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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호르무즈에서 대한해협까지, 21세기 '신(新) 해양 시대'의 서막

특히 동아시아 해역은 반도체와 첨단 부품이 이동하는 글로벌 기술 가치사슬의 동맥이다. 미국이 오키나와... 우리는 그동안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중간재 국가'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세계...

호르무즈에서 대한해협까지, 21세기 '신(新) 해양 시대'의 서막

대한해협은 동북아 물류의 관문이자 태평양 통로...북극항로 본격화 땐 동아시아 물류의 중요한 접점

글로벌 공급망과 해상 교통로가 국제 정치의 핵심 변수가 된 지금, 국가 전략도 그에 맞게 재설계돼야

[윤영호 칼럼] 지금 세계 뉴스는 중동의 좁은 물목 호르무즈 해협에 쏠려 있다. 미사일과 드론이 오가는 군사적 공방이 예측불허로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미 지상군 작전 준비도 미국과 이란사이의 종전합의와는 별도로 병행 진행되고 있어 언제 종전이 이루어질 것인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이제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가 지나가는 세계 에너지 동맥을 넘어 국제질서의 균형추가 되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의 본질을 단순히 유가(油價)의 문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21세기 세계 질서를 좌우할 해양 패권과 금융 권력의 재편이라는 더 큰 흐름의 일부라는 점에 추가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사의 흐름은 언제나 바다의 주인을 가리는 경쟁 속에서 바뀌었다. 16세기 스페인 무적함대 패배 이후 해상 패권은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갔고, 19세기에는 대영제국이 세계 항로를 지배했다. 20세기 들어 그 지위를 승계한 나라가 오늘의 미국이다.

항로를 장악한 국가가 곧 세계 경제와 금융 질서를 설계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국제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이면의 복합적인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류와 결제 권력이다. 미국이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경제 회랑(經濟回廊) IMEC는 그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IMEC(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는 인도–중동–유럽을 연결하는 대규모 경제·물류 회랑 구상이다. 2023년 G20 정상회의에서 공식 발표된 프로젝트로, 미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이스라엘 그리고 유럽연합 등이 참여하는 전략적 인프라 네트워크다.

인도에서 출발한 물자가 아라비아해를 건너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나 철도로 이스라엘 항구까지 이동한 뒤, 지중해를 통해 유럽연합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물류 축이다. 이는 단순한 항로 개발이 아니라 중국이 추진해온 일대일로에 대응하는 서방의 공급망 전략이다.

호르무즈에서 시작된 해양 패권 경쟁이 이제 북극해까지 확장

일대일로(一帶一路, BRI)는 중국 시진핑이 제시한 대규모 국제 인프라·경제 협력 전략으로 핵심 목표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통·에너지·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중국 중심의 경제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IMEC가 현실화되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물류 시간은 크게 단축되고, 중동은 단순한 산유 지역을 넘어 세계 물류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이 거대한 경제 회랑의 출입구를 쥐고 있는 곳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결국 이 해협을 장악하는 세력이 단지 석유의 흐름뿐만 아니라 세계 공급망의 리듬을 통제하게 된다. 지금 휴전합의가 만만치 않은 또 하나의 이유다.

21세기 해양 질서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북쪽에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항로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 바로 북극항로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해빙이 줄어들면서 북극해를 통과하는 항로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이 항로를 이용하면 아시아에서 유럽까지의 항해 거리는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보다 약 30~40% 단축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북극 연안을 따라 항만과 에너지 기지를 구축하며 이 항로의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고, 중국 역시 ‘빙상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북극 항로에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호르무즈에서 시작된 해양 패권 경쟁이 이제 북극해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 역시 중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큰 그림은 유라시아 대륙을 둘러싼 해양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말라카 해협, 대만해협, 그리고 대한해협으로 이어지는 이 해역은 또 하나의 중요한 해상 물류 통로다. 특히 동아시아 해역은 반도체와 첨단 부품이 이동하는 글로벌 기술 가치사슬의 동맥이다. 미국이 오키나와 와 괌, 그리고 한반도를 연결하는 군사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도 이러한 해상 교통로의 통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 거대한 전략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도의 부상이다. 세계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인도는 새로운 공급망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경쟁의 결과를 넘어서 지정학적 계산이 반영된 흐름이다.

한국은 해양 질서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 보유

인도는 아라비아해와 벵골만을 동시에 끼고 있는 해양 요충지이며, IMEC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인도를 중심으로 생산과 물류가 재편되면 세계 해상 교통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중간재 국가’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세계 질서는 단순한 제조 능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급망이 곧 안보이고, 해협의 지배력이 곧 국부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수준의 조선 산업과 성장하는 방산 산업을 가진 한국은 해양 질서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특히 최근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K-방산은 단순한 산업을 넘어 동맹의 군사적 기반을 보완하는 전략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해협은 동북아 물류의 관문이자 태평양으로 나가는 통로다. 동시에 장차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경우 동아시아 물류의 중요한 접점이 될 가능성도 크다. 주목받는 조선 산업과 성장하는 방산 산업을 가진 한국은 해양 질서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오래된 외교 공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은 이미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글로벌 공급망과 해상 교통로가 국제 정치의 핵심 변수가 된 지금, 국가 전략 역시 그에 맞게 재설계되어야 한다.

역사는 늘 같은 질문을 던져 왔다. 바다의 길을 읽는 국가가 세계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호르무즈에서 시작된 긴장은 말라카와 대만해협을 거쳐 대한해협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거시적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단지 거대한 항로 위에 떠 있는 작은 반도에 머물수 밖에 없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그 속에서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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