
글로벌 기준 vs 제조업 현실
노조 내부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수준의 보상 체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과급 상한을 사실상 폐지하고 개인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크게 차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상한 없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반론이 제기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은 소프트웨어 기업과 사업 구조가 다르다. 공정과 협업 비중이 높아 개인 성과를 명확히 분리해 측정하기 어렵고, 보상을 무제한으로 확대할 경우 조직 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산업 특성을 근거로 노조 측 주장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 산업이다. 호황기에는 높은 이익을 내지만 불황기에는 급격한 실적 하락을 겪는다. 이런 구조에서 성과급 상한을 완전히 폐지할 경우 비용 변동성이 커지고 재무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측이 EVA 기준과 상한선을 유지하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글로벌 스탠다드'로 제시되는 보상 체계가 삼성전자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조직 운영 방식 전반의 문제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진 제공= 삼성전자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
삼성전자의 노사 관계는 전환점에 서 있다. 노조 세력 확대와 함께 개별 불만이 집단적 요구로 조직화됐고, 교섭 과정도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결렬과 재협상이 반복되는 현재 상황은 삼성 내부에서도 낯선 변화다.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도 확산되고 있다. 성과 중심 체계 아래에서 업무 강도는 높아졌지만, 보상 기준과 평가 과정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특히 젊은 직원층을 중심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조직 안정성과 브랜드 가치가 불만을 일정 부분 상쇄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이 체감하는 공정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는 단순한 세대 변화가 아니라 조직 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다. 노사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산업적 파장도 불가피하다. 반도체 생산 차질, 핵심 인력 이탈, ESG 리스크 확대 등 다양한 변수들이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달 30일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노조와의 대화를 우선해 갈등을 원만히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원칙을 밝히면서도 "법과 절차에 따라 대응하고, 파업에 대비한 전담 조직을 운영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놨다.
현재 협상은 성과급 기준과 임금 인상 폭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노조는 파업을 예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사측은 기존 입장을 유지하며 맞서고 있다. 대화의 창구는 열려 있지만, 합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갈등은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선다. 성과 중심 보상 체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조직이 변화하는 기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다. 과거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새로운 해법을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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