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배달 전쟁에서 밀린 플레이어가 가장 비싼 자산을 현금화하고 있다.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매각에 공식 착수했다. 글로벌 배달 플랫폼 산업이 소수의 대형 플레이어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DH가 더 이상 그 경쟁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이번 매각의 본질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배달앱 1위, 연 매출 5조 원을 넘긴 핵심 자산을 내놓는 배경이다.
지각변동 – 글로벌 배달 전쟁의 지도가 바뀌었다
글로벌 배달 플랫폼 업계는 지금 대형화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도어대시는 미국 1위 배달 플랫폼으로, 2025년 영국의 딜리버리루를 인수하며 유럽까지 영역을 넓혔다. 현재 30개국 이상에서 운영 중이다. 딜리버리루 인수 당시 공시 문서는 “배달 산업이 소수의 글로벌 대형 플레이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규모가 작은 독립 사업자는 투자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커졌다”고 명시했다. 우버이츠 역시 45개국 이상에서 운영되며 기존 시장을 더 깊이 파고드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DH는 이 재편의 반대편에 서 있다. 부채총액 약 9조2500억 원, 부채비율 230%. 공격적 투자는커녕 기존 사업을 방어하기도 버거운 재무 상태다. 2024년 12월 중동 자회사 탈라밧을 두바이 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수조 원대 유동성을 확보했고, 지난 3월엔 대만 푸드판다를 그랩에 넘겼다. 이번 배민 매각은 그 흐름의 세 번째 장이다. 지난해 말 주주서한에서 “포트폴리오와 자본 배분에 대한 전략적 검토”를 예고한 경영진의 선택지는, 사실 처음부터 많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이 우버였다.
우버에게 배민 인수는 필요 없다
이 구도에 우버가 끼어들었다. DH는 5월 18일 공시를 통해 우버가 발행 주식의 19.5%와 스톡옵션 5.6%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고 밝혔다. 기존 최대주주 프로서스는 16.8%로 밀려났다. 우버는 4월 프로서스로부터 약 4700억 원 상당 지분을 먼저 매입해 7%를 확보한 뒤, 이번에 추가로 지분을 늘렸다.
우버가 직접 배민 인수에 나서는 것과 DH 지분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직접 인수는 한국의 수수료 규제, 소상공인·라이더 이해관계, 공정거래 심사 등을 정면으로 떠안는 선택이다. 반면 DH 지분 구조 안에서 움직이면 완충을 유지하면서 배민의 현금 흐름에 관여할 수 있다. 우버가 “현재로서는 의결권 30% 이상을 확보할 의도가 없다”고 공식 명시한 것은 이 계산의 반영이다. 의무공개매수 기준인 30%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구조다.
도어대시가 유럽을 강화하고, 우버가 아시아에 포석을 두는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국 1위 배달앱 지배구조에 우버가 발을 들여놓는 것은 그 흐름에서 아시아 공백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정작 배민 자체가 그만한 값어치를 하느냐는 별개의 질문이다.
알짜이되, 팔리기 어려운 매물
숫자만 보면 배민은 흠잡기 어렵다. 우아한형제들의 매출은 2023년 3조4155억 원에서 2025년 5조2829억 원으로 2년 새 1조8000억 원 이상 늘었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 중 쿠팡을 제외하면 이 매출 규모에 근접한 플랫폼이 없다. 지난해 영업이익 5928억 원으로 DH 연간 매출의 20%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자산이다.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2314만 명으로, 국내 경쟁 2위인 쿠팡이츠(1315만 명)를 약 1000만 명 차이로 앞서고 있다.
다만 방향이 좋지 않다. 영업이익은 2023년 6998억 원에서 3년 연속 감소했다. 같은 기간 쿠팡이츠의 MAU는 전년 대비 25.9% 급증했다. 격차는 유지되고 있지만 속도가 다르다. 정부의 수수료 규제 강화 기조가 이어지고, 소상공인·배달 라이더 등 까다로운 이해관계자를 안고 있어 국내 대기업이 선뜻 나서기 부담스러운 매물이라는 시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높은 몸값 부담으로 일부 국내 대기업의 검토가 중단된 것으로 전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인수자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이, 해외 빅테크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다.
이 딜이 남기는 질문
배민은 2019년 한국 스타트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계 인수 사례였다. DH가 약 4조7500억 원을 내고 지분 87%를 가져간 그 거래는, 국내 플랫폼 스타트업이 글로벌 자본에 어떻게 편입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번 매각은 그 역순이다. 외국계 자본이 한국 플랫폼을 키운 뒤 다시 내놓는 패턴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희망 매각가 8조 원이 성사되면 DH의 투자 차익은 상당하다. 그러나 국내 자본이 이 거래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낮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국내 전략적 투자자가 마땅치 않고, 규제 리스크를 감수할 의지를 가진 곳도 드물다. 결국 이번 딜은 배민의 문제가 아니라 DH의 문제다. 황금알은 여전히 황금알이다. 다만 그것을 품을 거위가 바뀌는 것이고, 그 선택이 국내 배달 시장의 다음 10년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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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요한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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