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사진=셔터스톡
미국과 이란이 지난 4월 7일 2주간 휴전에 합의하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기대가 커졌으나, 불과 일주일 만에 종전 협상이 결렬되며 상황이 다시 악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13일 오전 10시를 기해 호르무즈 해역 봉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15척 이상의 군함을 배치하고 이란 항구를 오가는 해상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는 해당 구역에 진입하는 선박에 대해 ‘차단, 회항, 나포’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종전 협상 결렬 이후 나온 조치로, 휴전에도 불구하고 해협 리스크가 재확대된 상황이다. 이란 역시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양측 간 충돌 우려는 다시 커지고 있다.
문제는 공급망이다. 지난 6주간 호르무즈를 둘러싼 긴장 고조와 완화가 반복되는 사이 글로벌 공급망은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물류 업계에서는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물류 흐름이 곧바로 정상화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선박 통항 차질을 넘어 에너지·원자재·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된 공급망 충격이기 때문이다.
발 묶인 선박·폭등한 보험료…불확실성 연쇄작용
호르무즈 사태는 실제 물류 흐름을 크게 흔들었다. 대표적으로 해상 운송 비용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선박에 적용되는 전쟁위험보험료는 평시 대비 최대 10배까지 상승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동전쟁 이후 보험료 상승률은 최소 200%부터 최대 1000%에 달한다.
일부 선사는 우회 항로를 검토하거나 후속 선박을 투입해 화물을 분산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통항이 재개되더라도 보험료 수준과 가입 조건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실제 운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운송 지연과 비용 상승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디지털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일부 선박은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하면서 운송 기간이 15~20일가량 늘어났다. 같은 구간의 컨테이너 운임은 기존 8000달러 수준에서 1만2000~1만5000달러까지 급등했다. 전쟁 위험 할증료까지 더해지면서 물류 비용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양상이다.
파장은 비단 물류에 국한되지 않고 산업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LNG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경로다. 해협 봉쇄와 긴장 고조로 원유와 가스 가격이 상승했고, 에너지 비용 증가는 곧바로 산업 전반의 비용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자재 시장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중동산 알루미늄 공급이 제한되면서 국제 알루미늄 가격은 4월 13일 기준 톤당 3655달러까지 치솟았다.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동차, 항공, 건설 등 주요 산업에서 원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배경이다. 일부 알루미늄 제련소는 선적 차질로 생산량을 줄이거나 가동을 중단했고, 이는 글로벌 공급 부족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전자·반도체 업계에서는 비용과 일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트레드링스는 운송 지연과 운임 상승이 겹치면서 중소기업 기준 월 20만~35만달러 수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비용 증가를 넘어 기업의 재무 구조 자체에 부담을 주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결국 이번 사태는 에너지에서 시작해 원자재, 제조업, 물류 전반으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인 셈이다. 특정 산업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 양상이다.
한국에서도 직접적인 피해 사례가 발생 중이다. 지난 4월 11일 기준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 26척과 선원 169명이 발이 묶인 상태다. 정부는 이란과의 협의 과정에서 선박 정보를 제공하며 통항 협상에 나서는 등 대응 수위를 높였다. 기존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선박 안전 확보와 협상 진전을 위해 기조를 일부 전환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휴전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미국의 역봉쇄 조치까지 겹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호르무즈 개방돼도 후유증 길어…공급망 다변화 숙제
6주간 누적된 공급망 충격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물류업체 DHL의 토비아스 마이어 CEO는 최근 웨비나에서 “업계에서는 1주일의 공급망 혼란이 발생하면 정상화에 1개월이 필요하다는 기준이 통용된다”며 “현재 약 6주가 지난 상황인 만큼 최소 4~6개월의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혼란과 지연, 추가 비용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도 병목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호르무즈를 우회한 물동량이 UAE 코르파칸과 오만 소하르 항으로 집중되면서 항만 혼잡이 심화됐다. 하역 지연과 컨테이너 적체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으며, 항만을 빠져나간 이후에도 트럭 운송 부족으로 내륙 배송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공급망 병목이 해상에서 항만, 내륙으로 연쇄 확산되는 구조다.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정상화까지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DHL은 휴전의 실질적 이행, 전쟁보험 확보, 선원 안전에 대한 신뢰 회복, 억류 선박 해소 등을 핵심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통항이 재개돼도 물류 흐름은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제기관 역시 장기화를 예상하고 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호르무즈 해협이 4월 말까지 사실상 폐쇄 상태를 유지하고, 이후에도 통행량이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데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함께 글로벌 물가 상승 압력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흐름은 공급망 대응 전략의 전환 필요성도 동시에 보여준다. 단순히 해협 재개방 여부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항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미국-이란 분쟁과 글로벌 물류경로 재편 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물류망 다변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이 거론된다. IMEC는 인도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복합 물류망으로, 기존 호르무즈·수에즈 경로를 우회하는 구조다.
미국·인도·EU·사우디·UAE 등이 참여하는 다자 프로젝트로 추진되며, 국제 입찰 기반으로 진행돼 국내 기업의 참여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다만 에너지 벌크 운송 측면에서 기존 해상 경로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고, 참여국 간 정치적 이해관계와 투자 재원 확보 등 과제가 남아 있다. 북극항로 역시 대안으로 언급되지만, 계절성과 인프라, 보험 문제 등으로 아직은 제한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결국 단일 대체 경로로 기존 공급망을 대체하기보다는, 복수 경로를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이 현실적인 대응으로 제시된다. 해협 개방 이후에도 장기간 후유증을 감내해야 하는 만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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