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국면 속 동반 성장 추구
지난달 29일 경남 창원에 위치한 대림 S&P 공장에서 직원들이 레이저 절단 설비로 선박 부품을 가공하고 있다. 한화오션의 협력사인 이곳은 최근 한화오션이 제공한 3차원 설계 데이터를 활용해 공정을 크게 단축하고 생산 효율을 높였다. /한화오션
지난달 29일 경남 창원의 조선 기자재 기업 ‘대림S&P’의 한 사무실. 종이 도면 수천 장으로 가득 찬 선반이 벽 한쪽을 메우고 있었다. 이 회사는 선박 곳곳에 들어가는 배관 지지대나 철제 구조물 등을 매달 3000개 안팎 만들어 한화오션 거제 조선소에 공급한다. 배마다 설계가 제각각인 만큼, 각종 구조물도 크기나 모양이 다양하다. 이 사무실에 수북하게 쌓인 종이들은 그간 이 회사가 만들어온 각양각색 제품 도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한화오션에서 평면으로 된 제품 도면을 보내주면, 직원들이 도면에 적힌 부품 길이나 두께, 연결 부위 위치와 각도 등 각종 수치를 프로그램 코드로 만들어 컴퓨터에 입력하는 ‘번역’ 작업만 2~3일씩 했다. 그래야 설계에 맞춰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레이저 절단 자동화 장비 등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연 매출 180억원 규모에 직원 20여 명 남짓인 이 회사에서 이런 ‘번역’을 하는 인력을 많이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번역’이 끝날 때까지 작업이 밀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난해 한화오션이 내부 혁신 프로그램 ‘TOP’를 협력사에 확대 적용하면서 병목이 줄기 시작했다. 기밀 유출 우려 등 때문에 원청이 디지털로 된 설계 정보를 협력사에 제공하는 건 오랜 금기였다. 디지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협력사도 태반이었다. 하지만 한화오션이 TOP를 협력사에 적용하고 보안 등 각종 교육도 실시하면서 IT를 기반으로 작업 효율을 높이는 협력사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협력사 없인 못 버틴다
대림S&P의 경우 한화오션의 TOP 프로그램을 도입한 결과 종이 도면을 디지털로 번역하는 작업을 단축하는 것 등으로 생산성이 약 30%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람이 작업할 때보다 오류도 줄고, 다른 중요한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돼 1~2명을 더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력이 늘어났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이 회사는 이 외에도 제품 유형별 작업장 전문화 등 효율을 높일 추가 과제도 함께 진행 중이다.
조선업계에선 원청이 지시하고 협력사는 마냥 따르기만 하는 구조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크다. 최근 2~3년 새 조선소는 글로벌 시장에서 발주가 늘어나는 ‘수퍼 사이클’을 맞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전성기만큼 이익을 내거나 수주 실적을 쌓진 못하고 있다. 10년 넘는 불황을 거치며 협력사 인력과 생산 기반이 대폭 약화된 것이 원인 중 하나다.
선박 건조는 수백 개 협력사가 동시에 움직인다. 한 곳에서 납기나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 공정이 지연된다. 예컨대, 한화오션의 경우 생산 관련 사내 협력사만 100여 개, 인력은 2만명에 달한다. 이런 구조에서 협력사 경쟁력은 곧 조선소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조선 3사, 협력사 지원 총력전
특히 우리 조선소들이 미국, 인도 등 글로벌 진출 속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동반 진출할 협력사들의 실력 향상은 필수다. 한화오션뿐 아니라 HD현대중공업의 경우 2024년부터 ‘토탈솔루션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원청의 생산·설비·안전 전문가들이 협력사를 찾아가 설비 효율성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함께 찾는 방식이다.
삼성중공업도 협력사 기술 지원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술 인력 파견과 맞춤형 공정 지원을 통해 협력사 생산성과 품질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또, 공동 연구개발이나 기술 공유를 통해 협력사가 스스로 기술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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