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휴전 무기한 연장
“이란 지도부 심각한 분열 이유”
이란 반발… “시간 벌기용 술책”
최고지도자 6주 넘게 모습 안 비쳐
직무 수행 불능 상태·해외 체류 의심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첫 메시지를 방송하는 이란 국영방송[IRIB 화면 캡처]
[천지일보=이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종료 시한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이란과의 휴전을 무기한 연장하며 협상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이란 정부 내의 심각한 내부 분열을 지목했으며 이란 측에 전쟁 종식을 위한 ‘통일된 제안’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휴전 연장 여부에 대해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답하며 미국이 강력한 협상 고지에 있다고 자신했다. 또한 미군이 “출동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하며 당장이라도 폭격이 재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과 긴급회의를 가진 뒤 입장을 바꿨다. 그는 트루스소셜과 성명을 통해 “이란 정부가 예상치 못하게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는 사실과 파키스탄의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 및 셰바즈 샤리프 총리의 요청에 따라 이란에 대한 공격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란의 지도자와 대표자들이 통일된 제안을 내놓을 때까지 휴전을 연장할 것을 군에 지시했다”며 “논의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때까지 휴전은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항구에 대한 미 해군의 봉쇄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측은 미국의 휴전 연장에 극도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타스님 통신은 “현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미국이 어떠한 적절한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케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의 고문인 마흐디 모하마디는 SNS를 통해 “트럼프의 휴전 연장은 기습 공격을 위한 시간 벌기용 술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한 “미 해군의 계속되는 봉쇄는 폭격과 다를 바 없는 군사적 침략이며 이제 이란이 주도권을 잡아야 할 때가 왔다”고 경고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역시 “이란 항구를 봉쇄하는 것은 전쟁 행위이자 휴전 위반”이라며 “상선(투스카호)을 공격하고 선원을 인질로 잡는 것은 더 큰 위반”이라고 미국의 해상 봉쇄 정책을 맹비난했다.
휴전 연장 발표 직전까지 백악관의 분위기는 긴박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2차 평화 회담을 위해 JD 밴스 부통령이 탑승할 에어포스 투는 워싱턴 외곽 앤드루스 합동기지 활주로에서 대기 중이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주요 내각 인사가 백악관에 모여 머리를 맞댔으나 이란으로부터 끝내 확답이 오지 않자 밴스 부통령의 출국은 잠정 중단됐으며 저녁 무렵에는 무기한 연기됐다.
협상을 주도해온 대통령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 역시 출국 예정이었으나 발이 묶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적으로는 이번 파키스탄 방문을 아예 취소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휴전 연장의 핵심 배경은 협상 파트너인 이란 지도부의 불투명성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에 따르면 미국은 협상 재개에 앞서 주요 쟁점에 대한 답변을 이란에 요구했으나 수일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백악관 보좌관들은 파키스탄 중재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정부가 통일된 실체가 아니며 테헤란 내 강경파들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으려 한다고 보고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등 전직 지도자들이 암살된 이후, 그 뒤를 이은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면서 내부 의사결정 체계가 마비됐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측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농축 우라늄 비축량과 관련해 협상단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봤다.
실제 새 최고 지도자로 임명된 하메네이는 6주째 공개 석상에 서지 않고 있다. 대신 그의 성명은 국영 방송을 통해 낭독되거나 SNS에 게시되고 있다. 이란 정권은 심지어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영상을 이용해 하메네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새 최고 지도자가 직무 수행 불능 상태이거나 해외에 체류 중이라는 추측을 부추겼다.
CNN 등은 하메네이가 지난 공습에서 발 골절, 왼쪽 눈 타박상, 경미한 열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그가 음성 회의를 통해 고위 관리들과 회의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쟁 및 미국과의 새로운 협상을 포함한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위기그룹의 이란 프로젝트 책임자인 알리 바에즈는 CNN에 “모즈타바는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협상을 세세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체제는 그를 협상 전술이 아닌 핵심적인 전반적인 결정에 대한 최종 승인을 얻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휴전 중재 노력을 기울여온 파키스탄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외교적 노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휴전 연장 요청을 기꺼이 수락해 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며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2차 회담에서 포괄적인 ‘평화 거래’가 성사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슬라마바드 시내는 회담 준비로 삼엄한 경비가 이어지고 있다. 공항 도로는 무장 경비원들이 탄 픽업트럭으로 가득 찼으며 군인들이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당국은 호화 호텔 3곳을 징발했으나 상점들이 문을 닫았던 1차 회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일반 상점의 영업을 허용해 시민들의 불편을 줄였다.
미군 함정에서 바라본 나포된 이란 상선 투스카호. (출처: 연합뉴스)
◆美 경제적 압박 수위 더 높여
미국은 휴전을 연장하면서도 경제적 압박 수위는 오히려 높이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는 지난 13일 봉쇄가 시작된 이후 총 28척의 선박을 돌려세우거나 이란 항구로 회항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이란 경제의 90%를 차지하는 해상 무역을 차단한다고 주장했다. 21일에도 인도양에서 제재를 회피해 이란을 돕는 이른바 ‘그림자 함대’ 소속 유조선에 미군이 승선해 검문을 실시했다.
이러한 봉쇄는 이란의 외화 수입을 하루 약 4억 달러가량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 재무부 또한 이란의 석유 밀수 네트워크·대리 세력, 무기 수송로를 겨냥한 일련의 새로운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워싱턴 연구소의 마이클 싱 전 국가안보회의(NSC) 국장은 WSJ에 “봉쇄가 미국과 이란 사이의 압박 균형을 맞추고 있다”면서도 “이란 정권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석유 수출 차단에도 견뎌낼 능력을 입증해왔기에 세계 경제가 먼저 굴복할지 이란이 먼저 무너질지를 건 위험한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이란의 자금 창출, 이동 및 송환 능력을 체계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압력’을 가하겠다는 행정부의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해상 봉쇄가 이러한 ‘경제적 분노 작전’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베선트 장관은 “며칠 안에 하르그 섬의 저장고는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취약한 이란의 유정들은 폐쇄될 것”이라고 썼다.
현재까지는 휴전이 유지되면서 시장의 불안은 다소 진정된 상태다. S&P 500 지수는 전쟁 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가 상승세도 둔화됐다. 이란의 걸프국 석유 시설에 대한 드론 및 미사일 공격도 일단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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