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성 기자 〈리서치센터 국장·칼럼니스트〉
〈환율의 밤이 열렸다〉 정부는 국제화를 말했지만 외신은 1997년을 봤다
■ 서울 외환시장 24시간 개방, 원화 국제화 첫걸음인가 새벽 변동성의 시작인가
■ MSCI는 한국을 선진시장 관찰대상국에 올리지 않았다…야간 유동성과 역외 결제 문제가 남았다
■ 역외 NDF는 이미 커졌고 외환보유액 순위는 밀렸다…문을 여는 것과 원화 체력은 다르다
▲정부는 원화 국제화를 말했지만, 시장은 원화 체력을 묻고 있다. 24시간 외환시장 개방은 축포가 아니라 새벽 변동성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일러스트=AI 생성
■ 외환시장은 열렸지만, 질문은 남았다
환율의 밤이 열렸다.
서울 외환시장이 7월 6일부터 평일 24시간 원·달러 거래 체제로 전환된다.
정부는 원화 국제화를 말한다. 외국인 접근성을 높이고, 역외 NDF 수요를 국내로 끌어오겠다는 구상이다.
방향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정부 발표만 보면 국제화이고, 외신과 MSCI 발표, 한국은행 통계를 겹쳐보면 스트레스 테스트다.
지금 원화는 강한가. 외환시장은 충분히 깊은가. 당국은 24시간 시장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외신은 1997년을 봤다
정부의 언어는 국제화다.
하지만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이번 조치를 단순한 거래시간 연장으로 보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유지해온 원화 관리 체제의 큰 전환으로 해석했다.
외신이 주목한 단어는 1997년이었다.
원화가 무너졌던 기억, 달러가 말랐던 기억,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기억 위에서 한국의 외환정책은 만들어졌다.
이제 한국은 그 원화를 밤새 세계시장에 내놓는다.
정부는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외신은 그 문밖을 봤다.
■ MSCI는 이미 선을 그었다
이번 개방의 배경에는 MSCI 선진시장 편입이 있다.
그러나 MSCI는 최근에도 한국을 선진시장 관찰대상국에 올리지 않았다. 한국은 여전히 신흥시장으로 분류됐다.
핵심은 외환시장 접근성이다.
원화의 역외 결제 가능성, 연장 거래시간대의 실제 유동성, 외국인 투자자의 거래 편의성이 과제로 남았다.
24시간 개방은 필요 조건일 수 있다.
하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문을 열었다고 선진시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동성 없는 24시간은 국제화가 아니라 빈 시장의 야간개장일 뿐이다.
■ 역외 NDF는 이미 커졌다
정부 논리의 핵심은 역외 NDF 수요를 역내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흡수 대상은 이미 커졌다.
한국은행 자료와 시장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역외 원·달러 NDF 거래는 일평균 155억5000만 달러 규모였다. 전 분기보다 27.7% 늘었다.
질문은 하나다.
역외에 커진 시장을 국내로 끌어올 수 있는가.
아니면 거래시간만 늘어난 채 가격 영향력은 여전히 역외에 남을 것인가.
24시간 개방의 실효성은 거래시간이 아니라 역외 수요를 실제로 얼마나 역내로 끌어오느냐에 달려 있다.
■ 주식시장은 닫히고, 환율만 열린다
외환시장이 24시간 열린다고 한국 주식시장까지 24시간 열리는 것은 아니다.
해외 투자자의 환전 수요는 주식과 채권 거래에 연결돼 있다. 주식시장이 정규시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 야간 외환시장은 기대만큼 두꺼워지지 않을 수 있다.
거래가 얇은 시간대에 미국 고용지표, 연준 발언, 중동 리스크, 엔화 급변, 외국인 매도 압력이 겹치면 원화는 작은 주문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시장 문을 오래 연다고 방파제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 외환보유액은 숫자보다 신뢰다
외환보유액은 국가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하지만 시장은 숫자만 보지 않는다. 실제로 쓸 수 있는지, 위기 때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는지를 함께 본다.
6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전월보다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세계 순위는 하락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9위권을 유지했지만, 올해 들어 밀렸고 최근에는 싱가포르에 추월당해 13위까지 내려갔다.
외환보유액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신뢰다.
이 딜레마 속에서 외환시장은 24시간 열린다.
낮에만 싸우던 시장이 밤에도 열린 것이다.
■ 문을 여는 것과 체력을 키우는 것은 다르다
원화 국제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고환율 국면에서 외환시장을 24시간 연 것을 원화 국제화의 성과로만 말할 수는 없다.
MSCI는 아직 한국을 선진시장 관찰대상국에 올리지 않았다. 외신은 1997년의 기억을 꺼냈다. 역외 NDF 시장은 이미 커졌고, 외환보유액 순위는 밀렸다. 야간 유동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답해야 한다. 역외 NDF 수요를 얼마나 역내로 흡수할 것인가. MSCI가 지적한 역외 결제 문제와 야간 유동성 부족을 어떻게 풀 것인가. 야간 급변동 대응 매뉴얼은 있는가.
문을 여는 것은 개혁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문을 연 뒤 버티는 것은 실력이다.
외환시장의 밤은 열렸다.
문제는 원화가 그 밤을 견딜 체력을 갖췄느냐다.
제보 및 반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